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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부자 부녀의 댄싱 위드 파파

신들의 땅 네팔을 가다/아빠와 딸, 7년에 거쳐 200일 15개 나라를 함께 여행

 


아빠 Say.
다 큰 딸과 여행을 다니는 나만큼
복 많은 사람이 세상에 또 있을까

딸 Say.
아빠가 내 아빠라서 다행이야.
아빠, 우리 춤추듯이 살자.

▶아빠 /이규선
‘딸 바보’로 불리길 좋아하는 푼수 아빠
30년간 다닌 은행에서 은퇴 후, 뒤도 돌아보지 않고 시골로 가 자연인으로 살고 있다. 그러다 딸 덕분에 여행에 늦바람이 나 ‘늘 어디 갈까’ 즐거운 고민을 하는, 60대 남자이다.

▶딸/이슬기
부모님의 ‘베스트프렌드’이길 바라는 철부지 딸
평일에는 마케팅 업무를 하는 ‘삼성맨’,
주말에는 놀이 공연 강연 기획을 하는 ‘액션건축가’로 지내왔다.  5년간의 지독한 내적 갈등이 있었지만 결국, 앞날을 알 수 없는 흥미진진한 삶을 선택했다.

”살다가 가슴이 허해질 때면 히말라야의 눈부신 설산과 푸른 하늘, 그 속에 나무처럼 돌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이 생각난다.”

지난 몇 년 간 무엇에 홀린 듯이 배낭 하나 달랑 둘러메고 여기 저기 돌아 다녔다. 그냥 여행이 좋았다. 우연히 딸, 슬기와 함께한 첫 배낭여행은 강한 중독으로 내게 다가 왔다.

의복이 남루해지고, 얼굴에 거웃 수염이 자리 잡고, 배가 등으로 갈 만큼 몸속의 기름기가 빠질 때쯤이면 낯선 곳에서의 두려움은 사라지고, 대신 자유의 희열이 자릴 차지한다. 이때쯤 삶 속의 숨은 그림들이 비로소 보이기 시작한다. 배낭여행은 자유로움 그 자체이다. 누구한테 간섭 받을 필요없이 공간과 시간으로부터의 자유. 낯선 곳에서 보이는 것들이 공기처럼 몸속으로 스며들면, 비로소 아집과 독선으로 가득한 자신을 보면서, 스스로 비워지는 편안함을 느낀다.

# 신들의 땅, 네팔

사람과 神, 자연이 완연히 하나가 되는 나라, 네팔! 그 매력은 가 본 사람만이 안다. 어디를 가도 자연을 꼭 빼다 박은 사람들이 있고, 신이 있고,눈부신 태양 아래 흰 눈을 머리에 인 푸른 산이 있다.

네팔은 사람과 산을 좋아 하는 사람에게는 피안(彼岸)의 땅이다. 타레파티(3510m)의 롯지에서 만난 독일인 노부부는 이번이 18번째 네팔여행이라고 하면서 심신을 단련하는 데는 이 보다 더 좋은 곳이 없다고 자랑했다. 사실 네팔은 우리나라에도 접근하기 쉬울 뿐만 아니라, 물가도 싸다. 그리고 여행의 동선을 그리는데도 별 어려움이 없다. 그래서 언제든지 그냥 다녀올 수 있는 곳이다. 짧게는 4~5일에서 길게는 얼마든지.

네팔에는 세계 14대 고봉 중 무려 9개가 히말라야 산맥을 따라 펼쳐져 있다. 이 아름다운 히말라야의 만년설을 보기 위하여 해마다 수많은 트레커들이 네팔을 찾는다. 트레커들이 즐겨 찾는 코스로는 안나푸르나 라운딩, 쿰부(고쿄-에베레스트)지역, 랑탕-할렘부지역, 마나슬루라운딩으로 각 약 15일 정도가 소요되며 저마다의 고유한 특색을 지니고 있다. 이 지역에는 숙박시설들이 갖춰져 있어 별도의 장비가 없더라도 무난한 트레킹을 할 수 있다. 이외에도 무스탕, 돌포지역, 다울라기리 등 다양한 루트가 존재한다.



이 길들은 티벳의 상인들이 험준한 히말산맥을 넘어 네팔, 인도로 물자를 수송하던 길로, 중국의 차마고도와 흡사하다. 아직도 많은 옛 길이 마르상디 콜라(江)를 따라 험준한 절벽에 거미줄처럼 위태롭게 걸려 있다. 이 길을 따라 걷다보면 옛 티베트인들의 척박한 삶에 저절로 숙연해지기도 한다. 손바닥만한 다락밭, 경사 45도 이상 비탈진 곳, 그 아래로는 천 길 낭떠러지가 있고, 이런 척박한곳에서도 가축을 키우고 자식을 낳으며 삶을 영위해 나간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강한 자외선 때문에 피부에 각질이 번들거려도 불평이 없다. 현재 우리가 사는 삶이 얼마나 사치스러운지 스스로 반문하게 된다. 행복은 결코 물질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래서 남과 비교하는 삶을 살지 않으리라고 다짐도 해 본다.




