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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주 한 캔의 여유

Relay Essay 제2154번째

게으름’, ‘음주’, ‘땡땡이’ 우리사회에서 터부시 되는 단어들 중 하나이다. 다들 부정적인 느낌을 가지고 있고, 실제로도 사회에서 위의 단어들에 대한 일에 너그럽지 못하다. 필자는 위의 세 단어 뿐 아니라 많은 단어나 행동들이 열심히 살아서 사회에 발전이 되어야 한다는 그러한 국가발전적인 또는 계몽적인 뜻에 의해 부정적인 의미를 가지도록 사회적인 약속화가 되지 않았나 라는 생각을 가끔 한다. 과연 사회적으로 ‘어르신’들이 보기에 젊은이들이 시간 낭비하는 것 같고 그들의 젊음을 낭비하는 것처럼 보이는 ‘게으름’, ‘음주’, ‘땡땡이’등이 그렇게 나쁜 것이고 어리석은 이들의 치기일까.

이 글에서는 ‘음주’에 대해서 필자의 쓸데없는 생각을 풀어보고 싶다. 그 중 맥주, 영어로는 beer, 스페인어로는 cervaza, 일본어로는 비루라고 불리는 그것.

독일의 옛말 중에 “맥주 아홉 잔 까지는 식사이다 그 이후가 맥주이다”라는 말이 있다. 물론 이는 독일 사람들의 맥주에 대한 사랑을 보여주는 말이겠지만, 실제로도 맥주는 그들의 한 끼에 곁들이는 식사의 일부이고 하나의 음료이다. 물론 우리나라의 식당문화에서는 음료를 시킨다는 게 특별한 일이지만, 여행을 갔을 때 우리나라 사람들이 음식을 주문하면 항상 듣게 되는 “anything for drink?”에서 우리는 문화의 차이를 느끼게 된다. 그들의 drink는 탄산수부터 시작하여, 맥주는 물론 가끔은 마티니 같은 하드한 것까지 포함하는데, 우리의 평범한 식사 중 drink는 물 또는 탄산음료이다. 서구 문화에서는 간단한 음료 중 하나인 맥주가 우리나라에서는 엄연한 음주가 되고, 그런 사회적인 시선이 오히려 맥주를 마신다는 행위가 그 스스로의 알코올의 작용뿐 아니라 일종의 사회적인 굴레에 대한 해방감도 약간 느끼게 해준다.

필자는 이 글에서는 치과대학생으로서 필자가 경험했던 ‘맥주’에 대한 경험들을 조금이나마 이야기 하고 싶다. 필자는 교육적인 면에서 모범적이지 못하며, 특히 오늘 말하고자 하는 ‘맥주’에 대해서는 비교육적을 넘어서,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직업인 치과의사가 되기에는 아직 모자란 학생이다.

치과대학생에게 시험만큼 큰 스트레스를 주는 것 중 하나는 실습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필자의 학교는 본과 2학년은 보철의 학년이라 불릴 만큼 보철 실습으로 가득한 커리큘럼을 가지고 있다. 보철 실습의 가장 애로사항은 여타 실습과 달리 시간이 지나도 끝나지 않고 엑스트라로 더 해야 될 것이 생긴다는 것이었는데, 필자와 같은 악마의 손을 가진 어린이들은 매일 밤을 함께 실습실에서 보내기가 일쑤였다. 톰 크루즈 마냥 항상 주어지는 미션들(individual tray를 예쁘게 만들기, 왁스업을 예쁘게 하기 등)을 완수하기 위해 노력하던 밤 중 하나였다. 필자는 보철과 선생님들이 말하는 “예쁘게”를 구현하지 못하는 안타까움과 야심한 밤까지 학교에 갇혀 있는 상황에 대한 자유의지를 가진 개체로서의 존엄성 등이 버무러져 스트레스를 극심하게 받은 나머지 학교 앞에 있는 편의점에서 당시 핫하기 시작한(요즘은 당연한 일이 되었지만) 4캔에 만원을 하는 해외맥주를 마시러 실습실의 동기들을 달콤하게 유혹하였고, 이브가 아담에게 선악과를 먹였듯이 자연스럽게 성공하였다.

우리는 마치 개강파티마냥 다 같이 학교 앞 편의점에 마련된 간이 책상에 모이게 되었고, 실습실에 몇 시간 동안 함께 숨죽이며 레진가루를 마시고 왁스를 녹이던 때에는 차마 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나누게 되었다. 이런 대화와 ‘짠’으로 대표되는 함께 하는 몸짓이 주는 소속감이나 해방감은 실로 대단하였다. 물론 이같은 행동이 우리의 실습 점수에는 도움이 되지 못하였지만 실습에 대한 우리의 스트레스를 해소 할 수 있었고 쉽게 말하지만 이루어지기는 어려운 동기들 간에 서로 위하고 배려하는 마음, 그것을 볼 수 있었다. 그렇게 잠시의 사십여분을 보내고 우리는 다시 실습실에 들어가 각자의 남은 실습들을 마무리 하였다.

필자가 본과 2학년 때 일이었을 것이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의 시험기간에 엄청난 벼락치기를 하면서 우리들의 의욕이나 인생의 즐거움은 바닥에 달해 있었다.(위에도 말했듯이 필자는 모범적이지 못한 학생이다.) 이 시험기간은 매일매일 한두 개씩의 시험을 보며 우리의 혼을 빼앗아갔음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금요일 오전의 시험이 끝난 후 우리는 오후에 실습 엑스트라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 얼마나 슬픈 일인가.

그래서 우리는 다들 유-우럽 배낭여행을 갔을 때를 떠올리게 되었다. 멋진 사복을 차려입고 아침부터 길거리의 사람들을 구경하며 맥주 한 잔을 들이키던 게르만 형님들과 다들 사연이 있을 카페의 바깥 의자에 앉아 거리와 광장을 바라보며 시드르 한 모금을 들이키던 빠리지엥의 모습을.

우리는 서울시 서대문구 대신동의 편의점에 앉아있는 빠리지엥과 게르만 형님들이 되었고, 서로의 시험기간 동안의 내리던 벼락들을 달래는 맥주 몇 캔들은 아침에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을 부담스럽지 않게 만들어 주었다. 시험이 끝나고 아쉬워했던 문제들은 오고가는 이야기들 속에 잊혀져갔고 어느새 우리는 며칠의 시험기간 동안의 고단함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어느새 졸업을 앞둔 4학년이 되었고, 임상 케이스들을 대부분의 친구들은 마무리를 해가며 여유 있게 다가오는 원내생 생활의 끝을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나에게만 시간이 너무 빠르게 흘러버렸나 나에게는 아직 남은 일들이 많다. 임상마감이 인생마감처럼 째깍째깍 압박을 해오는 요즘. 그때와 같이 동기들과 맥주 한 잔을 하며 하루의 고단함을 마무리하고 싶지만, 밤늦게까지 남아 기공과 실습을 하는 동기도 이제는 몇 있지도 않다. 그래, 맥주 한 잔의 여유라니 가당치도 않아. 빨리 기공하고 실습해야지. 오늘도 맥주가 생각나는 고단한 하루가 지나간다.

홍인표 연대치대 본과 4학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