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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활한 면적, 뻥뚫린 경관 삶을 치유한다

일본걷기여행⑤ 오제국립공원
해발 1500m 고원 습지에 열린 트래킹 낙원



오제국립공원의 물과 공기와 하늘 그리고 식생들은 인간의 삶이 다양하듯 제각각이다. 그러다가 사람들이 다가가면 마음을 조이던 세상의 끈을 헐겁게 풀어내는 자연의 신비로움으로 하나가 된다. 100% 힐링의 강력한 예감을 품은 오제습원의 길은 이 모든 것이 버무려져 걷는 이들을 치유한다.

일본의 모든 길을 필자가 걸어본 것은 아니지만 걷는 내내 압도적인 풍광으로 걷는 이들을 놀라게 만드는 트레일로 오제국립공원만한 곳을 아직 보지 못했다. 우리나라 태백산 정상 정도 높이에 조성된 오제국립공원은 산악지형이 아닌 축축한 습지 고원지대다.

오제 습지의 물이 모이는 오제누마 호수와 그 언저리로 펼쳐지는 해발 1400~1500m 고원습지는 무려 1억 평(3만7천2백 ㏊)에 달하는 광활한 면적에 뻥 뚫린 경관을 만들어낸다. 이 습지 위에 나무판자를 덧대고 이어서 만든 목도 70㎞가 오제국립공원을 트래킹 낙원으로 만들었다. 오제국립공원은 2005년 국제습지조약인 람사르조약에 의해 보존습지가 되었고, 2007년 인근의 산들을 편입시켜 일본에서는 29번째 국립공원으로 공식 지정되었다.

5 개월만 문을 여는 100% 힐링 트레일

철따라 기화이초가 피어나는 오제국립공원에서는 중요 분기점에 자리한 산장을 예약하고 숙식을 해결할 수 있어서 1박2일 혹은 2박3일 트래킹 코스로 세계 각국의 트래커들을 불러 모은다. 도심에서 접근하려면 보통 4~5시간 차를 타고 이동하기에 첫날은 오제국립공원 입구까지 이동해서 근처 호텔에서 하룻밤을 묵고 이른 아침부터 본격적인 트래킹을 시작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오제의 트레일들은 대부분 물기 흥건한 습지의 목도를 따른다. 간혹 작은 산 하나를 넘어도 가파른 경사면을 향해 정면으로 달려들기보다 산허리의 유순한 자리를 골라가며 넘는다. 다만 일본 100대 폭포에 하나인 낙차 90m의 산죠폭포를 보러 오가는 길은 다소 거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땀 흘린 값어치 그 이상의 장관을 연출하는 산죠폭포를 보지 않고 그냥 지나칠 수는 없다. 우리나라 같으면 나무계단을 놓아 오르내리기 편하게 했을 터인데, 그들은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둔 채 최소한의 안전장치만으로 이를 대신할 뿐이다. 산죠폭포 오가는 길을 보면서 우리나라의 탐방로나 걷기여행길은 상대적으로 지나치게 친절하거나 과다 시설에 집착한다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오제국립공원은 일본에서도 눈이 많이 내리는 도호쿠 지방의 후쿠시마현, 니가타현, 군마현, 토치기현 등 4개 현에 걸쳐있다. 게다가 해발 1,400m 이상의 고원습지여서 10월부터 눈이 내리기 시작하여 10월 중순이면 일찌감치 폐장하고, 산장지기들도 모두 도회지로 나와 새로운 일에 종사한다. 그러다가 봄이 시작되는 5월 하순부터 다시 산장문을 연다.



길이 문을 여는 5월말부터 6월초면 물파초라 불리는 천남성과의 꽃이 습원 전체에서 밝게 빛난다. 하얀 물파초꽃이 습지 전체를 메우고 배경으로 설산이 우뚝한 모습은 오제습원을 대표하는 앵글로 많은 이들의 가슴을 뛰게 한다.

길 위의 삶, 봇카들의 인생 이야기 따라

“나마비루(생맥주) 욧츠 구다사이!(넉 잔 부탁합니다)”
천상의 화원이란 표현이 딱 들어맞는 오제습지 목도 탐방로를 네댓 시간 걷다가 만난 산장에서 먹는 생맥주는 세상 어느 곳에서 먹던 맥주보다 맛났다. 700엔 정도로 살짝 비싼감이 있는데, 물어보니 산장까지 찻길이 없어서 맥주 같이 무거운 물자들은 대부분 헬기로 공수해온단다. 또 산장 내 생필품들은 ‘봇카’라고 불리는 짐 배달꾼들이 100㎏에 달하는 등짐을 지어서 날아오는 것들이다.


근래 들어 헬기로 물자를 실어오면서 봇카의 역할은 상당부분 축소되었으나 봇카는 여전히 중요한 물자수송의 역할을 지금도 담당한다. 작년에 한국의 EBS 방송에서 오제습원 봇카들의 생활을 ‘길 위의 인생’ 이란 타큐 영화로 담아서 방영한 후 한국인들의 방문도 꽤 늘었다.

오제습원 걷기는 보통 북쪽인 미이케에서 오제 전용 셔틀버스를 타고 누마야마라는 곳에서 내려 시작한다. 작은 능선 하나를 넘어 오제누마 호수를 돌아 류구나 미하라시 산장에서 하룻밤을 묵고 다음날 미이케까지 걸어 나와서 귀가하거나 산장에서 하루를 더 묵으며 인근의 트레일을 더 섭렵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오제 습원의 13개 산장에서는 숙식은 물론 샤워도 가능하다(비누와 샴푸 사용은 금지). 음식도 정갈하게 잘 나오는 편이어서 호텔 수준은 아니어도 큰 불편함 없이 며칠을 묵어갈 수 있다. 작년 가을 오제 류구 산장에서 모래알처럼 가득 빛나던 별빛을 벗 삼아 야외 평상에서 기울이던 한잔 술과 수다스러웠던 길동무들이 무척 그립다. 그래서 올해는 물파초꽃이 오제 습원을 가득 메운다는 그 시절을 기다리며 산장예약을 해두고는 설레는 맘으로 지금의 삶을 열심히 살아간다.



윤문기
걷기여행가, 발견이의 도보여행 ‘MyWalking.co.kr’ 운영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