트레커들은 구도자의 자세로 무념무상, 아무 생각 없이 걷고 또 걷는다. 오로지 자신의 힘만으로. 그리고 정말 하늘과 맞닿은 그 곳, 그 곳에 내가 있을 때, 그 때 오는 희열은 오직 느껴 본 사람만이 안다. 힘들다는 것은, 하고 있는 일이 마지못해 하는 일이거나, 하고 싶은 일을 하더라도 그 결과가 신통찮을때거나 할 때이다. 이 길을 걸으면 몇 모금의 물 이외에는 아무 것도 먹지 못하고 꼭두새벽부터 일어나 걷고 있어도 힘듦을 잘 느끼지 못한다. 모든 감각이 주위의 황홀경에 넋이 빠지기 때문이다. 눈이 시리도록 푸른 하늘, 그리고 흰 눈, 검은 산과 바위 들, 시시로 변하는구름과 바람. 아름다워라! 그 그림 속에 내가 있다. 주인공으로!!



내가 사랑한 밤의 시간 [딸 이야기]

나는 히말라야 산을 오르는 낮 시간보다 산장에서 보내는 밤의 시간들이 더 좋았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실내에서도 입김이 날 만큼 산장의 온도는 떨어졌지만, 그만큼 곁에 있는 사람들의 체온이 따뜻하게 느껴졌다.

‘히말라야의 밤의 시간’ 4시 경에 산장에 도착하여 잠이 들 때까지의 시간을 나는 ‘히말라야 밤의 시간’이라고 불렀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해가 지면 아무것도 볼 수 없을 정도로 캄캄해졌기 때문이다. 어두컴컴한 방에 촛불의 위력은 굉장했다. 손톱만한 불빛은 곁에 있는 사람의 더 많은 것을 보게 했고, 말하게 했고, 느끼게 했다. 촛불 아래에서 하는 카드 게임은 술자리 안주 같은 역할을 해주었다. 우리는 카드 게임을 하며 시시콜콜한 대화를 나누었고, 나는 평소에 궁금했던 질문들을 아빠에게 던졌다.

“아빠, 학교 다닐 때 어떤 학생이었어?”
“아빠, 내 나이 때 취미가 뭐였어?”
“아빠, 첫사랑은 어떤 사람이었어?”

아빠와 20년 이상 같이 살면서도 깨닫지 못했던 사실을 그날 처음으로 알았다. 아빠의 이야기 속에는 나보다 어린 나이의 아빠가, 그리고 내 나이의 아빠가 있었다.

사랑 때문에 설레고, 사랑 때문에 가슴앓이 하는 짧은 머리의 소년. 짝사랑하는 소녀에게 마음을 전달하기 위해 몇 날 며칠을 고민하며 쓴 편지를 가방에 넣어 다니던 소년, 점심시간이면 나무 밑에 앉아 책을 읽던 문학소년, 가을날 떨어지는 낙엽을 보며 눈물 흘릴 만큼 감성이 풍부했던 소년, 그리고 일찍 철이 들었던 소년.
은행원이 된 건실한 남자. 나팔바지를 입고 장발에 도끼 빗을 들고 다니던 청춘의 멋을 알았던 남자. 음악과 춤을 사랑했던 남자.

아버지라는 책임감을 어깨에 메기 전까지 그도 한 소년, 한 남자였다.

히말라야의 길고 길었던 밤의 시간 속에서, 우리는 아빠와 딸이 아닌 사람과 사람으로 온전히 마주했다. 그 순간이 내가 아빠와 함께 한 모든 시간 중 가장 사랑했던 시간이다. 히말라야에서 함께 보냈던 8일간의 밤의 시간 덕분에 나는 또다시 아빠와의 다음 여행을 꿈꿨는지 모른다.

# 여행은 병이다. 아주 행복한 병이다

”밍글라바” 미얀마 바간에서 만난 예쁜 처자의 인사말이 그립다.우리는 살아가면서 몇 사람이나 정다운 인사를 나누고 살까. 배낭을 짊어지고 한 발자국만 더 가까이 가면 때 묻지 않은 순수한 얼굴들이 인사하며 다가온다. 그들의 미소는 자연이다.

지금 머릿속으로 그간 만났던인연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그립다.” 그래 여행은아름답고 눈부신그리움을 잉태하는 자궁이다.나는 또 다른 그리움을 잉태하기 위해 길을 떠날 것이다. 죽는 날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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