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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약속과 융통성

Relay Essay 제2217번째

나는 평소에 시간약속을 약간 병적일 정도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편이다. 주위사람들로부터도 “융통성 있게 살아야지 그렇게 깐깐하게 생활하면 피곤해진다”라는 말을 종종 듣는 편이다. 그래서 그런 애기를 듣게 되면 내가 너무 좀 심한가하는 생각을 해보곤 한다.

치과개원을 하고 1년 정도 지났을 때의 일이다. 대기실 벽의 페인트가 몇 군데 갈라져있는 게 보였다. 개원당시 공사할 때 인테리어 업체와 2년간 무상A/S받기로 계약되었기에 업체에 연락을 하여 인테리어 담당실장과 토요일 2시에 벽면 수리하기로 약속을 잡았다. 약속 날이 되어 오전진료를 하고 있는데 담당실장으로부터 약속시간을 1시 반으로 당길 수 없겠느냐는 전화를 받았다.  토요일 진료가 1시까지라서 문제될 것이 없겠기에 그러자고 하고는 진료를 마치고 인테리어 업체를 기다렸다. 그런데 약속한 1시 반이 지났는데도 아무 소식이 없었다. 약속시간이 지나면서 나의 흥분지수가 조금씩 오르기 시작하였음은 물론이다. 하지만 그동안 들었던 주변의 충고도 있고 해서 전화하여 어떻게 된 일인지 확인해보고 싶은 욕구를 꾹 누르고는, 원래 약속시간이 2시였으니 2시까지는 기다려보자는 마음을 먹고 기다렸다. 하지만 2시 10분이 지나서도 감감무소식이었다. 참다못해 인테리어 업체 사장에게 전화를 걸어 Max를 찍은 흥분된 목소리로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고 따졌다. 통화가 끝나고 5분도 안되어 담당실장이 치과 문을 열고 씩씩거리면서 들어와서 하는 첫 번째 말. “아니 원장님~ 저한테 전화를 하셔야지 사장님한테 직접 전화를 하시면 제 입장이 뭐가 됩니까?” 어이가 없었다. 나도 이에 질세라 씩씩거리며 따졌다.  “아니 늦으셨으면 사과를 먼저 하셔야 되는 거 아닌가요?”

그리고 이어진 담당실장의 답변에 나는 말문이 막혔다.
“아니 무료로 A/S해드리는 건데 30분 정도 늦는 것은 양해를 해주셔야지 그 정도도 못 기다려주십니까?”

물론 사람이 살다보면 그럴만한 사정이 생겨 약속을 지키지 못하거나 시간에 늦거나 하는 것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늦게 되면 늦는다고 전화로 연락을 해주는 것이 기본 예의인데도, 아무 연락도 없이 막상 늦게 와서는 늦은 것에 대해 당연하게 생각하는 태도에 놀라움을 금치 않을 수가 없었다.

그 일이 있고나서 1년 정도 지났을 때 한여름에 에어컨이 갑자기 작동이 안 되서 에어컨기사를 불렀다. 그런데 이건 에어컨 문제가 아니고 누전차단기가 고장 났다고 하는 것이었다. 확인해보니 누전차단기 설치를 인테리어업체 쪽에서 한 것이어서 이번에도 인테리어 담당실장에게 전화를 했다. 지난번의 아픈 기억이 생각나서 이번엔 담당실장에게 며칠 늦게 고쳐주셔도 되니 정확히 오실 수 있는 시간을 미리 통보해달라고 했다. 그리고는 이틀 뒤 오전 8시에 수리하러 오겠다는 연락을 받았다. 보통 우리 치과직원이 9시쯤에 출근을 하니 9시에 하면 안 되겠느냐고 물으니 우리 치과 공사 끝내고 바로 다른데 가봐야 해서 안 된다고 하여서 하는 수 없이 내가 8시에 일찍 치과로 출근하였다. 이번만큼은 제대로 약속을 지키겠지 하고 내심 기대하고 기다렸지만 이번에도 역시 8시 반이 지났는데도 감감무소식이었다. 상기된 감정을 추스려 가면서 지난번에 업체사장에게 전화했다고 화를 냈던 것이 생각나서 이번에는 인테리어 담당실장에게 바로 전화를 하였다. 실장이 전화를 받고는 “아직 안 갔어요? 담당 전기업자한테 전화해보겠습니다”하기에 전화를 끊고 연락을 기다렸다. 다시 연락 온 실장의 이야기는 담당 전기업자가 계속 전화를 안 받는다는 것이었다. 그동안 마음 속 깊이 꽁꽁 묶어 두었던 실장에 대한 섭섭함과 약속 불이행에 대한 불만을 털어 놓았다. 그러자 실장은 자기도 전기업자가 전화를 안 받아 연락이 안 되어 답답해 죽겠는데 자기한테 화를 내면 어떡하느냐고 도리어 역정을 내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러면 제가 전혀 알지도 못하는 전기업자한테 전화해서 왜 안 오느냐고 뭐라 해야 하는 겁니까? 식당에서 식자재가 잘못되어 식중독에 걸리면 손님이 식당주인에게 책임을 따지지 그 식자재를 판매한 업자 찾아가서 따져야 하는 거냐?”며 나름의 논리(?)를 앞세워 한마디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리곤 인테리어 사장에게 전화해서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A/S계약기간이 끝나서 앞으로 서로 연락할 일은 없겠지만 고객과의 약속은 무엇보다 소중하게 생각해주시면  좋겠다는 말씀을 드렸다.

이런 일화를 주위사람들에게 말하면 어떤 이는 인테리어 업체가 잘못을 했다하고 어떤 이는 내가 너무 융통성 없이 대처한다고 이야기한다. 물론 위의 일화는 오롯이 나의 입장에서 쓴 글이기 때문에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긴 어려울 것이고 인테리어 업자도 그쪽의 입장과 사정이 있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내 시간이 중요하면 상대방의 시간도 소중하다는 것을 인식해주었으면 하는 아쉬움은 남는다. 

이 일이 있고 난 후 시간약속에 대해 주위의 조언대로 조금은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융통성을 가지게 되었지만 내 주위사람들이 조금만 더 약속을 중요하게 생각해줬으면 하는 바람은 나의 과한 욕심일까?

강병현 상인강치과의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