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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 치과의사

스펙트럼

치과의사로서의 길에 들어선지 어언 50년의 절반이 넘었다. 어영부영 치의예과를 거쳐 비장한 각오로 본과로 올라가 전공과목을 배우며 머리에 쥐가 나도록 외우던 것도 정말 엊그제 같고 본과 4학년 때에 나의 첫 환자를 가슴 두근거리면서 진료하던 설레임도 아직 가슴속에 남아 있는데도 요즈음 긴장감도 없고 영혼 없이 무심코 환자를 보고 있는 나를 발견할 때면 깜짝 놀랄 때가 있었다.

그렇게 어쩌면 치과의사로서 매너리즘(?)에 빠졌던 나의 일상이 요즘 매주 초에 우리 가족들이 함께 TV앞에 모여앉아서 보는 한 드라마를 통해서 많이 달라지려 하고 있다. 그 드라마는 바로 ‘낭만 닥터 OOO’! 지난달부터 모 방송국에서 방영중이다. 일반외과, 흉부외과, 신경외과까지 트리플보드를 달성한 괴짜 천재 의사와 최고의 의사가 되고자 하는 의사, 그리고 타인에게 인정받기 위해서 의사가 된 의사 사이에 교감을 그린 메디컬 드라마이다.

처음엔 또 ‘그저 그런 의학드라마 하나를 또 시작하나보다’라고 생각하고 그래도 의료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 다른 드라마보다는 관심을 가지는 정도의 의미로 보기 시작했었는데 회를 거듭할수록 주인공이 매회 쏟아내는 대사들이 안방극장에 깊은 공감을 전하면서 화제를 모으고 있는 상황인데 이런 의미 있는 메시지를 대사로 자연스럽게 풀어내, 다양한 세대와의 공감력을 높이고 고찰할 계기를 마련해주는 작가는 아마도 우리 의료인들에게 하고 싶은 부탁의 말을 이 드라마를 통해서 전하는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바로 그 대사들이 나의 가슴에 울림을 주면서 매일 병원에서 진료를 할 때 마다 의미를 부여하게 해주고 있다.

“네가 시스템 탓하고, 세상 탓하고, 그런 세상 만든 꼰대들 탓하는 거 다 좋아, 그거 다 좋은데 그렇게 남 탓 해봐야 세상 바뀌는 거 아무것도 없어. 정말로 세상을 바꾸고 싶으면 세상에 필요한 사람이 되면 돼. 남 탓 그만하고 바로 네 실력으로!”

“수술실에서 서전(surgeon)한테 왜 마스크 씌우는 줄 알아? 주둥이 채우라고, 주둥이 채우고 실력으로 말하라고! 자신의 목숨을 맡기고 수술대 위에 올라가 있는 환자 앞에서 이래서 안돼, 저래서 못했어 주절주절 변명 늘어놓지 마. 이유대지 말고 핑계대지 마.”

“내 앞에서 이것저것 따지지 마라. 내 진료에선 오로지 하나밖에 없어. 살린다! 무슨 일이 있어도 환자를 살린다!”

“선생님은 스스로를 좋은 의사라고 생각합니까? 아니면 최고의 의사라고 생각합니까?” 라는 상대방의 질문에 “지금 여기 누워있는 환자한테 물어보면 어떤 쪽 의사를 원한다고 할 것 같아? 환자는 자신의 상황에 필요한 의사를 원하는 거야. 그래서 나는 항상 내가 아는 모든 걸 총동원해서 환자한테 꼭 필요한 의사가 되려고 노력 중이지”라고 답하는 주인공 낭만 닥터!

최근 강남의 한 치과가 수가 덤핑 이벤트로 환자를 유인해서 끌어 모으더니 그야말로 갑자기 폐업 후 잠적하는 소위 먹튀 사건이, 다른 분야도 아닌 바로 이 치과계에서 일어났다. 평소에도 일반 분들이 치과계를 보는 시각이 그리 곱지 않았었는데 그런 분위기에서 엎친데 덮친 격의 완전 찬물을 끼얹는 대 사건 이었고 사회적인 이슈가 된 만큼, 법적으로 처리되는 것뿐만 아니라 이후에 여러 가지 법과 규제가 새로이 우리를 얽매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외부에서 우리에게 요구해서 어쩔 수 없이 끌려갈 것이 아니라 상처 입은 환자분들의 마음의 치유를 위해서, 그리고 우리 치과계 동료들의 암담함을 어떻게 다시 회복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에 대해서, 오히려 이번 사건이 우리 모두 함께 힘을 합쳐서 나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환자가 금방 죽어가는 급박한 상황인데 진료를 시작하는데 필요한 법적인 조건을 모두 충족시키기에는 시간이 너무 촉박해서 서둘러 응급진료를 하여 환자를 살린 후에 그 과정에 대하여 책임에 대한 질책을 당하는 때에 여 주인공이 외친 다음의 말이 마음을 울린다.

“정말로 다, 전부 다 죄송해 죽겠는데요…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약 또 다시 그 상황으로 돌아간다면 저는 똑같은 결정을 내릴 겁니다. 환자를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할 거라는 뜻입니다. 여러분들이 인정을 하든, 안 하든. 저한테 능력이 있든 없든. 어쨌든 저는 의사니까요.”

우리들도 ‘낭만 치과의사’가 되어보는 것은 어떨까요?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전승준 분당예치과병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