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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는 내 마음속 영원한 독립운동가

Relay Essay 제2185번째

설 명절은 무엇보다 조상님들의 보살핌에 감사드리며, 후손들에 대한 번성을 기원하는 것이 첫째일 것입니다. 설을 앞두고 가족들이 모두 함께 모여 저녁식사를 하면서 아버지를 통해 우리 가족사에 대해 또 다시 들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는 독립운동가의 후손입니다. 일제시대 친일을 하면 3대가 흥하고,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하여 가난을 대물림 받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의 큰 할아버지와 할아버지 두 형제분께서는 처자식 돌볼 겨를 없이 잃어버린 나라를 되찾기 위해 독립운동에 온 몸을 바치셨습니다.

명절 무렵, 경기도 이천 고향에서 아버지 쪽 형제들이나 친척들을 만나 뵈면 어린 시절의 제 눈에 비친 모습에도 친척들은 대개가 못 배우고 가난해 보였는데, 왜 우리 집안은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 그 이유를 나이가 들고, 철이 들면서 조금씩 이해하게 됐습니다.

우리 집안의 가장 큰 어르신이신 큰 할아버지(1878~1942)께서는 당신이 독립운동을 하셨던 자료들이 당시 각종 신문에 증거자료로 많이 남아 있었기에 비록 해방직후는 아니었어도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아 1982년 건국포장,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수여받으셨습니다.

그러나 너무 늦게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아 그나마 경제적 혜택을 받아야 하는 큰 할아버지의 직계후손들이 없었습니다. 큰 할아버지의 직계 후손들은 지독한 가난, 독립운동가 가족으로서 당할 수밖에 없는 갖은 고초와 핍박 등으로 못 배우고 굶주리며 남의 소작농 생활로 근근이 살아가다 대부분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제 할아버지(류응근, 류병호, 1887~1957)은 살아계셨으면 지금쯤 131세가 되십니다. 할아버지가 인생의 멘토로 생각하고, 앞뒤 가리지 않고 따랐던 분이 독립운동가 형님인 큰 할아버지(류성근)이셨다고 합니다. 열정적으로 독립운동을 하셨던 큰 할아버지에 비해 할아버지는 뒤에서 형님의 독립운동 활동을 도와주는 일을 하셨다고 합니다. 독립운동 자금을 마련해 달라 시던 큰 할아버지의 부탁에 일말의 고민도 없이, 할아버지는 갖고 있던 전 재산을 털어 모든 전답을 담보로 일본인 고리대금업자에게 돈을 대출 받아 고스란히 형님께 독립운동자금으로 지원하셨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결과적으로 모든 가산을 소진하게 되고, 남아 있는 식솔들이 온갖 고초와 가난을 떠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활발하게 독립운동을 하셔서 언론에도 그 활약상이 소개되었던 큰 할아버지에 비해 할아버지는 뒤에서 지원하셨기 때문에 증거자료를 찾기 힘들어 아직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계십니다.

독립운동을 하셨던 큰 할아버지, 할아버지 형제분들로 인해서 아버지 세대 그리고 우리 형제들 세대, 3대에 걸쳐 우리 가문이 비록 고생도 많이 하고, 넉넉하게는 못살았지만 그 아래 세대인 두 딸(다현이, 서현이) 같은 항렬의 조카들을 보면 거의 모두가 명문대학에 진학할 정도로 똑똑한 머리를 가졌습니다. 유전자는 세대를 거듭해도 피 속에 계속 흐르나 봅니다. 앞으로의 미래 세대 후손들은 독립운동에 헌신한 조상들의 후광을 받아 어떤 일을 하던 모두 잘 될 것이란 확신이 듭니다.

비록 할아버지가 국가에서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하더라도, 대가를 위해 독립운동을 하셨던 것도 아닐진대, 저를 비롯해 다음세대인 다현이, 서현이 마음속에는 영원히 자랑스러운 독립운동가의 후손임을 잊지 않고 자부심으로 살아가면서 할아버지, 아버지 세대의 한 많은 인생에 부끄럽지 않은 후손이 되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류성용 뉴연세치과의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