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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오늘도 걷는 이유는

Relay Essay 제2187번째

나이 50이 넘어서부터 확실히 남자의 갱년기 시기임을 느낍니다.

소소하게 이유 없이 화가 나고 잘 삐집니다. 오늘도 아침에 별 이유 없이 답답하고 화가 나는 듯해서, 그리고 이 화가 쉽사리 가라앉지 않을 듯 해 역시 걸어보면 좋은 반응이 나올까하는 기대에 걷기 시작했습니다.

처음 2시간 정도는 계속 가슴이 좀 답답했는데 어느 시점부터인가 답답함이 온 데 간 데 없어졌습니다. 그냥 걷고 있는 나만 존재하며 피곤함과 지루함보다는 잔잔한 재미가 몸을 편하게 합니다.

무슨 화가 있었을까? 찾아지지도 않습니다. 명상 같은 것은 가끔 의지로 마음을 가라앉히는 경우가 많은데 긴 시간 걸으면 걷는 의지만 있으면 몸과 마음이 저절로 편해집니다. 이러니 안 걸을 수가 없습니다.

몇 년 전 까지는 장거리- 최소 25~30km 이상-를 가끔 걸었으나 무릎을 삼하게 다친 이 후는 20km 정도에서 그쳤습니다. 다친 이유는 2012년에 100km, 50km 걷기대회 참가 이후 체력 관리가 잘 되고 제법 빠른 속도 이상을 낼 정도로 걷게 되자 자만심이 들어 산길도 조깅화를 신고 빠른 속도로 걸은 후유증입니다.

평지의 20km도 걸어보면 생각보다 긴 거리입니다. 몸에 무리가 덜 가고 적당히 자신감도 가지는 거리죠. 스스로 체력 테스트를 할 수도 있고. 속도 후련해지고….

그런데 작년부터 40km 이상 걸어야겠다는 생각이 자주 들어 가을에 제법 긴 거리-66km와 42km-를 걷는 대회에 참가했습니다. 무슨 큰 의도가 있다기보다는 과거의 장거리 걷기에 대한 느낌이 여전히 머리와 가슴에 남아 있고, 그리고 제가 관여하는 걷기 팀 회원들의 향상되는 실력에 계속 자극을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장거리 걷기 시 팀을 지원해야 하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는 저로서는 좀 더 긴 거리에 대한 능력을 확인해보고 테스트를 해야겠다는 마음이 자연히 들었습니다. 회원들과 걸을 때, 걷는 재미도 있지만 심리적 지구력이나 신체적 역량에 대한 여유가 충분히 있어야 주위를 살필 수 있습니다. 경험적으로 볼 때 장거리 후에도 나의 체력의 30% 정도는 남아 있어야 정신적으로 여유롭습니다. 과거의 능력은 과거이고 현재는 확인해야 합니다. 또한 누구든지 자주 걷다보면 점점 긴 거리에 대한 열의를 가지기 마련입니다.

오랜 시간 걷기는 자기를 정화하는 독특한 매력이 있습니다. 장거리 혹은 장시간 걷기는 의도를 가지지 않더라도 그 자체로 나를 정화하는 것 같습니다. 딱히 무엇이 그러한지는 확실히 알 수는 없지만 -오래 걷다 보면 현재 밖에 모릅니다- 뭔가 지난 것에 대한 것들이 대수롭지 않게 단순화 되는 것입니다. 장거리 걷기는 저절로 나에게 몰입을 하고 또한 그리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긴 시간을 자기에게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몰입할 수 있는 시간이 있을까요.

얼마를 걷겠다고 생각하기 보다는 일단 나가든지, 혹은 걷겠다는데 초점을 두시면 걷기나 운동 전체에 대한 의무감 같은 부담감이 줄어듭니다. 걷기나 운동 후에 스스로에게 칭찬이나 보상을 시도해 보세요. 남한테 자랑을 하든지요.

그리고 걷기에 적합한 장소를 한두 군데 택하셔서 애정을 듬뿍 주면 거기에 갈 때마다 힘을 얻습니다.

최운침 청주 최치과의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