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앓 구 나 서

Relay Essay 제2166번째

이런 말이 있다.

의사가 환자를 보다가 갑자기 쓰러졌다.

간호사가 “의사 선생님, 의사 선생님 부를 까요?” 라고 물었다.

쓰러진 의사는 말이 없다. 정말로 정작 의사 선생님이 아프고 쓰러지면 이런 꼴이 일어난다. 누가 치료를 할 것인가가 문제다. “중이 제 머리 못 깎 듯” 의사 자신이 치료를 못하니 말이다.

이 보다 더 안타까운 것은 의사가 아프면 환자들이 갈 곳이 없다. 의사가 아파 드러 누우면 환자는 어떻게 할까? 속절없이 고통을 참고 이겨야만 한다. 이런 경우 의사가 죄인이다. 그러니 의사 자신이 아프다고 드러 누울 수 없는 노릇이고 나 몰라라 할 처지도 아니다. 하여간에 의사가 아프면 골치 아프고, 환자나 의사 모두에게 힘든 일이다.

재미있는 것은 의사가 아파서 환자가 되었을 때 어떠할까 하는 것이다. 그러면 환자인 의사 자신 뿐 아니라 자기를 치료해 주는 의사에 대한 참된 모상과 진수를 엿볼 수 있을 것 같다. 환자의 입장에서 의사 자신을 투영해 볼 수도 있다.

우연히 눈의 망막이 터져 안과에 갔다. 한쪽 눈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갑자기 일어난 일이고 처음 있는 일이다. 치과의사가 앞이 안 보인다면 환자를 어떻게 치료하겠는가?

딴 환자를 위해서라도 빨리 치료를 받아야 했고 나를 위해서도 급한 일이었다. 그런데 막상 안과에 간다고 하니 두렵고 무서웠다.

지금까지 나의 병원에 온 환자들의 마음을 헤아려 보았다. 아마도 모든 환자들이 지금 나의 심정이었으리라. 무서움과 두려움의 공포에 싸여 힘들게 병원을 왔으리라. 지금 내가 환자가 되고 보니 지금까지 무심히 지나쳤던 일들이 생각나서 반성의 뜻으로 나를 다잡아 본다.

지금까지 치과병원에 온 환자들이 얼마나 무서움과 두려움에 떨면서 왔을까? 이런 환자들에게 엄살 부린다고 얼마나 많은 핀잔을 주었는가?
환자에게 부드러운 인사는 했는가?
환자는 보지도 않고 차트나 컴퓨터만 보면서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하지 않았나?
쥐꼬리만 한 권위를 세워 반말로 지껄이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그런다고 권위가 서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자세한 설명을 바라는 환자의 요구를 무질러 버리지나 않았나?
내가 짜증난다고 환자에게 더 심한 짜증을 부리지나 않았나?
참을 줄 모르고 자신의 주장만 내 세우며 우기지는 않았나?
얕잡아 보면서 거드름을 피우지는 않았나?
대꾸를 하는 둥 마는 둥 하지는 않았나?
어려운 환자에게도 꼬박꼬박 진료비를 챙겼나?
봉사나 헌신의 정신을 생각해 보았는가?
피곤하다고 아랫사람에게 진료를 맡기 지 않았는가?
어떻게 보면 아랫사람에게 환자를 맡기는 것이 좀 권위 있어 보이기는 한다. 사실 권위는 아랫사람에게 진료를 맡기든가 반말을 해서 생기는 것이 아니다.
겁주듯이 지나치게 예후를 과장되게 말하지는 않았는지?
그렇지 않아도 겁먹고 온 환자에게 ‘수술을 해야 된다는 둥’ ‘암으로 진행될 수도 있다는 둥’ ‘얼마 오래 못 살겠다는 둥’ ‘장애인이 되겠다는 둥’ 이런 말을 하면서 환자에게 겁은 주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다음으로는 환자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았다.

서푼도 안 되는 인터넷 의학지식으로 진짜 의사 선생님의 말을 무시하고 내 생각으로만 판단하지 않는가?
지키라는 주의사항을 곁으로 듣고 제멋대로 하지는 않았는가?
자기 영역도 아닌 다른 의사선생님께 자기주장을 내 세우며 우기지는 않았나?
내가 환자가 되어 보니 지난 나의 잘못이나 실수가 상심으로 변한다. 후회를 한다고 상심이 없어지겠냐마는 그래도 환자에 대한 배려가 새로워진다.
아이들이 앓구나야 성숙한다고 하고 실연을 해봐야 사랑의 참맛을 깨닫는다고 하듯, 의사가 앓아보지 않고 진정한 환자의 뜻을 깨달을 수 있겠는가?

 신덕재 중앙치과의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