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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의 길, 그 첫걸음을 내딛으며

Relay Essay 제2176, 77번째
-서울치대·치의학대학원 총동창회 제2회 키르기즈스탄 의료봉사-

치과의사로서 일을 하다보면 하루하루 직업생활에 매몰되어 때로는 의미없이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는 생각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내가 행하고 있는 매일매일의 진료가 환자에게 어떤 의미를 주고 있는지, 나에게는 어떤 의미로 남고 있는지 피부로 느껴지지 못하고 자칫 매너리즘에 빠질수도 있었던 찰나의 어느 초여름날. 

2016년 기록적이었던 폭염이 아직 시작되기도 전 선선하던 6월말, 저는 올해 키르기즈스탄 해외의료봉사단장을 맡으신 박건배 前 총동창회장님께 이번 의료봉사에 대한 권유를 받았습니다. 사실 그 당시 저는 곧 있을 치과개원을 준비하려던 참이었는데, 뭔가 의미있는 일에 대한 갈증이 조금씩 쌓여갈 때쯤 이번 봉사사업을 접하게 되었고, 저로서는 별다른 고민 없이 참가를 결정하게 된 것을 이제와서 생각해보니 참 의미있었던 순간이었던 듯 싶습니다. 물론 이번 9월 13~18일 해외의료봉사는 올해 징검다리 추석연휴기간이었던 닷새를 포함한 기간이었기 때문에 저로서도, 그리고 다른 봉사단원들에게도 비교적 부담없는 기간을 할애하여 다녀올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사실 올해 서울대학교 치과대학, 치의학대학원 총동창회 주최 키르기즈스탄 해외의료봉사는 2년전 1회를 시작하여 올해로 두번째를 맞은 만큼 그 의미가 깊은 사업이었습니다. 서울대학교 치과대학-치의학대학원 동문 9명에 동문선배님의 사모님, 자제분까지 포함하여 총 14명의 의료봉사단이 모집되었습니다. 2년 전 다녀오셨던 다른 선배님들 중에서 박건배 동문, 박상섭 동문께서는 올해도 함께하셨지만 이번에는 함께하지 못하시는 선배님들은 아쉬움을 감추지 못하셨지요.

봉사일정보다 한두달 전, 지난 1회 의료봉사단을 포함한 의료봉사사업기획팀이 모였고 이른 아침 7시부터 시작되는 몇 차례의 내부회의를 거쳐 올해 사업의 내용이 결정되었습니다. 2년전과 마찬가지로 올해 사업도 역시 크게는 강의팀과 진료팀으로 나뉘어져 진행되기로 하고, 각 인원의 역할분담, 봉사일정, 후원물품 및 후원업체 선정 등을 더욱 구체화시켰습니다.

올해 해외의료봉사팀은 한번에 출발하기에는 항공좌석의 문제로 인해 날짜의 차이를 두어서 선발대와 후발대로 나뉘어져 현지에 도착했습니다. 목적지인 키르기즈스탄은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 타지키스탄, 그리고 중국으로 둘러쌓여있는 중앙아시아 북부에 위치한 국가로서 국토는 한반도 정도의 크기이지만 대부분은 산악지역이고 인구는 590만명에 불과합니다. 봉사팀은 카자흐스탄의 알마티를 경유한 후 생각보다 많이 작았던 여객기로 갈아타 키르기즈스탄의 수도 비쉬켁의 마나스국제공항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키르기즈스탄의 비쉬켁에서 문성일 동문(83년도 졸업)께서는 1995년부터 이곳의 크리스챤 사역자로서 활동하시면서 지역과 소득수준에 따라 각기 다른 모습의 두 개의 치과를 운영하고, 곧 세번째 치과의 개원을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문성일 선배님을 도와 김은우 동문(95년도 졸업)께서 함께 현지 치의학의 발전과 선교를 위해 헌신하고 계셨습니다.

문성일 선배님 댁에서의 정갈했던 식사대접으로 환영의 자리를 마친 후 다음날 아침부터 본격적인 봉사단의 일정은 시작되었습니다. 윤정태 동문(89년졸), 박상섭 동문(94년졸)으로 이루어진 강의팀은 첫날 문성일 선배님 치과건물의 소강의실에서 그 곳 수련의 및 위생사로 이루어진 스탭을 위한 강의를 진행하셨고 다음날은 같은 건물의 대강당에서 비쉬켁 지역의 개원의를 대상으로 하는 강의를 진행하셨습니다. 윤정태 선배님은 첫날 ‘근관치료용 MTA 임상적용법 및 hands-on’, 둘째날 ‘임플란트 Sinus Surgery의 극복법’을 강의하셨으며, 박상섭 선배님은 첫날 ‘Surgery에서 Incision과 Suture의 모든 것’, 둘째날은 1.‘Science로서의 치의학, 그 목적과 방법’, 2.‘전치부 치료에 대한 이론 및 접근방법’을 강의하셨습니다. 키르기즈어와 러시아어가 모두 공용어인 키르기즈스탄이었지만 학문적인 대화에는 러시아어가 통용되는 관계로 강의는 영어로 진행하면 현지의 통역을 통해 러시아어로 전달이 되는 방법을 사용하였습니다. 현지의 스탭과 개원의 모두들 뜨거운 열기가 느껴질 만큼 참가자들은 한국의 높은 의료수준에 큰 관심을 보였으며, 수준 높은 강의가 성공적으로 완료될 수 있었습니다.

