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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장애인이 될 수 있다

스펙트럼

얼마 전 임플란트 수술 상담을 진행하게 되었다. 환자는 40세 남자였지만, 지적장애를 가지고 있었기에 보호자인 어머니와 함께 상담실에서 만났다. 간단한 치료는 문제가 없으나, 다수의 보철 치료 등 입안으로 보다 물이 많이 들어가고 좀 더 위험한 기구를 사용한다거나 장시간을 필요로 하는 경우에는 협조 부족으로 그 위험성이 커서 전신마취를 필요로 하는 환자였기 때문에 구치부 임플란트 3개를 계획하고 있는 이번 수술 역시 전신마취 하에 진행을 하게 될 예정이었다.

CT와 방사선사진 영상을 보여드리고, 임플란트 수술과정 및 주의사항, 예후에 관한 설명과 함께 환자의 평소 구강관리의 문제점 등등 이러저러 이야기를 나누다가 어머니가 조용히 말씀을 꺼내신다.

최근에 본인이 큰 병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어 입원을 하시게 되었는데, 그 병실에서 내내 생각난 건 남편도 다른 건강한 자녀도 아닌 오직 장애를 가진 아들이었다며 말을 이으셨다. 내가 없으면 안된다는 맘에 내 몸보다 걱정을 하게 되는 그런 아들. 그래서 살아있는 동안 해줄 수 있는 것은 다 해주고 싶어 오래 망설이던 것을 바로 결정을 하시게 되었다고. 본인이 살아 있을 때 임플란트를 해서 이로 씹을 수 있게 만들어 주고 싶다고 말씀하신다. 담담하게 말씀하시지만 눈은 조금씩 젖으시고, 담담하게 들으려고 노력했지만 나도 모르게 설명하는 목이 잠겨든다.

그와 함께 또 다른 환자가 떠오른다. 항상 밝은 웃음과 함께 오실 때마다 마다하는데도 불구하고 음료수를 사가지고 오시던 재원(가명, 42세 지적장애)이의 어머니. 항상지키시던 정기검진일에 내원하지 않으시고 연락이 잘 되지 않아 이상하게 생각했는데, 다른 분을 통해서 건강해보이시던 어머니가 중환자실에 입원을 하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가족들이 어머니 간병문제에 더 매달리게 되어, 보살핌 없이 복지관에도 가지 못하고 집에서 지내고 있다는 재원이. 재원이 어머님도 재원이 생각에 아픈 몸으로 더 가슴 아프게 지내시고 계신 것은 아닐지… 혼자서는 칫솔질을 잘 못하는데, 그래도 병원에 오면 스케일링도 잘 받고 협조도 잘해주는 재원이의 구강상태는 더 나빠져 가고 있을텐데… 더 이상 재원이를 돌봐줄 수 없는 어머니와 가족을 대신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

‘제가 이 아이보다 하루만 더 살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하신다는 장애자녀를 가진 어머님들의 말씀에는 나로서는 상상도 되지않는 이런 삶의 순간순간에서 겪었을 고통과 애정과 두려움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것 같다.

돌봄의 문제는 발달장애아의 부모 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4월 18일 ‘누구나 장애인이 될 수 있다’- ‘버팀목’ 가족마저 ‘간병전쟁’에 가정해체 내몰려’라는 타이틀의 세계일보 기사에서는, ‘나를 가장 사랑하지만 가장 큰 상처를 주는 존재’라는 단어로 척수장애인과 가족의 양가감정에 대해 이야기 한다. 국내 장애인 정책이 장애인 돌봄의 1차적인 책임을 가정에 돌리는 구조이다 보니 척수장애인을 포함한 일상생활이 어려운 많은 장애인들이  주로 가족 배우자, 부모, 자녀의 돌봄을 받고 있으며, 이로 인해 많은 가족들이 갈등을 겪고 가정해체로 이어지는 사례도 있다고 한다. 실제 50대 이상의 환자가 절반이상을 차지하는 서울시장애인치과병원에서 거동이 불편한 환자와 함께 내원하는 동반자의 약 60%가 직계가족이고 뇌변변장애의 경우에는 직계가족의 비율이 85%에 달한다.

그래서 난 치매국가 책임제와 장애인 부양의무제 폐지 등을 이야기하는 대선후보들의 공약을 보며 그 정책이 반드시 실현되기를 바란다. 한 대선후보를 지지하며 보내온 편지 속의 사회와의 어울림 속에서 살아가도록 함께하는 프랑스의 자폐증 단체의 경험을 접하며 우리 사회도 그렇게 변해가기를 간절히 바란다. 부모를 자녀를 형제를 돌보는 가족의 모습은 너무나 아름답지만, 그 고통도 크고 깊다는 걸 알기에. 마을 공동체가 사라져버린 우리나라에서 국가의 이름으로 사회가 반드시 함께 해야할 일이 ‘돌봄과 양육’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누구나 장애인이 될 수 있다]. 살면서 이 말의 무게를 자꾸 느끼게 된다.
일상생활에 도움을 필요로 하는 장애인, 확장하여 영유아와 노인에 이르는 다양한 우리의 이웃과 가족, 친구들과 ‘나’의 이야기이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황지영 서울시장애인치과병원 치과의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