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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태 흉상 제막식을 마치고

기고

지난 2월 6일 협회회관내에서 토선 함석태(土禪 咸錫泰) 흉상 제막식이 있었다.

그날은 참으로 기쁜날이었다. 우리의 뿌리를 찾고 그분의 얼을 기리는 터전이 마련되었다. 그분의 흔적이 너무 크고 우리가 추구해야 할 치과의사상을 모두 갖춘분이다. 생각할수록 애정이 가고 연구할수록 더 깊은 심연으로 빠져든다. 우리가 본받아야 할 스승이시다.

한국 최초의 치과의사 함석태는 당시 치과의사라는 직업자체가 없던 시절 개척자 정신으로 일본에 유학하여 최초의 치과의사가 되었다.

일본 치과의사들 틈에서 고군분투하며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한국인의 구강위생이 엉망인것을 안타까워하며 특히 일본 어린이들은 치약으로 이를 닦는데 우리 아이들은 소금으로 닦아 충치가 많이 생겼다고 탄식하며 동아일보 등에 구강위생 계몽에 관한 많은 글을 남겼다. 그러다 경성치과의학 전문학교에서 한국인 치과의사가 배출되자 한국인만으로 ‘한성치과의사회’를 조직하여 서로 격려하며 국민건강을 지켰다. 1925년의 일이다.

현 서울특별시치과의사회 연원이 된 것이다.

일본인들이 도굴하고 수집해 일본으로 가져가는 민족 문화재를 안타깝게 여겨 푼푼히 문화재를 수집했다. 도자기와 민속품을 주로 수집했고 서화 소장품도 상당수 있었다. 일제강점기 수장가의 반열에 들 만큼 많은 문화재를 소장했다. 당시 수집가중에는 돈을 벌기 위한 수단으로 수집한 사람들도 많았으나 함석태는 순수했다. 소장하던 진홍백자 금강산연적은 가장 애지중지하던 것이다. 금강산연적은 험준한 봉우리를 첩첩히 만들고 계곡 곳곳에 사람과 동물, 정상에는 다층 누각집을 배치하였고 화려한 채색 안료를 사용하여 장식성을 힘껏 발휘하였다. 굵은 음각선을 새겨 바위산의 질감을 강조한 이 연적은 코발트와 구리 안료를 채색하여 靑紅의 변화를 화려하게 강조하였다.

2006년 6월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개최된 ‘북녘의 문화재’ 전시회 도록만 봐도 정말 품고 싶고 함석태 선생의 채취를 느껴보고 싶다. 본인이 항상 품에 안고 다녔던 문화재인데 본인은 간데없고 물건만 빼앗긴듯 싶어 너무 마음이 아프다.

‘小物珍品大王’이라는 평을 가진만큼 작고도 모양이 독특한 磁器들에 있어서는 일제 강점기 손꼽히는 문화재 수장가였다.

민족의식과 애국운동을 했던 일도 간과해서는 안된다. 1919년 9월 2일 오후 5시 남대문역(현서울역)에서 사이토미노루(濟藤實) 총독을 저격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姜宇奎 의사의 어린 손녀 姜英才를 함석태가 맡아 키워 이화여전까지 졸업시켰다. 함석태 선생의 유일한 남은 사진 한장도 姜英才가 보관했던 것을 손자 함 각이 취득한 것이다. 이 흉상도 이 사진을 근거로 제작했으니 아이러니하다. 또 독립운동가 도산 안창호(島山 安昌浩) 선생을 유치장까지 출장하여 치과치료를 해주었다. 일제의 눈치를 보면서도 당당하게 해냈던 불굴의 민족정신을 기려야 한다.

사회적으로 사귐의 폭이 넓어 ‘장택상사랑방’모임에 참석하여 尹致映 孫在馨 李如星, 화가 都相鳳, 의사 박병래 , 배화여고 교장 李萬珪, 문학가 李泰俊 등 사회저명인사와 교류를 가졌다.

이밖에 광화문 네거리 동북부 교보문고 앞에 있는 비각(고종황제 四十年稱慶記念碑閣) 태극문양 철제문도 함석태 소장품이다. 일제 강점기에 길을 넓히느라 뜯어 경매 할때 함석태가 경매를 낙찰받은 것으로 “진고개 부호가 거액으로 탐내 왔으나 굳게 보관한 것이다.” 치과의사들은 광화문 네거리를 지날때마다 무심코 지나치지 말고 유심히 보면서 함석태 선생을 기려야 할 것이다.

왜 우리가 함석태 선생의 흉상을 제작해 모시고 그 뜻을 기려야 하는가를 조금이나마 피력했다. 그 날 참석한 유일한 함석태 선생의 혈육인 손자 함 각은 눈물을 흘렸고 나도 가슴이 뭉클했다. 그리고 뿌듯했다.

함석태 선생의 기운이 우리협회회관을 감싸고 선생님을 본받아 사회봉사하고 국민으로부터 존경받는 세상의 빛과 소금이되는 치과의사가 많이 배출되길 기원해본다.
자체 회관을 갖고 있는 시도지부에서도 흉상을 제작해 뜻을 기리기를 권고합니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변영남 함석태 흉상 제작 추진 위원장, 협회사 편찬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