제가 포함된 진료팀은 저 이외에도 박건배 동문(76년졸), 이석우 동문(77년졸), 김철수 동문(80년졸), 안영두 동문(87년졸), 엄승희 동문(93년졸), 오영민 동문(2014년졸)으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첫날은 비쉬켁의 서쪽 벨로보스코 지역에 있는 중증장애아 고아원시설에서 의료봉사가 진행되었는데, 그곳의 노후한 유닛체어 한대 이외에는 사용할 수 있는 체어가 없었기에, 뒤로 눕힐 수 있었던 야외활동용 의자 3대를 더 준비하고 현지에서 치과장비와 임플란트 사업을 하고 계시는 홍기천 사장님께서 직접 이동형 핸드피스 장비와 석션, 스케일러 등을 각 의자 옆에 설치하여 주신 덕분에 각 장애인 환자의 필요한 진료 종류에 따라 환자가 안내되어 동시적으로 진료는 진행될 수 있었습니다. 치과용 라이트가 없었던 상황이었으므로 진료팀과 현지 스태프들은 이마에 의료용 혹은 산악용 헤드라이트를 장착하고 진료를 보았으며, 특히 불수의적인 움직임이 많았던 중증장애인환자들이 대부분이었기에 양호하지 못한 구강상태임에도 치료는 수월하지 않아, 한 명의 환자를 보기 위해 많게는 4~5명이 한번에 투입되어 환자의 몸을 붙잡음과 동시에 치료 및 석션이 이루어져야 하는 긴장되는 순간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이때 환자의 움직임을 고정하고 치료가 끝난 후에도 휠체어를 끌며 자리로 다시 이동시켜드리기 위해서 봉사단으로 함께 오신 동문의 가족분들의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김철수 선배님의 부인 이은심 사모님, 안영두 선배님의 부인 박종임 사모님, 윤정태 선배님의 아드님 윤상범씨, 엄승희 선배님의 따님 손민정양, 박상섭 선배님의 아드님 박선한군 모두 환자의 치료를 위한 어시스트와 차트 정리, 안내를 위해 의료인 못지 않은 큰 역할을 해주셔서 진료팀 첫 날의 진료는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었습니다.

첫날의 강의와 봉사일정을 마치고 숙소 로비에서 진행된 전체회의에서는 그날의 미비한 점, 개선 방안 등을 논의하였습니다. 다음날의 강연과 진료봉사 모두 장소와 대상이 바뀌기에 유의할 점 등을 공유한 후 휴식을 취하였고, 익일이 되어 다시 봉사 일정이 시작되었습니다.


중앙아시아의 키르기즈스탄에서 올해 9월 진행되었던 서울대학교 치과대학-치의학대학원 총동창회 주최 해외의료봉사는 공식일정으로는 강연과 진료봉사로 예정되어있었으며, 그 중 진료팀은 첫날 장애아 시설에서 중증장애아의 치료를 중심으로 일정을 진행하였습니다.

진료팀의 둘째 날 봉사는 청각장애복지시설의 장애인들을 위한 무료진료였으며 현지에서 1995년부터 사역자로서 활동하시면서 치과를 운영하시는 문성일 선배님(83년도 졸업)의 치과병원진료실에서 진행되었습니다. 청각장애인 환자분들과 소통하기 위해 “아프십니까”, “물 입니다” 등의 간단한 수화를 배운 후 치료는 4개의 유닛체어에 나눠 진행되었습니다.

다행히 전날의 중증장애환자들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구강상태는 양호하였으며 치료의 협조도도 좋았습니다. 봉사팀이 귀국한 후에도 현지 치과에서 지속적인 관리가 가능하긴 했지만 치료의 횟수와 빈도 면에서 제한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수복치료는 대부분 레진이나 GI로 진행될 수밖에 없었으며, 근관치료의 종료 후에도 원칙적으로 크라운 수복까지 하는 것은 환자들의 여건상 쉽지 않은 환경이라는 점은 참 안타까웠습니다.

그렇지만 전날의 진료환경에 비해 훨씬 위생적일 뿐 아니라 구내 타액의 컨트롤, 그리고 진료를 위한 시야까지 훨씬 좋은 환경이었기에 술자 민감도가 높은 레진치료 역시 높은 퀄리티로 진행할 수 있었으며, 한국에서 후원물품으로써 현지로 공수한 근관치료용 MTA를 사용하여 근관치료를 진행하였기에 의료진들은 만족럽게 진료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이날의 진료는 치과 자체의 진료가 없었던 주말이었기 때문에 치과의 스텝 여러분들의 진료보조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현지에서 사역과 치위생학 교육을 병행하시는 한국에서 오신 치위생사 김미숙 선생님, 박은희 선생님과 그분들께 전문적인 치과교육을 받은 숙련된 키르기즈스탄 간호사분들, 그리고 키르기즈스탄의 젊은 치과의사인 현지 수련의 선생님들께서 직접 진료의 어시스트를 도맡아주실 수 있었으며, 그분들의 능숙한 진료보조에 힘입어 저희 의료진은 익숙치 않은 장소에서도 어렵지 않게 진료를 마칠 수 있었습니다.

