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愚 公 移 山

Relay Essay 제2169번째

“딩동”
“○○○님이 하트 1개를 선물하셨습니다.”

헉! 누구? 하트를 보낸 사람이 누구라고? 눈을 여러 번 비비고 다시 보아도 이 분은 나의 고등학교 때 담임선생님이 틀림없었다. 선생님께 모바일 폰 게임 아이템을 선물 받다니 이 상황이 참 재미있다.

고등학교 3학년. 입시 스트레스로 하루하루가 힘든 일로만 가득 차 있는 것처럼 느껴졌던 예민하고 까칠한 여고생의 담임을 맡으시는 것이 보통 일은 아니셨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벌써 10년도 더 지났지만 예나 지금이나 나는 욕심 많고, 과하지 않나 싶을 정도의 목표를 세우고, 마음대로 안 풀리면 스트레스 받고 실망하는 몹쓸 성격의 소유자다. 자고로 꿈은 크게 가지랬다는 합리화는 덤이다. 성격 탓인지 수많은 고비를 마주 할 때 마다 이 산을 넘을 수 있을까, 이 고비가 끝이 나긴 할까 등의 걱정으로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는데 그 때마다 마음을 다 잡게 해 준 것이 고등학교 3학년 때의 급훈 ‘우공이산(愚公移山)’이었다.

급훈을 기억하고 있다니 이런 오글거리는 상황이 또 어디 있을까 싶지만, 신기하게도 힘들다 느낄 때 마다 이 글귀가 문득 문득 생각이 났었다. 어리석은 영감이 산을 옮겨놓는다는 말로 열자(列子)의 탕문편(湯問篇)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나이가 아흔에 가까운 우공(愚公)이라는 사람이 집 앞에 있는 두 개의 거대한 산 때문에 먼 길을 돌아서 다녀야 하는 것을 불편하게 여겨 가족과 상의하여 산을 옮기기로 하였다. 아들, 손자들과 함께 산을 허무는 것을 본 이웃 사람이 이를 보고 비웃자 “사람은 자자손손 대를 이어 한이 없지만 산은 불어나는 일이 없으니 언젠가는 평평해지지 않겠나”라고 답하였는데, 산신이 이 말을 듣고 자신의 거처가 없어질 것을 두려워하여 천제에게 이를 말려 달라 호소하였다. 그러나 천제는 우공의 우직함에 감동하여 역신(力神)의 두 아들을 시켜 산을 옮겨놓게 하였다.

고 3이 된 첫날 아침조례 때 이 이야기를 처음 접했다. 선생님께서는 작지만 쉬지 않고 기울이는 노력이 얼마나 큰 결과를 가져다 줄 수 있는지를 보여 달라시며, 1년 동안 최선을 다해 노력해서 하고 싶은 일에 도전해보라는 당부도 잊지 않으셨다. 모의고사를 칠 때마다 오를 줄 모르는 성적표를 받아들고 우울해하던 나에게 몰래 음료수 하나 쥐어주시며 세상에 의미 없는 일은 하나도 없다고 응원해주시던 생각도 난다.

긴 긴 시간 이곳저곳을 돌고 돌아 치과의사 국가고시에 합격하던 그 순간 ‘드디어 내가 산을 옮긴 것인가’ 하는 뿌듯함을 느낀 것도 잠시 새로운 일터에서 또 다른 산 하나를 마주하고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앞으로 살아갈 긴 시간동안 몇 개의 산을 더 마주할지 모르겠지만, 감성 충만했던 여고생 시절 받았던 응원이 당분간은 유효할 것임은 확실하다. 새 해가 되고, 나이를 한 살 더 먹고, 새 후배가 들어오고, 나는 또 선배가 되었다. 언제나 많은 변화들이 일어나고 있지만, 내 나름의 목표를 위해 노력하는 모습은 변하지 않기를 다짐해본다.

선생님과 몇 번을 아이템만 주고받다가 새해 인사를 핑계 삼아 오랜만에 연락을 드렸다. “열심인 모습이 보기 좋다~” 한마디에 힘이 났다. 바쁘다는 핑계로 몇 년 동안 찾아뵙지 못했는데, 이번 스승의 날에는 꼭 한번 찾아뵈어야겠다.

박소영 부산대치과병원 소아치과 전공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