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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 치과 밤 기타의 생활

Relay Essay 제2172번째

보통은 기타를 치며 노래를 하지만 나는 그쪽으로는 재능이 없다는 것을 깨닫기 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 때문에 좌절 비슷한 걸 느끼려던 찰나에 ‘핑거스타일’을 만나게 되었다. 대신해서 노래도 불러주고 반주도 해주고 때로는 쿵작쿵작 리듬악기와 같은 역할까지 해주니 금상첨화였다.

보통 접하게 되는 잔잔한 곡이나 사람들이 많이 연주하는 곡에는 흥미를 느끼지 못해 화려한 기술적인 부분이 많이 들어가 있는 곡부터 무작정 시작하게 되었다. 그 곡을 연습할 때 손톱이 잘 맞지 않고 내려칠 때도 자꾸 엉뚱한 부분이 맞으면서 손에 상처가 나고 물집이 잡히고 아팠다. 덕분에 치과에서 알코올 솜을 다루게 되는 순간과, 환자를 보고 난 뒤에 글러브를 벗고 손을 씻는 순간은 가장 고통스러운 시간이 되었다. 그 고통은 표현하기 힘든 것 같다.

그럼에도 ‘고통스러움’보다는 ‘행복감’을 느꼈다. 소리가 아주 어설펐지만 조금씩 나온다는 것이 신기했고 주변에 핑거스타일의 주법을 연주하는 여성 아마추어 연주자가 드물다는 것이 강한 메리트로 다가왔다. 가끔씩 점심시간에 치과에서 연습을 하고는 했는데 도중에 환자분들이 오시면 앞에 앉아서 구경하시고는 했는데 (김영란법이 생기기 훨씬 이전에) 잘 들었다며 용돈을 챙겨 주시기도 했었다. 한사코 거절은 했지만 기분은 좋았다. 나에게 소소한 꿈이 있는데 미래에 조용한 시골 마을에서 기타를 잘 치는 할머니가 되어 경로당을 누비고 다니면 뿌듯할 것 같다.

친구와 함께 핑거스타일만을 연주하는 동호회 ‘Three fingers’를 만들었다. 모임 첫날 당시에 클래식 기타를 가지고 참석하신 중후하지만 동안인 실력자가 오셨는데, 알고 보니 클래식기타 중주단의 단장님 이셨다. 단장님께서 손모양이 화려했던 그 곡에 관심을 가져 주시게 되면서 클래식기타 동호회 ‘아만테스’의 하우스 콘서트에 게스트로 초청이 되어 두 곡을 연주하게 되었다.

리허설도 공연처럼 관객들이 초대되어서 진행이 되었는데 그 날 처음으로 아만테스 중주단의 연주를 보았고 그들의 실력과 분위기에 압도당해 버렸다. 자만이겠지만 아마추어 여자치고는 부족하지 않은 실력이라 생각했는데 능숙하고 대범하며 실수는 1도 없을 것 같은 포스에 손이 떨려 오기 시작했고 그 날 리허설 공연은 말그대로 그냥 덜덜 떨다가 내려왔다.

요즘 애들 말 중에 ‘이불 킥’이라는 단어가 있다.
리허설날로부터 삼일정도는 밤마다 열심히 이불킥을 실행하다가 잠이 들었 던 것 같다. 본 공연은 잘하고 싶은 마음에 악착같이 연습을 했다. 하지만 세상은 녹록치 않았다.

사람들의 시선이 고정되고 머리가 하얗게 됐다. 인사도하고 할 말은 다 했다고는 하는데 도통 기억이 나지를 않는다. 첫 번째 곡은 조금 아쉬웠지만 그래도 걱정하던 것 보다는 괜찮게 마쳤고, 두 번째 곡이 문제였다. 튜닝이 제대로 맞지 않았던 것이었다. 그 때문인지 어이없이 통 편집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래서 곡이 짧아져 엔딩 부분을 두번이나 돌려서 연주하게 되었다.

소감을 이야기 한다면 한마디로 아쉽다. 훗날 공연을 또 하게 된다면 이 날의 느낌을 잊지 않고 연료로 삼아 더 멋있는 무대를 만들어 보고싶다. 그리고 그 날에는 긴장하지 않고 반드시 즐길 수 있는 만큼 즐기고 내려오리라.

직업과 취미의 경계가 참 모호하다. 치과에서 앞에 있을 때도 즐겁고 기타를 앞에 두고 관객 앞에 있어도 즐겁다. 아무래도 나의 ‘낮 치과 밤 기타’의 생활은 할머니가 될 때까지 이어질 듯 하다. 


*핑거스타일(Fingerstyle)은 음악을 구성하는 3가지 요소 - 멜로디, 리듬, 화음-을 한 대의 기타로 표현해내는 주법을 일컫는다. 핑거스타일이란 ‘주법’을 이용해 팝, 재즈, 클래식, 뉴에이지, 블루스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이다.<위키백과 참고>

* 이불 킥 - 이불 +킥(Kick) 의 합성어. 이불속에서 발길질을 하는 행위를 말하며, 주로 자다가 혹은 자기전에 영 좋지 않은 기억이 떠올랐을 때 이불을 발로 차는 행위에서 유래. <나무위키 참고>


강신은 치과위생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