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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련한 기억의 소환

Relay Essay 제2188번째

저녁 모임이 있을 때 음주를 해야 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자가 운전이 익숙한 관계로 대중교통은 잘 이용하지 않는다. 운전하는 번거로움 때문에 대중교통이 편하지 않냐는 얘기도 하지만 나한테는 해당되지 않는 얘기로 아마도 그 만큼 편한 것에 길들여져 있다는 반증이 아닐까.

하지만 의외의 변수는 일상생활에서 항상 존재한다. 잘 굴러다니던 애마가 속을 썩이더니 결국 몇일 정비소에 들어가 오랜만에 지하철을 이용하게 됐다. “간만에 지하철 여행이나 할까”라는 긍정적인 생각으로 지하철에 올랐다.

타자마자 앉을 자리를 물색하는 내 모습을 보며 학생 때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면 빈자리가 보여도 앉지 않곤 했는데 “너도 나이가 들었구나”라는 생각을 문득했다. 나이 드신 어르신이 몇 분 지나간다. 그 분들께 자리를 양보해야 하지만 오래 가야 하는 관계로 딴 짓을 했다. “죄송합니다. 어르신들 저도 무릎이 좋지 않아서요.”

예전엔 사람들의 손에 신문 또는 책이 들려져 있었지만 핸드폰을 들고 있는 모습을 제외하면 오랜만에 탄 지하철의 풍경은 많이 변하지 않은 듯 했다.

여느 사람들처럼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면서 시간을 때우고 있던 찰라 내 자리 바로 옆에 낯이 익은 내 또래의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어디서 많이 봤던 사람인데… 누굴까?”
짜증나는 순간이다. 분명 기억 저 너머 어딘가에 있는 사람인거 같은데 생각이 날듯 말듯 한 이런 순간.
“누구지? 누굴까?” 그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그 남자 역시 나를 주시하고 있었다. 나랑 똑같은 눈빛으로. 대략 10분 정도 그 남자와 다소 부담스러운(?) 눈빛 교환이 이뤄졌다. 아마도 저 남자도 나랑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는 듯하다.

나이 들수록 기억력이 감퇴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찰라… 아직 녹슬지 않은 기억이 그 남자의 신원을 소환했다. 중학교 때 같은 반 친구 녀석~~!! 그런데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다. 아는 체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이런 생각들을 하고 있는데… 이 녀석이 먼저 다가온다.

이 녀석도 나를 확신하는 눈치였다.
혹시…○○중학교 1학년 11반? 다행이도 둘 다 이름을 기억하지 못했다. 어색하게 이름을 교환하고 지하철에서 잠시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눴다.

마치 지하철역에서 오랜만에 만난 친구를 소재로 한 유명한 노래처럼 말이다. 하지만 얼추 30여년의 공백 때문이였을까? 근황을 묻는 정도 밖에 대화를 깊게 이어가진 못했다.

그리고선 휴대전화 번호를 교환하고 언제 한번 보자는 기약없는 약속을 한 후 각자의 목적지로 향했다.
그 녀석의 뒷모습을 보며… 묘한 감정에 사로잡혔다.

그리고선 잠시 감성에 젖어 동물원의 ‘시청 앞 지하철 역에서’를 핸드폰을 통해 들었다.

“살아가는 얘기 변한 이야기 지루했던 날씨 이야기, 밀려오는 추억으로 우리 쉽게 지쳐갔지
그렇듯 더디던 시간이 우리를 스쳐 지난 지금 너는 두 아이의 엄마라며 엷은 미소를 지었지, 나의 생활을 물었을 땐 나는 허탈한 어깨짓으로 어딘가에 있을 무언가를…아직 찾고 있다했지…”

그 녀석과의 짧은 만남이 노랫 가사에서처럼 뭔가 심오한 철학을 담고 있진 않았지만 30년이란 긴 세월동안 쉽지 않은 세상을 잘 버텨 준 그 녀석에게 고맙다는 마음속의 인사를 건넸다. 그런 인사도 잠시 나는 바쁜 일상 속으로 블랙홀처럼 빨려 들어갔다.

송은기 바이머퍼머저먼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