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5 (목)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기사검색

지도를 그리다-시에 대한 해설과 시 특강을 들은 소감

Relay Essay 제2182번째

대학에 입학하기 전 시가 문제를 풀기 위해 읽는 대상으로만 여겨지는 게 안타까웠습니다. 시를 통해 시험 점수 이상의 것을 얻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11월 21일과 12월 1일 원광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강연호 교수님의 “시의 이해와 창작의 첫걸음”라는 특강을 듣게 되었습니다.

3시간의 수업에서 시의 기초 이해, 시적 형상화와 인식의 새로움, 시적 상상력과 삶의 변화, 치료로서의 시 읽기와 시쓰기, 시창작의 과정 등의 내용이 있었습니다. 흔히들 알고 있는 시의 특징을 ‘느껴보는’흔치 않은 수업이었습니다. 시인이신 강연호 교수님께서 시를 쓸 때를 비추어 설명해주셨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의료인과 시인 모두 사람의 고통에 주목한다는 점이 인상 깊었습니다.

시에 대한 설명이 끝난 뒤 20행 이상의 시를 쓰는 시간이 40분 정도 주어졌습니다. 우선 시상을 찾기 위해 생활을 돌아보기로 했습니다. 저는 반복적이고 바쁜 일상을 보냅니다. 그런데 이렇게 된 건 어릴 적 도서관을 다니게 된 이후 그 나이에 맞지 않게 놀지 않고 어른처럼 살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나를 다른 사람이 보면 ‘놀 수도 있는 걸 죄악시하고 노오오오력만을 중시하는 꼰대’라는 생각이 뒤를 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성찰의 시를 쓰기로 하였습니다.

이렇게 쓰고 싶은 내용은 어느 정도 떠올랐지만 시작하는 건 쉽지 않았습니다.‘입이 아닌 손이 말을 더듬기도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때 교수님께서 가볍게 시작해보라고 조언을 해주셨습니다. 그렇게 적어낸 말은 도서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단어 ‘정숙’. 천진난만한 아이가 도서관에 처음 가서 떠들 때 손가락을 입에 대며 정숙이라 적힌 팻말을 가리키던 어른들의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그다음으론 ‘하얗다’, ‘파랗다’같은 색채어를 가지고 당황스러워하고 주눅이 드는 시적 화자의 내면을 표현하였습니다. 또한 ‘지린다’라는 표현이 감탄과 충격을 나타낸다는 점에 착안하여 화자의 심정을 구체화할 단어도 떠올렸습니다. 게다가 시적 화자가 어리다는 점에서 ‘지도를 그리다’라는 관용어가 제격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편으론 저는 ‘지도’가 길을 찾는데 쓰이는 도구라는 사전적인 의미를 활용하였습니다. 인생의 길을 찾는 도구로서의 지도는 ‘도서관에서 정숙해야 한다’와 같은 어른들의 사고방식을 나타냈습니다. 이것을 앞 내용과 연결하여 시의 전반부를 정리하면 “순수했던 시적 화자는 어른들의 사고방식이 담긴 인생의 지도를 긴장과 공포에 휩싸인 상태에서 만들게 되었다”가 되겠습니다.

후반부는 어린이였던 화자가 성장하여 어른이 된 상황을 그리고 있습니다. 변성기가 오고 키가 큰다는 것을 목소리가 잠기고 그림자가 길어졌다고 돌려서 나타낼 때 재밌었습니다. 그리고 어른이 된 자신의 가치관, 사고에 확신하고 이를 다른 사람이 원하든지에 상관없이 조언이란 명목으로 주입하는 것을 ‘지도가 기특해서 자선사업을 하였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갑자기 화자는 순수한 존재인 조카의 예상 못 한 말에 충격을 받아 지도를 그릴 것 같다고 합니다. 그 말은 바로 ‘꼰대’ 입니다. 이 단어로 시를 마침으로써 시의 시작과 구조적으로 대칭을 이룬다는 점, 둘 다 시적화자에게 충격을 주는 말이라는 점을 나타내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시를 읽으면서 지도의 상징적 의미를 잘 파악하지 못한 독자 여러분들께서 마무리 즈음에 무릎을 탁 치며 깨달으셨으면 하는 설계도 있었습니다.

특강을 듣고 시를 써보니 시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줄어들었습니다. 그리고 사람에 대한 이해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느꼈는데 이는 의료인이 될 저에게 귀중한 경험이라 생각합니다.

<최우수작>===============================

지도를 그리다

이종현 (치의예과 1학년)

-정숙
살면서 처음으로 내 목소리를 줄이게 한
훈장님처럼 늙은 동네 도서관에 적힌 그 말

여기 오기 전 머리 속에
도서관이 하얬는데
오고나니 도서관에, 머리 속이 하얗구나

하얗게 잠긴 머리 속
파랗게 조여오는 내 입
그날 밤 나는 지도를 그렸다

그리고 지난 세월 동안
나는 그 지도를 보고 돌아다녔다
돌아다니다 보니 목소리는 더욱 잠겼다
그래도 그림자는 조금 길어졌다

어릴 적 그린 지도
뜨끈뜨끈했다
그때는 일이 벌어져도 부끄럽지 않았다
어제는 지도가 기특해서 무료로 나눠주는
자선사업도 했다, 했었다, 했는데
오늘은 이상하다 또 지도를 그릴 것만 같다

어디서 배워 왔는지 모르지만 귀찮은 조카 녀석이 한 말
-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