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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과의사, 멀티 플레이어가 되자!

그림으로 배우는 치과의사학- 5

직업적 관점에서 치과의사의 조상은 누구였을까? 인류의 역사와 함께 시대에 따라서 Charlatan, Quack, Tooth-puller, Apothecary(약제사), Blacksmith, Farrier(말 수의사), Goldsmith, Silversmith, Watchmaker, Barber-Surgeon 등이 치과 치료를 담당하였다. 이 모든 직업들의 공통점은 한결같이 천한 신분이었다는 점이다. 그러나 수많은 사람들이 오랜 세월동안 노력한 덕택으로 치과 치료를 학문적으로 발전시켜 현재의 치과의사는 전문 직업인으로서 위상을 공고히 자리 잡고 있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잘 안다면 누가 눈 덮인 들판을 함부로 걷을 수 있겠는가? 치의학 역사의 수레바퀴가 거꾸로 돌아서는 안 될 일이다.

Thomas Rolandson의 1823년 작품 ‘The tooth Ache, or Torment & Torture’의 장소는 Barber-Surgeon(이발-외과의)의 상점이다(그림1). 오늘날 치과의사의 직접적인 조상이라 할 수 있는 이발-외과의는 1540년 영국 헨리 8세 때 탄생되었다. 영국에서 첫 번째 치과대학은 1859년에 설립되었기에 약 300년 이상동안 이발-외과의가 치과의사의 역할을 수행하였다. 그림 ‘육체적 치통, 정신적 고통 그리고 고문’을 통해서 치의학의 이 저린 역사를 살펴본다.

가발을 쓴 살찐 이발-외과의가 여성의 입에 손을 넣고 구강 검진을 하고 있다. 그러나 앉아 있는 여성의 손과 눈을 보면 잔뜩 긴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술자의 왼손이 여성의 머리카락을 꽉 잡으면서 머리를 고정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통증도 상당한 것처럼 보인다. 그림에서 네 사람의 표정이 모두 다르다. 이발-외과의는 차분해 보인 반면에 앉아 있는 여성은 걱정하는 것 같고 창가에 서있는 중년 여성은 무척 고통스러워 보인다. 소년은 이발-외과의를 존경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다.

진료실의 벽에 걸린 포스터가 Barber-Surgeon(이발-외과의)의 다재다능함을 알 수 있게 해준다(그림2). 어쩌면 그 시절에 이발-외과의는 발치와 정맥절개술(사혈, phlebotomy)만으로는 만족스러운 수입을 올릴 수 없었기에 이러지 않았나 싶다. 아직도 이러한 상황은 지속되고 있는 것 같아서 애잔함이 밀려온다. 더더욱 슬픈 이유는 아래에 열거된 것 중에서 필자가 할 수 있는 것은 발치 이외에는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처한 현실은 치과에서 멀티플레이어가 되라고 요구하고 있다. 언제쯤 치과에서 진료만 열심히 잘해도 행복한 세상이 올까?

포스터의 문구는 라틴어 BARNABY FACTOTUM으로 시작된다. Barnaby는 요셉의 별칭이고 성서에서는 바나바라고 하는데 아마도 이발-외과의의 이름인 것 같다. Factotum에서 Fac은 Do, Totum은 everything이니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하면서 그 아래에 자신이 할 수 있는 것들을 나열해 놓았다. 그리고 마지막 줄에도 역시 라틴어로 IN UTRUMQUE PARATUS 라고 적었는데 ‘그 어느 경우에도 준비가 된’이란 뜻이다. 포스터에 언급되지 않은 일이라도 뭐든지 맡겨주면 가능하다는 문구에서 Barnaby의 절실함과 간절함을 읽을 수 있다. 

BARNABY FACTOTUM.
Draws Teeth, Bleeds & Shaves.
WIGS made here, also Sausages.
Wash Balls(비누), black Puddings(순대), Scotch Pills Powder for the Itch,
Red Herrings(훈제청어), Braches Balls(?), and small Beer by the maker.
IN UTRUMQUE PARATUS.

진료 보조자로 보이는 어린 소년이 왼손에는 괴상하게 생긴 포셉을, 오른손에는 타구(spittoon)를 들고 있다(그림3). 사실 녹색 앞치마를 두른 소년은 진료를 도와주면서 치료법을 배우는 견습생이다. 이러한 시스템은 16세기부터 19세기까지 영국에서 이발-외과의를 배출하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10~12세 아이들은 이발-외과의 지도하에 보통 5~7년 동안 교육을 받으면서 진료를 배웠다. 한 명의 이발-외과의가 4명 이상의 견습생을 교육할 수 없다는 나름의 원칙도 있었다. 아마도 소년은 견습생(apprentice)으로 들어가 기능인(journeyman)을 지나 언젠가는 거장(master)에 올랐을 것이다. 소년 견습생 뒤에는 겁먹은 강아지가 짖고 있다. 강아지 또는 고양이가 치과 그림에 자주 등장하는데 치료받고 있는 환자의 비명소리와 진료실의 혼란스러움을 암시하는 작가의 의도이다.

헨젤과 그레텔에 나오는 마귀할멈처럼 보이는 빨간 망토를 두른 중년 여성이 왼쪽 뺨을 만지면서 괴로워하며 이발-외과의에게 레이저를 발사하는 듯한 눈빛이다(그림4). 입모양을 보니 뭔가 큰 소리를 지르는 것 같다. 대기 시간이 너무 길어서 그랬을까? 아니면 너무 아파서 그랬을까? 이유는 확인할 수 없지만 상상은 끝이 없다. 천장에 매달린 새장 속의 새에는 어떠한 의미가 담겨 있을까? 고요한 숲속에서 노래를 부르는 꾀꼬리일까? 절대 아닐 것이다. 아마도 그 새는 고통과 공포에 사로잡힌 할머니가 ‘아~아~으악’하는 아우성의 표현일 것이다. 만약 앵무새라면 ‘곧 진료 받으실 거니까 조용히 하세요.’라고 말했을 것 같다. 마지막으로 새장 옆에 걸어진 가발은 아마도 영업 간판(trade sign)으로 해석된다. 가발의 속성을 감안하면 이곳은 외과의보다는 이발의에 더 주안점을 두고 있는 것 같다.


권 훈                                      
조선대학교 치과대학 졸업
미래아동치과의원 원장
대한치과의사학회 정책이사
2540g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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