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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가버스서 눈물 흘리며 밥벌이 엄중함 느꼈죠"

개원 첫 주 신환 2명 어떻게 찾아왔는지 신기해
어수선하지만 정감 있고 다 되는 치과로 만들 터
2017 기획시리즈-나의 개원 분투기 <2>정유란 원장

안녕하세요? 저는 지난해 11월 23일에 파주시 운정지구에 ‘모두애(愛)치과의원’을 개원한 정유란(35) 원장입니다. 개인적으로 한때 유행했었던 ‘모두의 OO’이라는 모바일 게임을 굉장히 좋아하는데요, 여기서 착안해 저희 치과를 찾는 모든 분들을 사랑으로 진료하겠다는 생각으로 치과명을 지어보았습니다. 3개월이 지난 지금까지는 여전히 환자분 모두를 사랑하…려고 노력하고 있답니다. 하하하!

저는 신도림 인근의 치과에서 6년 동안 페이닥터 생활을 하다가 조금은 별안간 개원을 하게 되었습니다. 개원에 적극적이지는 않았지만, 개원하기로 마음먹고는 서울 내에 있는 인수 치과를 많이 돌아다녔는데, 인수 비용도 너무 높고, 생각했던 것과 너무 달라 신규로 마음을 돌렸지요. 그러던 차에 친구의 소개로 아주 운 좋게 이곳 파주 운정지구에 둥지를 틀게 됐습니다.

# 머릿속 그림과 현실의 풍경은 다르다!

출퇴근 시간이 8분에서 80분으로 10배가 늘어난 것과 마찬가지로 치과 경영주의 생활은 생경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개원 첫 주에는 환자가 두 분 찾아올 때도 있었는데, 신기할 지경이었습니다. 아니, 마케팅도 전혀 안 했는데 도대체 어떻게 알고 찾아 오신거지? 직원들과 첫 회식을 하는데, 저는 비싼 걸 시키라고 독려했지만 직원들은 선뜻 주문을 못하는 거예요. 돈 못 버는 원장을 위하는 기특한 스탭들을 잘 채용했다고 생각했죠. 하하하!

이어지는 침묵의 시간에는 ‘멘붕’이 엄습하기도 했고, 버스 타고 귀가하는 길에 ‘밥벌이의 엄중함’을 느끼기도 했죠. 퇴사 후 1년 반 정도 쉰 친구와 통화 중 “나는 지금 며칠 째인데도 마음이 이런데 너는 그 긴 시간을 어떻게 버텼니?”라며 눈물을 쏟기도 했어요. 지금은 여 선생님이 야무지고, 친절하다며 소문이 나서 상황이 제법 좋아졌지만요.

저는 사실 너무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개원가에 나왔어요. 개원을 염두에 두고 페이닥터 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자기가 쓸 재료의 리스트부터 일목요연하게 정리한다고 하는데, 저는 지금 저한테 맞지 않는 재료를 잔뜩 주문해서 땅을 치고 후회하고 있는 중입니다. 반드시 개원을 하지 않더라도 개원하겠다는 자세로 봉직의 생활에 임하면 큰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저는 치과의 컨셉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어요. 당연히 치과에는 명확한 컨셉이 있어야 된다는 생각으로 제가 좋아하는 분야인 ‘심미치과’ 컨셉을 염두에 두었습니다. 그리고 마케팅 전문가인 친구와 심도 있는 토론을 했죠. 그 친구의 얘기인 즉, 컨셉을 명확히 하고 환자를 가려 받지 않으면 ‘김밥천국’이 되어 버린다. 이도저도 아닌 특징 없는 동네치과가 돼버리기 십상이라는 거죠. 그런데 머리의 그림과 현실의 풍경은 같지가 없더라고요. 어르신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어르신 환자가 많고, 케이스도 생각했던 것보다 굉장히 다양한 거예요.

그래서 저는 지금은 마음을 비우고 그 친구가 우려했던 ‘김밥천국 치과’로 만들어 가기로 마음먹었어요. 김밥천국, 얼마나 좋아요? 어수선 하지만 안 되는 메뉴 없고, 부담 없이 찾는 사람도 많고. 하하! 정감 있고 사람 냄새 나는 치과로 만들고 싶다는 저만의 컨셉을 정했지요.

# 여성 치과인들 불안감 상존

최근에는 걱정거리가 하나 생겼어요. 개원 과정을 도와주던 어떤 남성분이 계약 기간이 만료된 이후에 치과에 무단 침입해서 컴퓨터에서 뭔가를 빼가려고 한 사건이 일어났어요. 보안키 반납도 미적거리더니 최근에 핸드폰으로 ‘메신저가 동시에 접속했다’는 알람이 울려서 근처에 있던 스탭을 통해 확인을 요청했더니 그 남성분이 후다닥 치과에서 도망갔다는 겁니다.

치과의 재무제표 같은 것을 확인하려고 했던 것 같은데, 의도를 아직까지 알 수 없어요. 아무튼 여자들만 일하는 치과에 이런 일이 일어나서 불안감이 큽니다. 지난해 광주에서 여자 원장님께서 피습을 당한 사건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는데, 이런 일들이 단지 남의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 요즘입니다.
정리=조영갑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