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8 (목)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기사검색

불의는 정의를 이길 수 없다

그림으로 배우는 치과의사학- 2

마이클 샌델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에 토머스 롤런드슨(Thomas Rowlandson, 1756-1827)의 작품 ‘Transplantation of teeth(1787년)’은 아래와 같이 언급되어 있다(그림 1).

<칸트 시대에 콩팥 시장은 성행하지 않았지만, 부자들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치아를 사서 자기 잇몸에 심었다. 18세기 영국 캐리커처 화가 토머스 롤런드슨이 치과 진료실 풍경을 그린 ‘치아 이식’에는 의사가 굴뚝 청소부에게서 이를 빼고 그 옆에서 돈 많은 여자들이 치아 이식을 기다리는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 칸트는 이를 인간 존엄성을 침해하는 행위로 보았다. 누구도 “자기 팔다리를, 심지어는 치아 하나라도 팔 자격이 없다” 이는 자신을 대상으로, 단순한 수단으로, 이익을 위한 도구로 여기는 행위이다.>

그는 정의롭지 못한 사례로 돈만 있으면 타인의 치아를 사서 이식받을 수 있었던 동종이식(Homo transplantation)을 손꼽았다. 지금의 관점으로 보면 말도 안 되는 진료이지만 18세기 한때 유럽과 미국에서 유행하였다. 그때는 맞았고 지금은 틀리다. 치과에서 임상을 하다 보면 치료를 잘할 수도 있고 때론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잘못된 치료는 용서받지 못할 죄일 것이다. 의치(義齒)와 정의(正義) 모두 ‘옳을 의’가 사용된 것은 우연은 아니다. 치과임상에서 글자대로 진료가 된다면 치의학 사전에서 윤리(ethics)와 도덕(moral)은 사라질 텐데….

작품에 8명이 그려져 있는데 풍자하는 그림이기에 저마다 존재의 이유가 있다. 정중앙에 옷을 잘 차려입은 치과의사가 굴뚝 청소부 소년의 하악 소구치를 발치하고 있다(그림 2). 소년의 우측에는 발치된 치아를 이식 받을 귀족 부인이 공포에 질린 채 걱정스런 모습으로 대기 중이다. 이 부인은 왼손에 smelling salts 병을 코에 바짝 대고 있다. 이 병에서 발산된 암모니아 가스는 환자의 코 점막을 자극함으로써 정신을 들게 하는 효과가 있다. 진료실 바닥에 떨어져 있는 포셉은 어떤 의미일까? 위생의 결여와 감염의 위험성을 암시하고 있다. 이 작품이  진료실의 감염방지에 대해서 성찰의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그림의 우측에는 또 다른 치과의사가 아가씨 환자에게 치아를 이식하고 있다(그림 3). 그녀의 치아는 이미 발거되었고 이식된 치아를 고정하고 있는데도 그녀는 여전히 두 손의 주먹을 꽉 쥐고 있다. 18세기 치과 유니트 체어는 안락의자(arm chair)였지만 환자는 안락할 수 없었기에 그녀가 잔뜩 긴장하고 있는 모습이 역력하다. 아가씨의 뒤편에서 거울을 보고 있는 멋쟁이 남자 환자는 이미 치아 이식을 받은 후 치료 결과를 무심하게 바라보고 있다.

그림의 가장 좌측에는 허름한 옷을 입고 있는 소년과 소녀가 치아를 발치당한 후 아픈 턱을 움켜쥐고 문을 나가는 모습이다.(그림 4) 두 사람 손의 위치를 보면 소년은 상악 전치부를 만지고 있고 소녀는 하악 구치부를 잡고 있다. 아마도 그 치아들을 팔지 않았나 싶다. 특히 아픈 와중에도 치아를 팔고 받은 동전을 보는 소녀의 모습이 안타깝게 보인다.

진료실은 소박하고 화려한 장식은 없어 보인다. 진료실 벽에 써진 글씨가 ‘Baron Rom is Dentist to Her High Mightyness the Empress of Russia’ 눈에 띤다. 다분히 홍보 문구로 보이지만 반전은 글씨 상단에 그려진 그림에 숨어있다. 노란 왕관을 중앙에 두고 양쪽에 오리처럼 보이는 새가 두 마리 그려져 있다. 만약 오리라면 돌팔이 의사를 뜻한다. 가난한 사람에게서 건강한 치아를 돈을 주고 사서 시술하는 행위를 비난하는 상징물이다. 그림속의 치과의사는 그 시절 명성을 떨쳤던 치과의사 Bartholomew Ruspini(1728-1813)로 추정된다. 그 이유는 실제 Ruspini의 모습과 비슷하게 그려져 있고, 그는 이 무렵 영국 왕세자의 치과 주치의였고, 가명이지만 B와 R로 일치하는 것으로 보아 작가의 숨겨진 의도가 보인다.

진료실 출입문에는 ‘Most money given for live teeth’라고 적혀있다. 정말 그랬을까? 치아를 팔고 받은 동전을 쳐다보고 있는 소녀가 문구의 허구성를 입증하고 있다. 그 시절 치아 이식술의 치료비도 궁금해진다. 정확한 치료비는 확인할 길이 없지만 어느 정도 가늠할 근거는 있다. 18세기 후반부터는 치아 이식은 미국에서도 인기가 많았다. 미국으로 건너간 프랑스 치과의사 피에르 르 메이외(Pierre Le Mayeur)는 치아 이식을 통해 5년 만에 경주마 조련장을 구입할 수 있었다고 한다. 심지어 어떤 이는 죽은 사람에서 발거된 치아가 이식된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믿고 싶지 않은 역사적 추론이다.

18세기에 치아이식의 성공은 어떤 의미였을까? 제일 잘된 경우에는 이식된 치아가 한두 달 만에 고정이 되어 몇 년을 버티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 6개월 안에 손가락만으로도 발치할 정도였다고 한다. 이처럼 성공률이 낮음에도 불구하고 가난한 사람 특히 어린 아이들의 생니를 발치하여 부유한 사람에게 이식하는 행위는 미친 짓이었다. 모든 면에서 정의롭지 못하였다. 19세기에 접어들면서 의치 시술이 개선되고 이식 치아를 매개로 매독 전염의 위험성 때문에 동종 치아 이식은 중단되었다. 치의학 역사에서도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었고, 거짓은 참을 이길 수 없었다. 이처럼 과거의 잘못은 반복되지 않아야 한다. 

진료실 벽에 써진 ‘Dentist’가 남다르게 보인다. 용어 Dentist는 현대 치의학의 아버지라 칭송되는 Pierre Fauchard(1678-1761)의 저서 ’Le Chirurgien Dentiste(1728)’에 처음으로 등장한다. 포샤르는 실외에서 진료하였던 tooth puller와 같은 기술자를 실내에서 진료하는 전문 직업인 Dentist로 업그레이드 시켰다. 치과의사, 선생님이 될 것인가? 사장님이 될 것인가? 이 문제는 오롯이 우리의 의지대로 선택할 수 있다. 

권 훈                                      
조선대학교 치과대학 졸업
미래아동치과의원 원장
대한치과의사학회 정책이사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