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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위대가 무슨 죄겠어요? 여기 개원한 게 죄라면 죄지요”

■촛불정국, 광화문 일대 개원가 르포
토요일 진료는 오전 집중하는 방식으로 안배
치과에 큰 영향 없지만 빠른 정상 회복 기대

요새 광화문 일대는 바다다. 일주일 간격으로 만조와 간조가 반복되면서, 밀물이 드는 날엔 수로를 따라 촛불과 민심이 흘러들고, 썰물이 빠지는 날에는 사람 아닌 것들이 수로를 다시 채운다.

생태계의 건강성을 가늠하는 척도는 ‘회복력’이다. 외부 변인에 의해 생태계에 충격이 가해져도 건강한  생태계는 반드시, 재빠르게 평상성을 회복한다. 사회도 마찬가지다. 낱개의 구성원이 얼마나 빨리 평상성을 회복할 수 있느냐가 그 사회의 성숙도를 말해준다.

지난 11월 28일 ‘바다 한 가운데’에 자리 잡고 있는 치과 구성원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광화문 일대에서 오랫동안 개원하고 있는 원장들은 “(잇단 집회로 인한)문제가 전혀 없다”는 말에 덧붙여서 “우리 치과에 충격이 있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국가, 사회가 얼마나 빨리 정상화되느냐가 문제”라는 말로 기자의 우문(愚問)을 잘랐다.

대규모 집회를 다반사로 겪은 원장들은 불편감을 토로하는 대신 사회의 회복력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었던 셈이다. 천생 의사였다.

# “집회문화 계속 진보하고 있어”

“10년 넘게 이곳에서 개원하면서 온갖 집회는 다 보지 않았겠어요? 광화문에 개원하고 있는 원장들에게 집회, 시위는 일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요새는 집회에서 오는 불편함 보다 집회의 원인에 대해 생각하고, 해결책에 대해 고민하게 되더군요.”

A원장은 이번 집회를 눈 여겨 보는 투였다. 그는 “다른 집회는 몰라도 이번 집회의 경우, 명분이 너무도 뚜렷하고 공감할 수 있는 여지가 크다고 본다. 빨리 해결되길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중심업무지구인 광화문 일대의 특성상 많은 치과가 주말 진료를 시행하지 않고 있었는데, 15년 정도 광화문에서 개원하고 있는 B원장은 “우리는 토요일 진료가 없는데, 주위에 토요일 진료를 하는 치과 이야기를 들어보면 환자 스케줄을 조정하는 등 직접적으로 영향은 있는 모양”이라며, “그래도 집회나 시위를 하는 사람들에게 무슨 죄가 있겠나? 죄가 있으면 여기에 개원한 우리가 잘못이지”라고 너털웃음을 지었다.

그러면서 그는 오랫동안 광화문 일대의 집회, 시위를 지켜본 관찰자 시점으로 “집회의 문화가 갈수록 진보하고 있는 느낌이다. 예전에는 솔직히 월요일에 출근해보면 거리 일대가 담배꽁초, 술병으로 지저분했는데 이번 집회는 그런 게 없었다. 깨끗해서 놀랄 정도였다. 환자 분들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고 전했다.

드물게 토요일 진료를 하고 있는 C원장은 영향이나 불편함을 묻는 기자에게 호통을 쳤다. C원장은 “아니 당장 나라가 망가지고 있는데 매출 같은 게 뭐가 중요한 거냐”며 “그런 영향이나 손해가 있더라도 시민들의 권리는 지켜져야 하고, 빨리 정상화 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C원장은 집회가 있는 토요일 진료의 경우, 오전에 집중시켜 혹시 모를 환자들의 불편함을 안배하고 있다고 했다.

# 아이들과 첫눈 맞으러 광화문으로

치과의사들 역시 이번 집회를 하나의 ‘문화적 변곡점’으로 인식하는 분위기였다. 많은 치과의사들이 실제로 집회에 가족단위로 참여해 예전과는 사뭇 달라진 시위문화를 ‘향유’했다. 이곳에서 개원하고 있지는 않지만 D원장은 지난 토요일 두 아이들과 함께 LED촛불을 들었다.

“그날 눈이 온다는 예보가 있어서 큰 딸에게 ‘우리 다 같이 광화문에 가서 첫눈 맞을까?’라고 물었더니 좋다는 거예요. 날이 좀 춥긴 했지만, 아이들도 꽤나 신나하는 눈치였어요. 정치적 입장을 떠나서 축제 같은 집회, 재미있는 집회가 가능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아이들에게도 이런 ‘집단의식’이 자연스럽게 스밀 수 있지 않을까요?”

광화문 순회의 말미에 문득 한 사람의 치과의사가 그리워졌다. 故 이병태 박사. 광화문에서만 40여 년간 개원했던 이병태 박사는 지난 7월 심근경색으로 급서했다. 그의 차남 이창규 원장(맨하탄청원치과의원)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버님은 75년부터 광화문에서만 환자를 보셨고, 저도 그곳에서 오래 살아서 시위나 집회를 늘상 보고 살았지요. 집회에 대한 소회도 말씀하신 적이 있는데, 이번 집회를 보셨다면 이런 말씀을 하셨을 거 같아요. 위정자가 잘못하면 그걸 바로 잡는 게 결국은 민초들이라고. 민초들이 모여서 역사의 큰 산을 만드는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