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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단-시간을 넘어/개인전을 열면서

Relay Essay 제2208번째

오늘도 진료실에 들어서면서 계단을 밟았다. 아마도 하루에 한 번 이상은 계단을 밟지 않을까 싶다. 일상에서의 계단은 그저 위에서 아래로, 또는 아래에서 위로 공간적 이동에 필요한 수단일 것이다. 물론 우리의 생활 동선을 따라가 보면 수직적 계단 이외에도 수평적 계단도 있겠다.

나는 휘감아 도는 계단을 상상하고 어지럼증을 느낄 때도 있고 엉키고 뒤틀린 계단이 눈앞에서 떠오르기도 하고 심지어 어떤 계단은 여러 가지 색깔을 입은 채로 하늘에서 쏟아지기도 하고 빙빙 돌기도 하는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끝도 없이 이어지고 이어진 계단의 이미지도 떠오르고 뫼비우스의 띠처럼 혼란스러운 계단이 눈앞에 펼쳐지기도 한다.

붉은색으로, 푸른색으로, 또는 색동옷을 입은 것처럼 하늘에서, 구름에서, 연처럼, 면류관처럼, 땅에서, 똬리를 튼 뱀처럼, 자갈밭처럼, 태아가 웅크리고 있는 자궁 속처럼 계단이 나타난다. 환각의 상태다.
환각의 계단들은 정열로, 슬픔으로, 기쁨으로 다가온다. 혼돈이다.

참 모호하고 애매함을 계단이 갖고 있다는 것에 생각이 미친다. 구체적이면서도 명확한 모습을 드러낸 계단이 아니고 추상적이고 비현실적이다. 그것은 물론 나의 머릿속의 계단의 이미지가 복합적인 구조와 多意的인 의미를 갖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계단에서 복잡다단한 인생의 의미를 찾아낸 것이 계단을 그린 이유가 되겠다.

숲에서 찾아낸 계단에서의 새 한 마리의 지저귐도, 밝은 숲에서 찾아낸 계단에 앉아있는 미네르바 부엉이의 껌벅거림도 세월이나 인생의 다름 아니다. 모호성, 애매함으로 남겨둔 계단의 이미지에 세월, 인생을 드러낸 것은 나의 억지는 아니다. 왜냐하면 모든 이미지 속에서의 계단은 -그것이 뒤틀리고 엉키고 어지럽게 풀어져 있어도- 그 속에 항상 발을 옮길 수 있는 디딤 바닥이 있어서다. 그것은 쉼표이며 살면서 갖는 여유이며 따라서 살아가는데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계단에서는 빙빙 도는 세상과 줄기차게 솟은 세상과 맞닥뜨리기도 하는데 나 자신의 살아온 길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이번 개인전을 준비하면서 제일 먼저 고려하였던 점은 기성작가 중에서 계단을 소재로 작품 활동을 하신 분이 있었느냐 하는 것이었다. 에드가 드가의 <발레리나>그림들에서나 마르셀 뒤상의 <계단을 내려오는 누드>등 작품 속에서 볼 수 있는 계단이 아니라 오롯이 계단만 그려 보겠다는 나의 진지함도 중요했다. 특히 작품 자체보다도 작가의 아이디어와 개념을 더 소중하게 생각한 뒤상의 견해는 이제 바야흐로 그림 속에 자신의 사상이나 지향성을 밝힘으로써 미술계에 debut 하려는 신진에게는 큰 용기가 되었다.



내 그림 속에서의 계단의 이미지는 해체되고 분절되어 파편화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다양한 색을 입고 있어도 온전한 계단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기에 현대적이지만 반구상에 가깝다.

계단을 그리는 시간은 반성하는 시간이기도 했는데 특히 非常계단을 준비하고 있지 못했다는 점에서 그렇다. 돌고 돌다가 이어져 가면서 비틀리고 엉클어져서 갑자기 어디론가 빠져 나와야 하는 게 인생이라면 우리는 그런 계단을 비상계단이라 이름 짓고 준비해야 하는 게 아닌가. 나는 오늘도 飛上이 아니 非常계단을 언제 어떻게 만들 것인가에 대하여 골똘히 생각한다.

레드 제플린의 <Stairway to heaven>이 흐르는 갤러리에서 언젠가 소설가 허 택 선생님을 모셔다가 계단의 글과 그림이 있는 콜라보 한번 해보면 더 없는 영광이겠다.

이병우 이병우치과의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