키르기즈스탄은 아직도 치과의료수준이 우리나라의 80~90년대 수준에 머물러 있고, 그나마 최근 들어 문성일 동문이 운영하시는 치과와 비슷한 규모와 수준을 갖춘 현지 치과가 수도 비쉬켁의 중심가에 생긴 정도라고 합니다. 현지에서 운영하시는 한국의 치과들은 근방의 치과 개원의들에게 수준 높은 진료와 강연으로 이름이 나 있다고 하며 현지 진료수준의 전반적인 향상을 통해 지역의 구강위생수준 개선을 도모하고 있어, 지역의 선교사업과 더불어 ‘함께하는 공동체’ 사업으로서 큰 의미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큰 뜻을 가진 선배님의 걸어가는 발자취에 서울대 동문들의 힘이 모여서 4000km 떨어진 땅의 구강보건 사각지대에 있는 소중한 생명에게 의료혜택을 전달하는 것을 가능하게 하신 선배님들의 노고와 결단에, 팀의 의료인 중 최저연령자로서 참가한 저로서는 그저 영광스럽고 함께 할 수 있었던 소중한 기회를 주심에 감사할 뿐이었습니다.

귀국 행 비행기는 현지에서 밤 8시였기에 그날 오전과 오후를 활용하여 둘러보게 된 톈산산맥의 알라-아르차 국립공원에서의 트랙킹은 의료봉사를 하면서 긴장을 늦출 수 없었던 지난 여정의 고단함을 말끔히 씻어내기에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중앙아시아의 스위스라고 불리는 키르기즈스탄에서 해발 2000미터의 고원지대에 가득한 상쾌하고 맑은 공기로 가슴 속 구석구석까지 채우고, 아무런 사고 없이 일정을 마친 봉사단원들은 다시금 일상으로의 복귀를 위해 8시간의 귀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습니다.

실크로드는 고대 동북아시아와 서역국이 중앙아시아를 너머 비단을 비롯한 여러 무역을 하면서 정치, 경제, 문화를 이어 준 교통로를 뜻합니다. 이미 오랜 역사를 통해 중앙아시아와 교류를 해오던 한국은 이번 의료봉사를 통해 또 다른 실크로드를 만들어가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한편 이미 1930년대 러시아의 고려인 강제이주정책 이후 현재 키르기즈스탄에만 2만 여명의 고려인이 살고 있다고 하며, 고려인이 아닌 현지 주민들의 얼굴 생김새와 표정에서도 우리와 같은 피, 우리와 같은 감정, 그리고 아픈 자를 보살피고자 하는 인류공통의 보편적인 소명의식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 보편적인 감정이 서로에 대한 이해와 믿음을 만들어내어 먼 타국에서 온 의료인에게 뜻깊은 의료행위를 행할 수 있는 기회를 가능케 하며, 먼 타국의 몸이 불편한 환자들에게 어색함 없이 참된 의료를 베풀 수 있는 자발적인 동기부여를 만들어주는 것이 아닐까요.

이제 막 개원을 앞둔 저의 치과의사 인생여정의 발자취 중에서 이번 키르기즈스탄 해외의료봉사는 세 가지의 의미로 다가옵니다. 첫째로 의미있는 인생과 의미있는 직업생활은 스스로 찾아내야 하며, 조금만 관심을 가진다면 얼마든지 이 사회 혹은 먼 국가에까지 내 작은 힘이나마 기여할 수 있는 곳이 있다는 점입니다. 두번째는 의료봉사를 통해 세상에 의미있는 영향력을 미치려 할 때 좀더 조직화되고 체계적인 활동이 되기 위해서는 충분한 물적, 인적인 자원이 필요하다는 것을 실감한 점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세번째는, 치과의사라는 직업은 이런 행위를 통해 세상을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 수 있는 축복받은 직업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번의 저의 의료봉사단 참가는 “경험”이라기보다는 “시작”이라는 단어로 더 큰 의미를 가질 것 같습니다. 내가 가진 재능을 남에게 베풀기 시작하는 것이고, 저로서 시작된 나눔의 행동이 저의 가까운 선후배들도 함께 할 수 있도록 징검다리 역할을 할 수 있다면 또 다른 시작의 의미를 가가질 있을 것 같습니다.

저보다 더 먼저, 더 자주 훌륭하신 일에 앞장서서 시간과 노력을 아끼지 않으셨던 수많은 선배 치과의사 분들께 이 지면을 통해서 경의의 마음을 표하고 싶습니다. 아울러 앞으로 지속되어 발전되어갈 저희 서울대학교 치과대학-치의학대학원 총동창회의 의료봉사사업을 응원하겠습니다.


이장우 서울 성복치과의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