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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서 한 번쯤, 히말라야-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트레킹

Relay Essay 제2189, 90번째

세계 여러 곳을 안다녀본 곳이 없을 정도로 누비고 다닌 어느 가이드가 꼭 가볼만한 여행지로 네팔을 꼽는 걸 예전에 들은 적이 있다. 언젠가 꼭 가보려고 마음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던 네팔. 그 곳을 이번에 병원 식구들과 가게 되다니. 기뻤다. 걷고 또 걷는 반복되는 동작속에서 일상속에 묻혀서 하기 힘들던 생각들을 정리하고 중요한 결정들을 내릴 수 있다고들 하는데 특히나 그 환경이 이 곳과는 너무나 다른 태초의 풍광속 이라면 좀 더 큰 생각들을 품어서 돌아올 수 있을 것 같았다.

 히말라야 트레킹의 대표적인 코스로 푼힐(hill이라고 이름붙었지만 3000m가 넘는다고 한다)과 ABC가 있는데 신비로운 설산을 눈앞에서 보고 싶었기에 우리는 ABC로 일정을 잡았다. 병원 일정 조정 때문에 직항대신 경유를 통해 가느라 밤늦게서야 카트만두에 도착했다. 그 다음날 일찍 포카라로 가기 위해 국내선 공항으로 이동했는데, 프로펠러로 돌아가는 정말 조그만 비행기를 보고 다들 꽤나 놀랐다. 그 좁고 흔들리는 기내에서 40분의 짧은 시간동안 커피를 나무스틱까지 챙겨 서빙해주는 승무원은 더 놀라웠지만 말이다. 창문밖으로  구름위로 솟은 설산들이 보이기 시작하자 히말라야로 가고 있다는 실감이 들기 시작한다. 가는 방향에서는 오른쪽 창문에 앉는 것이 설산들의 파노라마를 볼 수 있는 포인트.

포카라 공항에서 현지 가이드와 포터를 만나 짐을 정리하고 어느새 트레킹이 시작되었다. 지프차로 페디까지 이동해서 오스트레일리안 캠프로 가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2인당 1명의 포터에게 짐을 맡기는데 15키로가 포터 1인 최대치의 무게라서 큰 짐들만 맡기고, 배낭을 맸는데 꽤나 무겁다. 끝없이 이어진 계단을 오르는데 걸음이 자꾸 느려지면서 점심시간 역시 자꾸만 늦어지고 있었다. 초등학교 5학년 정도의 체력이면 히말라야 트레킹에 충분하다고 여러 블로그에서 봤더랬는데, 내 체력이 이렇게 약해져 있었나, 트레킹을 무사히 마칠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섰다. 너무 힘들고, 배도 고파서 조금만 더 조그만 더 이러면서 겨우 걷고 있는데 갑자기 눈앞에 설산들이 ‘훅’ 나타났다. 넓디 넓게 180도로 히말라야의 설산들이 내 눈 앞에 펼쳐져 있었다. 소름 돋는 아름다움이다. 경치에 반한 오스트레일리아 인들이 여기에 캠핑을 시작하면서 원래 지명대신 이 별명으로 더 유명해졌다고 하던데, 과연 그럴만한 경치였다.
가이드가 손으로 짚으며 봉우리들의 지명을 알려주는데, 저 안나푸르나를 향해 우리가 나아갈 것이란 사실에 앞으로 가야할 길의 길이와 높이가 큰 무게감으로 다가왔다. 갈 길이 멀었다. 가이드가 “잠잠”이라며 우리를 재촉했다. 어서어서 가자는 말이란다. 걷고 또 걸었지만 오늘의 목적지였던 란드룩 까지는 결국 가지 못하고 어두워진 길을 겨우 더듬어 톨카에 묵게 되었다. 핫샤워가 가능하다는 가이드의 말에 뭉친 근육들이 이제야 숨을 쉬겠구나. 하며 기대감에 샤워기를 켰건만 뜨겁지 않고 미지근하게 졸졸 나오는 물에 떨면서 새삼 내가 두고온 것들, 당연하게 일상이 되어 있는 작은 것들이 얼마나 대단한 편리인가 생각했다. 저녁을 먹고 나니 좀 기운이 났다. 히말라야에 오면 꼭 별이 쏟아질듯한 밤하늘을 보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톨카에서 봤던 그날의 밤하늘이 그 이후 히말라야 어디에서 보다도 아름다웠다. 잠들기 전 롯지 조명이 좀 꺼지고 나니 희뿌연 은하수까지, 별들의 바다가 펼쳐졌다. 목이 아픈 줄도 모르고 오래도록 쳐다 보고 있다가 어느 순간 만난 별똥별에 소원까지 빌었으니 그야말로 완벽한 ‘별 헤는 밤’이다. 일정이 밀렸기 때문에 우연치 않게 묵었던 곳인데, 그 덕분에 이렇게 아름다운 별밤을 선물 받았으니, 인생에서 우리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는 일들에 쉽게 실망하지 말아야 겠다고 새삼 생각하게 된다. 생각지 못했던 반짝이는 선물이 그 뒤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수 있으니까.

