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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Relay Essay 제2214번째

어릴 적부터 이것저것 가리는 것 없이 잘 먹었던 나는 과식 때문에 체한 경우가 많았다. 그런 내 배가 아플 때마다 항상 어머니는 단조로운 멜로디의 “엄마 손은 약손, 우리 아들 배는 똥배”라는 노래를 부르시며 아픈 내 배를 어루만져 주셨다. 어머니의 손이 배에 닿으면 거짓말처럼 배 아픔이 사라지고 어머니의 따뜻한 손길을 느끼며 잠들 수 있었다. 어릴 적 내 배를 어루만져 주시던 따뜻하고 부드러운 어머니의 손은 정말 배를 낫게 하는 힘이 있었고 나는 그렇게 믿고 유년기를 보냈다.

중, 고등학교를 들어가자 나에게도 여느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사춘기가 찾아왔다. 부모님보다는 친구들이 좋던 그 시절, 나는 친구들과 함께 어울리기를 좋아하는 평범한 학생이었다. 학교와 학원, 독서실을 오가며 공부하던 학창시절에는 배가 아플 때마다 어머니의 손을 찾기보다 집안 상비약통에 들어있던 소화제를 찾아먹거나, 학교 보건실에서 소화제를 구해먹는 일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면서 어머니의 따뜻한 손길은 흥겨운 멜로디와 함께 어릴 적 추억으로 잊혀져가고 있었다.

대학생이 되면서 나는 서울 집에서 떨어진 전주로 대학에 입학해 엄마의 따뜻한 손길과는 더욱 멀어진 삶을 살게 되었다. “엄마 손은 약손, 우리 아들 배는 똥배”라는 멜로디조차 가물가물해 질 때 쯤, 대학교 2학년을 마치고 그 다음해 겨울 명절인 설날에 가족들은 모두 외할머니댁이 있는 전주로 내려왔고, 방학을 맞이한 나 역시도 할머니댁을 방문했다. 모처럼 온 가족이 모이는 명절이면 음식 솜씨가 좋은 외할머니는 먹음직스런 음식을 차려주시곤 하셨다. 덕분에 자취생활을 하고 있어 지겨운 인스턴트 음식을 즐겨먹던 나는 맛있는 할머니 음식을 마음껏 챙겨먹었다. 그날 밤, 나는 과식으로 인한 복통을 호소했고 할머니댁에는 소화제가 없었다. 늦은 밤이었고 설 연휴라 문을 연 약국조차도 찾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소화제를 구하지 못하고 배가 아파 방에 누워있는 내 곁으로 어머니가 다가오셨다. 민망하고 부끄러운 마음에 배를 어루만져 주시겠다는 어머니에게 괜찮다고 말씀드렸지만 어머니는 만져주면 낫는다고 내 곁에 앉으셨다. 배를 어루만져주시는 어머니의 손에서 어릴 적에는 느끼지 못했던 것이 느껴졌다. 아버지와 함께 평생을 맞벌이 하셨던 어머니의 손은 부드럽고 따뜻한 손이 아니라 차갑고 거칠어져있었다. 이렇게 차갑고 거친 손이지만 어릴 적 내 배를 만져주실 때면 금방 배 아픔이 낫곤 했다. 손은 차갑고 거칠었지만 아들을 생각하는 따뜻한 마음 덕분일까 그날도 어머니의 손길은 아픈 내 배를 낫게 했고 나는 따뜻한 손길을 느끼며 잠이 들었다.

나뿐만 아니라 세상 누구에게나 어머니란 존재는 언제나 따뜻하고 커다란 존재일 것이다. 학창시절 사춘기를 겪고 성인이 되면서부터 줄곧 어머니와 떨어져 지낸 나지만 언제나 어머니, 부모란 존재는 멀리 있어도, 자주 보지 못해도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힘이 되고 의지되는 사람들이다. 나 또한, 미래에 태어날 내 자식에게 나의 존재 자체만으로도 힘이 되고 의지되는 사람이 될 것이다. 그런 이유 때문에 오늘도 나는 하루를 더 열심히, 최선을 다해 보내본다. 자랑스러운 아빠가 되기 위해… 이번 주말에는 부모님께 전화 한통 드려야겠다.

송찬홍 부산대치과병원 보철과 전공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