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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련꽃이 지면

Relay Essay 제2204번째

봄꽃 중에 목련을 가장 좋아한다. 목련 중에서도 새하얀 백목련이 좋다. 매끈한 목련의 꽃잎이 치과의사들의 흰 가운을 연상시켜서만은 아니다. 한겨울의 매서운 바람을 이겨내고 꽃망울을 터뜨려 고귀함을 자랑하는 목련은 마치 힘겨운 학생 시절을 이겨내고 세상에 나온 새내기 의사들을 많이 닮았다.

카빙, 넘버링, 토마스 실습(모형 마네킹 이름), 임상 실습 등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었지만 학생 시절 겪은 일들 가운데 가장 힘들었던 것은 국가고시 준비였다. 혹독한 추위를 이겨낸 인내의 결정체이기 때문에 목련이 더 아름답게 보이듯, 쉽지 않았던 4년의 여정을 마친 후 받은 치과의사 면허는 더 소중하게 느껴진다.

그런데 막상 ‘원내생’이라는 타이틀을 벗고 ‘새내기 치과의사’가 되니, 내가 준비가 제대로 된 것인가 하는 생각도 든다. 눈이 녹지 않아도 봄을 맞이하는 목련처럼, 아직 준비가 덜 되었는데 세상에 툭 튀어나온 기분이다.

치과대학 입학 당시에는 4년이 지나면 존경하는 선배님들처럼 멋진 치과의사가 되어 있으리라 꿈꾸었다. 일단 졸업만 한다면 정말 멋진 치과의사가 되어 크라운 프렙도 완벽하게 하고 진단도 척척 하게 될 줄 알았다. 그러나 졸업 후 면허를 받은 내 모습은 감사와 기쁨만이 아닌, 불확신과 두려움이 상존한다. 새내기 치과의사가 되었다는 실감이 잘 나지 않는다.

체감 온도가 영하 20도였던 지난 1월 13일 국가고시를 마치고 났을 때, 시험이 끝났다는 해방감보다는 혹시 모를 불안감이 더 컸다. 과락이 걸려있는 단일 과목 문제가 자꾸만 머릿속에 떠올랐다. 친구들과 답을 찾아보다 엇갈리는 대답이 나오면 덜컥 걱정이 앞섰다.

그렇게 약간의 불안감을 가지고 기다리다 보니 대망의 합격 발표가 났다. 날아갈 듯 기뻤지만, 그 기쁨도 잠시. 걱정이 몰려왔다. 이제 학생이 아니다. ‘이걸 공부해야 한다’, ‘이렇게 해야 한다’ 배우던 학교를 벗어나 이제 정말 환자의 건강을 책임지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니. 어깨에 알 수 없는 무게가 느껴졌다. 게다가 당장 내가 환자를 위해 좋은 치료를 할 준비가 된 것인지가 가장 걱정이었다.

하루는 꿈을 꾸었는데 진료를 시작한 첫날, 환자가 아프다고 하는데 도무지 이유를 찾을 수 없었다. 충치가 있는 것 같은데 잘못 프렙하다가 환자가 잘못되면 어쩌나 하며 땀을 흘린 꿈이 생생해서 잊히지 않는다. 꿈속에서 너무 긴장되고 무서웠다. 나 때문에 환자가 더 아프지 않아야 할 텐데. 참 걱정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학교를 마치니 취업이라는 관문이 또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동기들 중 일부는 인턴, 공보의, 또는 페이닥터를 선택했다. 면허를 신청하는 일부터, 면접을 보는 일까지. 학교에서 배우지 않았지만 헤쳐나가야 할 일들이 많다.

목련꽃이 져야 진짜 봄이 찾아온다. 다른 꽃들이 추위에 자고 있을 때 용감하게 꽃을 피우지만, 아무리 우아한 꽃도 영원히 피어있을 수는 없다. 각각의 시기가 있듯, 흰 꽃잎이 갈색이 되어 떨어지고 나면 그 후 멋진 초록 잎사귀가 나오고 무성한 여름 나무가 될 수 있다.

올봄은 유난히 목련이 기다려진다. 그리고 목련꽃이 지면 함께 새봄을 맞이하고 싶다. 새내기 치과의사로서 새로운 계절을 위해 학생 때보다도 더 노력하겠다는 각오를 다져 본다.

이찬주 크리스탈치과의원 치과의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