난방이 되지 않는 롯지들 때문에 포카라 현지에서 빌린 침낭속에 핫팩을 넣고 뜨거운 물을 받은 물통을 가슴에 꼭 끌어안고 겨우 잠이 들었다. 뭉친 근육들 때문에 일으켜지지 않는 몸을 일으켜 겨우 맞이한 아침은 힘들었지만 가야할 길이 너무 멀기에 부지런히 움직여야 했다. 어제의 목표점 란드룩을 지나 뉴브릿지, 그리고 지누단다까지 많이도 걸었다. 하루에 4계절을 체험할 수 있다고 하더니, 그늘 없는 곳은 여름의 태양이다. 점심 먹으러 들른 지누단다 롯지의 나무 마루에 앉아 햇빛에 발을 말리는데 햇살이 얼마나 뽀송뽀송하던지... 올라온 계단들의 높이만큼이나 넓게 내려다보이는 풍경과 달콤한 바람까지 잊지못할 여유였다. 걷고 또 걸어도 목적지는 멀고, 해는 져가는데 촘롱에서 시누와까지 향해있던 끝없는 계단들을 봤을 때는 한숨이 앞섰다. 하지만 신기한 건 그렇게 멀어보이던 계단들도 그 계단들을 올려다 보지 않고 내 발끝만 바라보며 그냥 ‘한걸음만 더’걷다보면 어느새 끝나 있다는 것이다. 어스름에 드디어 시누와 롯지에 들어서서 한숨을 내쉬었다. 힘들때는 멀리 내다보지 말고, 지금 이 순간에만 최선을 다하면 된다는 작은 깨달음을 얻은 둘째날이었다.

다음날 시누와에서 뱀부, 도반을 지나가는데 산속 오솔길이 많아서 내가 꿈꿔왔던 히말라야 트레킹의 길을 걷는 느낌이 들어서 참 행복했다. 길이 끝나는 것이 아까울 만큼. 셋째날은 길이 좁아서 혼자 걷는 길이 많았는데, 혼자서 떨어져서 각자 몫의 길을 걷다보니, 참 외로운 길이지만 그래서 더 나와 함께 가는 팀원들이 소중해지는 그런 길이었다. 오늘의 목표점 3200미터 데우랄리까지 부지런히 걸었다. 고산병예방을 위해 씻지도 말고-추워서 씻을수도 없었지만- 물을 많이 마셔야 한다고 했다. 잠을 잘 자야한다고 했는데 예방약으로 먹은 고산병약의 이뇨성분 때문인지 잠을 설치고 말았다. 몽롱한 정신에 길을 나서는데 컨디션이 이상했다. 태고적인 풍경들이 눈앞에 나타나고 있었는데 감상은 커녕 걷는 것도 쉽지가 않았다. 겨우 MBC (마차푸차레 베이스캠프)에 도착해서 일단 점심을 먹으며 컨디션을 보기로 했다. 무리해서 ABC까지 고도를 높이지 말고 MBC까지 함께 올라왔다는 것에 의미를 두자고 팀원들이 말해 줘서 정말 고마웠다. 하지만 여기까지 와서 못올라간다면 평생 큰 후회가 될것만 같았다. 점심을 먹고 쉬고 나니 어지러운 것도 덜하고 걸을만해져서 ABC까지 가기로 했다. MBC를 숙소로 잡고 짐을 다 두고 등산스틱하나만 짚고 길을 나서니 훨씬 걸음이 가벼웠다.

