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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남

스펙트럼

“원장님! 안녕하세요??”
어느날 카톡에 정체불명의 문자가 하나 들어왔다 .

작년부터 병원 카카오스토리와 카톡으로 매일 문자 보내고, 사진 캡쳐해서 올리고 하는 온라인 스토킹을 당하고 있었던지라 초긴장, 짜증 등의 복잡한 심정으로 조심스럽게 응답을 했다.

내가 몇년간 정성을 들여서 치료해 주고 있는 장애인 환자임을 확인하고 난 다음에야 안심을 했는데 안심 보다는 놀라웠다. 어떻게 주환이가 카톡을 하다니! 주환이는 언어와 사지신체를 전혀 움직이지 못하고 휠체어생활하는 장애인이기 때문에 더 놀라웠다. 말을 못하니까 패드에 왼손으로 구불구불한 글씨를 써서 의사소통을 한다. 주환이는 패드로 이 세상의 모든 경험을 하면서 지적욕구를 채우는 것이다.

몇년 전 내가 6년째 주치의로 있는 주한 파라과이 Ceferino Valdez 대사님 사진을 주환이가 온라인을 통해서 보고, 직접 만나고 싶다고 주환이 아버지를 통해 부탁이 들어왔다. 이런 생각을 하는 것도, 부탁을 하는 것도 우리가 통상적으로 장애인이 하기가 쉽지는 않은 행동이라 고민을 했다. 어떤 식으로 만나게 하는 이벤트를 만들어 주고 싶은 내 마음도 덩달아 가슴이 뛰었다. 며칠을 고민을 하다가 Valdez 대사님에게 직접 전화를 드려, 주환이의 장애 상태를 설명을 하고 중남미의 심장 파라과이! 멋진 대사님을 만나고 싶어한다는 등 온갖 안되는 영어 미사여구를 총동원하여 장황하게 통화를 했다. 나의 설명은 십분이 넘었는데 대사님의 첫 마디는 “O.K!! Dr. Kim이 원하면 당장이라도 그를 만날수 있다!”

뭔 이렇게 맥 빠지게 쉬운 협상이 있담! 아마도 거절을 하면 나중에 치료를 할때 아프게 할 것 같은 보복이 두려웠으리라.

당시 Valdez대사님은 한국에 거주하는 중남미 13개국 대사님 중 대표 대사님으로 외교적으로 정치적으로 중요한 임무를 도맡아서하는 분이셨고 너무나 많은 미팅이 줄이어 있다는 것을 알기에 부탁하기도 어려웠다. 이렇게 주환이와 대사님의 첫 만남은 준비가 되었다.

D-day는 대사관 비서실을 통해서 잡혔고, 장소는 휠체어 타고 가야하는 주환이를 고려해서 대사관 보다는 병원에서 하자는 대사님의 따뜻한 배려에 함께 준비하고 기다리는 그 설레임은 결혼식장에 입장하는 신랑의 가슴이라고 할까….

드디어 당일날, 깨끗하게 이발하고 주환이 부모님 두 분이 끄는 휠체어에 앉아 환하게 웃는 주환의 모습은 천사 같았다.

크게 웃으면 웃을수록 주환이의 안면근육은 신경과 근육의 부조화로 일그러지고 침은 흘러내지만, 주환이의 기뻐하는 표현을 보니 내 가슴 한쪽의 얼음이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대사님은 그 큰 덩치의 허리를 구부려 휠체어에 앉아서 웃고 있는 주환이를 따뜻하게 포옹해 주셨고, 주환이의 상태를 면밀히 살펴보시고, 당신의 나라 파라과이 장애인 얘기도 해 주셨다.

주환이는 패드에 또 구불구불한 글씨로 표현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실제로 보니 사진보다 더 미남이십니다” “이렇게 멀리 와서 만나주시고 소원을 풀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파라과이까지 가는데 몇시간이 걸리나요?”등등 주환이의 질문에 대사님은 하나하나 천천히 친절하게 대답을 해주시고, 간간히 유쾌하게 웃으시면서 주환이를 쓰다듬어주고, 손을 잡아주고, 포옹도 해주시면서 편안하게 만남을 이끌어가는 모습을 옆에서 보니 과연 남미 최고의 외교관이구나 하는 결론이 내려졌다.

살아가면서 수 많은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지만 평생동안 이렇게 감동적인 만남은 과연 얼마나 될까?
그 날 나는 나에게 이렇게 칭찬했다.

“김미애!! 오늘도 너 참 잘했어!!
오늘 환자 한 사람도, 못 보았지만 한 사람의 소원을 풀어주었으니 하나님께서 복을 주실거야!!”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