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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자연·사람·지역문화 오롯이 두발로 만끽

일본걷기여행④ 규슈 올레
임진왜란 유적지 ‘가라쓰’ 코스와 천상의 계단 ‘히라도’ 코스!


최근 들어 한국 걷기여행자들이 가장 많이 찾는 해외 걷기여행 코스로 규슈 올레가 첫 손에 꼽힌다. 2012년 규슈 올레 4개 코스를 개장한 이래 해마다 한국인 걷기여행 방문자가 50%씩 급성장하면서 연간 5만 명 이상의 한국 걷기여행자들이 규슈 올레를 걷는 것으로 조사된다. 그 인기를 반영하듯 인터넷 검색을 하면 규슈 올레 여행상품들이 화면을 가득 채운다.

규슈 올레는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사)제주올레와 규슈지역의 자치관광단체인 일본규슈관광추진기구의 협약으로 2012년부터 전개된 걷기여행길이다. 제주 올레에서 단순히 브랜드만 빌려준 것이 아니라 노선 선정과 개발부터 노면정비, 안내시스템, 운영관리 등의 전반적인 노하우를 전수했다. 그 덕에 제주 올레에 익숙한 한국 걷기여행자들에게 매우 친숙한 길이 되었다. 실제 규슈 올레 걷는 사람은 일본인보다 한국인이 더 많은 기현상을 보인다. 최근 1~2년 새 일본 내국인 방문자도 크게 증가하는 모습을 보면서 고대문명이 한반도에서 일본열도로 이어졌듯 일본의 걷기여행 문화도 그렇게 전수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제주 곳곳을 걸어서 여행하며 제주의 순진한 민낯을 마주할 수 있었던 제주 올레처럼 규슈 올레 역시 일본 규슈의 장대하고 아름다운 자연과 친절한 사람들, 그리고 지역 문화를 오롯이 두발로 만끽하게 된다.

2012년부터 해마다 2~4개 정도의 코스를 신규로 문을 여는 규슈 올레는 현재 총 19개 코스가 개장되어 걷기여행객들을 맞는다. 이중 절반 정도를 걸어봤는데, 대체로 만족스러웠다. 그 풍광과 친절한 사람들에 이끌려 두 번 이상 방문한 코스만도 다섯 곳에 이른다. 규슈 올레는 제주 올레와 달리 코스와 코스가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규슈를 이루는 일곱 개 현에 고르게 분포되어 자신에게 맞는 스타일의 코스를 취사선택 할 수 있다. 필자가 걸어본 규슈 올레 중에 아름다운 자연과 사람, 문화가 함께 하는 북규슈의 코스 두 곳을 소개한다.

가라쓰 코스
(거리 11.2km / 소요시간 4~5시간 / 난이도 하)

규슈 북쪽인 가라쓰는 한반도와 가까워 예로부터 일본과 대륙을 연결하는 항구도시로써 한일 고대사의 연결고리와도 같은 곳이다. 바닷가를 걷는 구간은 제주 올레의 느낌도 나지만 마을구간에서는 일본 만의 풍취가 느껴진다. 코스 중간에 거치는 히젠 나고야 성터는 임진왜란을 준비하던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조선침략을 위한 전초기지로 지었던 곳이다.

1592년 4월 13일 부산에서 관측된 일본 전함들의 발진기지가 바로 이곳 나고야 성터였던 셈인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성터 위에서 보면 한일 고대사 문화전파의 상징과도 같은 백제의 무령왕이 태어난 작은 섬 가까라시마(加唐島)가 가까이 보인다.


나고야 성터에서는 참혹했던 400년 전의 일에는 무심한 듯 4월 초에는 노거수 왕벚꽃나무가 아름다운 자태를 뽐낸다. 또 그 옆에는 그냥 스쳐 지나기 쉬운 히젠나고야성박물관이 자리한다. 지금은 한일문화교류를 테마로 한 전시관으로 운영되는데, 입구부터 대형 무궁화와 벚꽃이 나란히 자리하며 두 나라의 문화교류를 증명하는 다양한 전시물들을 보여준다. 성터 옆에는 ‘바다 위에 뜬 달’이라는 해월(海月·가이게츠) 찻집에서 일본 미의식의 상징과도 같은 일본 다도를 아름다운 정원을 감상하며 체험해볼 수 있다. 이 다도 체험을 특히 권하는 이유는 해월 찻집에서 일본식 말차(가루차)를 내오는 찻잔이 일본의 다도인들이 칭송해마지 않았던 조선 막사발의 원형을 충실히 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이 찻잔을 통해 일본 도자기문화의 원형이 임진왜란 때 끌려간 도조 이삼평 선생을 비롯한 조선의 도공들이었음을 읽어낼 수 있길 바란다.

히라도 코스
(거리 13km / 소요시간 4~5시간 / 난이도 하)

규슈의 북서쪽에 자리한 나가사키현에서도 가장 북쪽에 해당된다. 상대적으로 교통 접근성이 떨어지는 편이어서 방문자도 그만큼 적은 곳이지만 여러 규슈 올레 중에 상당히 오랜 여운을 남기는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한다. 에도시대 포르투갈과 네덜란드 상관이 있었다는 히라도 항구에서 길이 시작되면 일본걷기여행 첫 번째로 소개했던 홍법대사의 고야산 진언종 부속사찰인 사이교지절이 나온다.


사찰로 들어가는 입구는 시코쿠 섬의 88개 사찰을 거쳐서 걷는 1200km에 달하는 시코쿠 순례길을 축소해 놓은 88개 불상의 길을 지난다. 88개 불상 모두 그 상호에 따라 존명이 다르므로 불상에 관심 있는 이들은 유심히 살펴보며 걷는 것도 특별한 재미가 있다. 물론 이 길을 걸으며 소원을 빌면 이뤄진다는 이야기도 잊지 말고 소원 한 가지 마음에 얹어보자.

울울창창한 숲길을 지나 오르게 되는 곳은 히라도 올레의 꽃 ‘천상의 계단’이다. 일본의 자연풍광이 갖는 스케일이 크다는 것을 실감케 하는 이곳의 풍광은 그야말로 거칠 것이 없이 펼쳐지는 일망무제의 장관을 이룬다. 한반도 다도해 풍광에 제주 오름의 포근함을 얹어서 한 폭의 거대한 달력 그림을 파노라마로 펼쳐 놓은 풍광은 찾는 사람으로 하여금 함께 오지 못한 가족들을 생각하며 상념에 젖게 만든다.

그 밖의 코스와 볼거리들

규슈 북서쪽 중심으로 걷기여행을 한다면 최고수질의 온천수와 녹차밭이 아름다운 우레시노 코스도 빼놓을 수 없다. 그리고 차로 이동할 때 일본 도자기의 발상지라고 할 수 있는 아리타 지역의 석장신사와 도산신사 등을 찾아보면 좋고, 도래인 도공들이 일본 도자기의 최고봉이라고 일컫는 나베시마 자기를 생산한 비요 도자기마을(오카와치야마)도 추천한다. 주변 산세가 철옹성을 이루는 비요 도자기마을은 풍광도 아름답지만 도래인 도공 700여분을 모신 무연고 묘를 마을 입구 왼쪽 산기슭에 모셔놓아 뭉클한 맘으로 마을관람을 시작하게 된다. 그밖에도 규슈에는 고대와 중세의 한국문화가 전파된 다양한 역사유적들을 북규슈 중심으로 만날 수 있다.



윤문기
걷기여행가, 발견이의 도보여행 ‘MyWalking.co.kr’ 운영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