 ABC에 도착했다. 정상에 도착했다고 해서 축포가 터지는 것도 아니고, 뭔가 더 엄청난 경치가 날 휘감는 것도 아니었다. 내 마음속에 목표했던 목표를 이루었다는 것에 나 스스로의 인정과 의미가 있는 것이었다. 목표점보다는 목표로 가는 그 길들 속에서 더 많은 생각과 느낌들이 있었던 것 같다. 가이드 말이 자기가 처음 이곳에 왔던 20년전보다 점점 온난화가 심해져서 오래지 않아 ABC가 폐쇄될 수도 있을거 같다고 했다. 올라오는 길에 핫팩 쓰레기를 보았는데 새들이 먹이 인줄 알고 쪼아먹고 죽는 경우들이 자꾸 생겨서 네팔 정부에서 핫팩을 들여오는 걸 금지하는 걸 고려중이라고 한다. 당장 나역시도 밤의 추위를 잊기 위해 너무나 요긴하게 썼던 물건이 그곳의 원초적인 자연을 파괴하는 걸로 쓰일 수 있다고 생각하니 너무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어차피 불편함 속에서 깨달음을 얻어보려고 떠나는 여행인데 좀 더 불편해도 괜찮은데 말이다.

 고산병 증세는 고도를 내려가면 거짓말처럼 없어진다더니 그날은 꿀잠을 잤다. 다음날 새벽 일찍 눈이 떠져서 마당에 나가보니 새벽 어스름속에서 마차푸차레 봉우리가 신령스럽게 빛나고 있었다. 해질녘에는 설산에 비친 황금빛 햇살들이 반사되어 눈이 부시더니, 새벽의 설산은 스스로 빛을 내는 느낌이었다. 신비로운 산의 기운속에서 아침해가 떠오르길 기다리며 봉우리들을 하나씩 마음에다 새겼다.

 아침을 먹고, 그동안 올라왔던 길을 복기하며 걸음을 나서는데 길은 낯익지만 그 길을 바라보는 나의 느낌은 또 새롭다. 내가 이렇게 높은 봉우리들을 넘고 또 넘었던 것인가. 신기했다. 고생한 나를 대견하다고 인정해 주고 싶었다. 올라올때는 사실, 내 체력의 한계가 너무 느껴져서 그동안 체력관리에 소홀했던 자신이 못나보이기만 했는데 말이다. 돌아보지 않았다면 보이지 않았겠지. 앞으로 나아가는 것에만 눈을 두지 말고 좀 더 자주 뒤돌아봐야겠다는 결심이 들었다. 인생을 살면서 아쉬웠던 것들, 후회되는 것들도 사실 조금씩 나를 이루는 바탕이 되었기에 돌아보면 어떤 식으로든 의미점이 있기 마련이다. 그러니 그런 과거의 기억들도 후회되고 아쉽다고 해서 나를 탓하거나 기억의 바닥에 묻어두기 보다는, 묵묵히 걸어서 잘 지나온 스스로를 더 긍정하고 칭찬해 주어야 마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흘간 올라갔던 길을 이틀만에 내려와서 포카라까지 지프를 타고 이동했다. 포카라 숙소에 도착해 핫샤워란 글자 그대로의 의미로서 뜨거운 물줄기를 맞는 순간의 행복감이란... 깨끗한 시트가 펼쳐진 쿠션좋은 침대에 몸을 눕히는 것만으로도 모든 피로가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이렇게 작은것에도 나는 행복할 수 있는데 참 많은 것들을 부여잡고 살고 있다 싶었다.

 히말라야를 내 두 발로 다녀왔다고 해서 내가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떠나기 전 기대했던 거창한 깨달음 같은 걸 얻은 것도 아니다. 그래도 걷고 또 걸었던 그 무수한 길목에서 스쳐갔던 많은 생각들이 조금은 나를 성장시키는 11일간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혼자서라도 언젠가 가려고 마음 먹었던 곳을 혼자가 아닌 팀원들과 함께 걸어서 더 좋았고 함께 걸었다는 그 결속력이 팀원들에 대한 마음으로부터의 믿음을 더 공고히 해 주었기에 더욱 의미있는 걸음들이었다. 주변 지인들에게 인생에 한번쯤 다녀와 보길 권해주고 싶다. 특히나 인생에 힘든일을 겪고 나서 스스로가 못나보이는 슬럼프를 겪고 있는 상황이라면 더더욱 히말라야로 배낭을 꾸려 떠나라고 말해주고 싶다. 일상으로 복귀하고는 어느새 잊고 있었는데, 글을 쓰다보니 히말라야의 풍광들이 많이 그립다. 오늘밤엔 사진들을 좀 들쳐봐야겠다.

조주영 닥터노아치과의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