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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에 녹아들다

Relay Essay 제2184번째

하루하루를 여행같이 살고 싶은 생각을 늘 품고 생활을 해왔지만 진짜 여행을 기다리는 나의 모습을 보고 나의 일상은 여행 같은 삶이 아니었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 국가고시를 보자마자 떠나는 여행은 나에게 신혼여행이자 그간의 스트레스를 날리는 해방구였다. 국가고시를 핑계로 여행 준비는 모두 아내에게 맡겼지만, 설령 시간이 많았다고 하더라도 분명 제대로 준비하지 않았을 것이다. 정해진 일정을 소화하는 여행보다는 즉흥적인 모험을 하고 싶었고 기존의 관광지를 둘러보는 것 보다는 그 나라 사람들의 삶을 조금이라도 느끼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관광객이 많이 가지 않는 비수기 여행을 즐기고 한 나라를 적어도 2번은 가보고자 했다. 이런 내 생각에 아내도 동의하여 우리가 한 번씩 가본 터키를 여행지로 삼았다.

이스탄불에 도착하자마자 호텔에서 하루를 묵고 바로 카파도키아행 비행기를 탔다. 카파도키아는 버섯 모양의 신비로운 기암괴석, 항아리 케밥, 동굴 호텔로 유명한 곳이다. 이곳을 방문하는 여행객들은 열기구 타기를 필수 코스로 넣는데, 우리의 목적은 열기구가 아니었다. 그 지역 자체의 분위기를 느끼는 것이었다. 동굴 호텔에 짐을 풀고 바로 마을 산책에 나섰다. 비수기라 역시 관광객이 그리 많지 않았다. 한적하게 동네를 한 바퀴 거닐며 여유를 즐겼다. 평소 걷기를 좋아하는 우리에게 두 발은 최고의 여행 수단이다. 동네를 한 바퀴 돌면서 제일 먼저 마트를 찾았다. 어떤 신기한 물건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지 기대하고 들어갔다. 마트 안에는 그동안 보지 못했던 다양한 종류의 과일음료를 비롯하여 터키 사람들의 사랑을 많이 받는 만큼 몇 킬로그램 단위의 대용량으로 파는 요거트, 값싸지만 고급 디저트 같아 보이는 과자들이 내 눈을 즐겁게 하였다. 들어갈 때는 빈손이었지만 나올 때는 양손에 먹거리가 한가득했다. 카파도키아의 주관광지 중 하나인 우츠히사르까지 일반 여행객들은 버스를 타고 가지만 우리는 도보 2시간 거리임에도 불구하고 걷기로 결정했다. 추운 날씨로 인해 고생도 했지만 지도에 표시되지 않았던 경치들이 그동안 카파도키아에서 봤던 다른 관광지보다 더 큰 놀라움과 감동을 주었다.

다음 행선지는 터키의 3대 도시이자 교통의 요지인 이즈미르였다. 여행 책자에는 볼거리가 별로 없다고 설명되어 여행객들이 많이 찾지 않는 도시이다. 나 또한 예전에 왔을 때는 다른 도시로 가기 위해 잠시만 머물렀고 그 때 남은 아쉬움으로 이번에는 3일간 머물기로 했다. 마찬가지로 짐을 풀자마자 지도를 챙겨 발길 닿는대로 걸으며 이즈미르를 온전히 느껴보고자 했다. 코낙 광장을 찾아가는 길에 우연히 상가들이 밀집한 곳을 지나가게 되었다. 그 곳에서 3층 규모의 터키 고유 브랜드 의류 매장을 발견하여 들어갔다. 터키 사람들이 많이 입는 디자인의 옷들을 흥미진진하게 구경하다가 우리도 비교적 마음에 드는 옷들을 구매하였다. 우리도 그들과 같은 옷을 입고 그들의 문화 속에 함께 어울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찾아간 코낙광장! 분수대와 시계탑을 중심으로 조성된 공원인 코낙 광장은 터키 사람들의 여유로움과 자유분방함을 느낄 수 있는 곳이었다. 가족 단위 또는 연인끼리 나온 시민들은 산책을 하거나 편안히 앉아서 여유를 즐기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우리도 여행일정을 잠시 내려놓고 광장 벤치에 앉아 오래도록 햇볕을 쬐고 사람들을 구경하며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해안가를 따라 산책을 하다 보니 바로 옆에 드넓게 펼쳐진 잔디 위를 융탄자 삼아서 편안히 누워있는 시민들이 보였다. 다른 사람들을 의식하지 않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집중하고 그들만의 시간을 즐기는 모습이 부러웠다.

이즈미르에서의 아쉬움을 뒤로 하고 셀축행 기차에 올라탔다. 셀축은 터키에서 가장 유명한 고대 도시 에페스 방문의 거점이 되는 작은 지방 도시로 여행객들은 보통 유적지만 보고 떠난다. 하지만 우리는 이곳에서 3박 4일간 머물면서 구석구석 숨겨진 매력을 느낄 수 있었고 버스로 30분정도 거리인 에게해 연안의 휴양도시 쿠샤다스도 다녀왔다. 셀축은 여느 대도시와 다르게 평화롭고 따뜻한 인정으로 가득한 곳이었다. 거리를 걷다보면 탐스러운 오렌지가 가득 열린 나무와 정겹게 대해주는 마을 사람들을 마주칠 수 있었으며, 일주일에 한번 토요일에 작은 마을을 가득 채우며 열리는 장터는 우리에게 소소한 재미를 주었다. 대도시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사람 냄새가 나는 곳이었다. 우리는 여기에서 에너지를 충전하고 터키 문화 속으로 녹아드는 듯한 충만감을 느꼈다.

여정을 마치고 귀국행 비행기를 탈 때 항상 아쉬움을 느끼지만 이번 10박 11일 여정만큼은 터키 자체를 충분히 보고 느낄 수 있었기에 아쉬움이 남지 않았다. 당분간 터키를 다시 여행하기는 쉽지 않겠지만 나이가 들어 내 아내와 다시 한번 추억 여행을 꼭 해보고 싶다. 여행에서 느낀 감동을 마음속에 간직하면서 나의 일상도 여행하는 것처럼 살아보리라!

고재권 부산대치과병원 치주과 전공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