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8 (목)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기사검색

사고의 유연성과 경직성

시론

세상 사람들은 각자가 볼 수 있는 만큼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는 만큼 들을 수 있습니다. 같은 장면을 보더라도 초등생이 보는 것이 다르고 중고생이 보는 것이 다르고 대학생이 보는 것이 다릅니다. 또한 사람마다 보는 것이 다릅니다. 비슷하고 공통적인 것이 있을 수 있어도 똑같지는 않습니다.

이렇게 서로 다르게 보인다는 것을 알고 인정해야 상대를 비난하지 않고 소통과 화합이 가능해집니다. 이것을 인정하지 않고 내가 본 것만이 옳다는 생각에 사로잡히면 반드시 갈등과 비난과 싸움이 찾아옵니다.

대학생이 초등학생이 본 것을 다르게 보인다고 하지 않고 틀리게 본다고 한다면 초등학생의 의견은 무시되고 가르쳐야 할 대상으로만 존재합니다. 그 대학생 역시 다른 사람이 보면 똑같은 논리로 바로잡아야 할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서로 다르게 보인다는 기본적인 인식이 없으면 상대방을 존중한다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상대방을 설득시키려 하거나 참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하며 살아갑니다.

화합에는 두가지가 있습니다.
화합(和合)과 화합(化合)입니다.

和合은 자기의 성질을 그대로 유지한 채 서로 잘 어울리는 것을 말합니다.

음악으로 치면 피아노와 바이올린이 자기의 소리를 내면서 앙상블을 만들어 내는 것을 말합니다. 피아노 소리만 인정해서 바이올린 소리를 못 내게 하거나 바이올린 보고 피아노를 흉내 내라고 하지 않습니다.

化合은 하나의 성질이 완전히 변하여 다른 화학적 성분으로 변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대부분 和合보다는 化合하려고 애쓰며 살아갑니다.

부부 관계나 직장이나 모든 관계에서 내 의견에 종속시키려고 내가 갖고 있는 지식적인 힘이나 위치적 힘을 가지고 설득시키고 누르려고 합니다. 힘이 약하면 꾹꾹 참으며 살아갑니다.

세상에는 절대적으로 옳고 그르고 절대적으로 아름답고 밉고 절대적으로 길고 짧은 것이 존재 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이 필요에 의해서 만들어 놓은 상대적 가치들입니다. 이 상대적인 것들을 절대화 시킬 때 온갖 고통과 갈등과 괴로움이 찾아옵니다.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교육과 문화속에서 자라기에 이것이 무의식화 돼버려서 절대적인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공통적인 가치와 판단을 소유하게 됩니다. 이런 것들이 이질적인 다른 생각과 문화를 만나면 충돌이 일어나고 갈등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것은 내 생각과 판단을 상대적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절대화 시킬 때 오는 현상입니다.

강남에서 보는 남산과 강북에서 보는 남산은 다릅니다.
평생 강남에 산 사람은 강북 사람들이 얘기하는 남산의 모습을 들으면 헛소리라고 일축합니다. 분명히 내가 남산을 봤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절대적으로 옳다고 얘기하고 자기주장을 놓지 않습니다.
남산은 보는 위치에 따라 무한대의 모습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을 모릅니다. 왜냐하면 자기의 위치를 떠나보질 못했기 때문입니다.

어차피 우리는 자기의 위치에서 보고 판단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상대적 위치와 판단이라는 것을 조금이라도 인식해야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들을 귀가 열립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자기의 위치에 고정돼서 자기가 옳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평생을 살다가 죽습니다.

자기의 생각에 사로잡혀 스스로 감옥을 만들어서 갇혀 버리고 감옥창으로 보이는 조그만 창을 통해 세상을 볼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그 곳에서 보이는 세상이 전부라고 생각하며 살아갑니다.

사실 우리의 무의식에는 대상을 바라볼 때 자동적으로 옳고 그르고 아름답고 좋고 길고 짧은 생각이 올라오기에 상대방의 의견을 편안히 듣고 존중하기가 어렵습니다.

같거나 비슷하면 몰라도 반대 의견의 경우에는 더욱 그러합니다.
그래서 참거나 설득시키려는 반응들이 나타납니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이 사는 곳에는 항상 和合보다는 化合하려는 사람들이 많게 마련입니다.

상대방이 다르게 보이는 것을 인정해주고 존중해 줄때 내 의견도 존중 받습니다.
내가 존중해주고 다르다는 것을 받아들인 만큼 내가 편해지고 눈빛이 부드러워집니다.

사회나 정치적 종교적으로 유명한 사람들도 눈빛이 매섭고 강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많은 지지자가 생겨나는 만큼 많은 반대자들이 생겨나게 됩니다. 일시적으로 승리자가 될 수 있어도 항상 밑에는 타오르는 불씨를 안고 살아갑니다.

남을 설득시키거나 비난할 마음이 없으면 내 마음이 편안합니다.
그래서 상대방의 얘기도 편안히 들을 수 있습니다. 편안히 들으면 정보교환도 좋아지고 배울 기회도 많아집니다. 그러면서 인간관계도 원활해집니다.

가정애서나 사회에서도 즐거운 시간이 많아지고 행복의 시간이 늘어납니다. 그러나 쉽지는 않습니다. 오랫동안 내가 옳다는 생각으로 남을 설득 하려고 하거나 의견이 맞지 않으면 비난이나 험담으로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항상 자기의 위치에서 판단하기 때문에 이기성과 독재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이 개인적으로 나타날 때는 고집이 되고 집단이 될 때는 독재와 불통이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힘을 가진 위치에 있으면 남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기가 쉽지 않습니다. 일방적 통행은 관계가 경색될 수밖에 없고 힘이 약해지면 후유증을 낳게 됩니다.

생각이 부드럽고 유연하면 살아서 꿈틀거리지만 소통되지 않는 견고하고 강함만 앞세우게 되면 죽음의 길만 재촉할 것입니다.

柔弱者 生之徒
堅强者 死之徒
(부드럽고 약한 것은 살아있는 무리요, 견고하고 강한 것은 죽음의 무리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