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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카모테스

Relay Essay 제2218번째

진료를 한 시간만 빨리 끝내고 어떤 일정을 진행한다 해도 벌컥 화를 내며 절대 그럴 수 없다는 원장이 있는가 하면 며칠을 통째로 비우는 일정을 흔쾌하게 수락하는 원장도 있습니다. 진료와 경영을 책임져야하는 어쩔 수 없는 환경이어서 그러겠지만 평생 환자를 봐야 한다면 그 평생이란 긴 시간에서 며칠이란 작은 시간을 할애하여 본인이 하고 싶은 일을 해보는 것도 그리 나쁜 선택은 아닐 것 같습니다.

감기에 걸려도 약을 먹지 않고 한숨 푹 자고 나면 쉽게 낫곤 했는데 작년에 일정을 마치고 한 달을 죽어라고 아팠습니다. 열이 나고 몸살이 심해서 그 좋은 계절 5월에 나들이 한번 못하고 진료가 끝나면 바로 집에 와 몸져누워 끙끙됐던 아픈 기억이 있어 올해는 운동도 하고 홍삼도 먹어가며 체력 단련을 했습니다. 또다시 여러 은인들의 도움을 받아서 진료 준비를 마치고 태평양의 작은 섬으로 출발하였습니다.

비행기 안에서 모두의 안전과 그리고 저에게 겸손을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봉사하는 사람이 겸손하지 못하고 자기를 내세우면 상대는 큰 상처를 받습니다. 진료 환경이 열악한 곳에서 의료진은 절대 갑이 되기 때문에 특히나 몸을 낮추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행여나 선교를 빙자한 의료 행위는 일종의 폭력입니다. 진단을 해놓고 예수를 따른다는 말을 하지 않으면 약을 주지 않았다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는 어느 교인의 말에 저는 슬픔과 분노마저 느꼈습니다.

진료가 시작되면 잘 할 수 있을까. 무사히 끝낼 수 있을까. 나의 능력은 어디까지일까. 생각하며 두려움 속에서 첫 환자를 맞이합니다. 환자를 몇 명 보지 않았는데 벌써 이마에 땀이 맺히고 허리가 아파옵니다. 구강상태가 워낙 열악해 발치가 많아서입니다. 뿌리가 단단하고 깊어 온 힘을 주어야 겨우겨우 발치를 할 수 있습니다. 발치 하나 하는 비용이 이곳 주민들 일주일치 생활비이기에 많은 환자들이 조그만 아파도 발치를 원합니다. 원인제거를 하기 위해서지요. 작년에 앞니가 썩은 젊은 처자가 이를 뽑아 달라기에 신경치료 후 레진 충전을 해주었더니 너무 좋아 눈물까지 흘리는 걸 보고 이번엔 레진을 많이 준비 했습니다. 앞니가 까맣게 썩어 보기 흉했던 사람이 레진 치료로 하얀 이를 가지게 되어 자신 있게 웃는 모습을 보면서 저도 기쁘게 같이 웃었습니다.

언제나 그렇지만 치과 진료봉사는 치과의사 혼자서는 절대로 불가능합니다. 여러 봉사자들이 유기적으로 협조해야 가능한 일입니다. 하지만 스포트라이트는 치과의사가 다 받는 듯해 무안하고 쑥스럽습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저마다 일을 충실히 해주신 여러 봉사자들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여러분들이야 말로 진정 숨어있는 영웅들입니다.

온 몸이 부서지는 통증이 오고 난 뒤에야 겨우 진료가 끝났습니다. 해야 할 진료를 마무리 하고 시원하게 마시는 맥주 한 잔은 짜릿합니다. 이 맛에 여기까지 와서 일합니다. ^^

3년 간의 진료 결과 주민들의 구강상태가 많이 호전되고 있어 기쁜 마음으로 이곳의 진료를 마칩니다. 아마 다시는 이곳에 오기 힘들 것입니다. 아름다운 바다는 계속 반짝거릴 것이고 붉고 깊은 노을은 여전히 이곳을 예쁘게 물들이겠지요. 내년엔 이곳보다 더 열악한 곳으로 간다기에 벌써부터 걱정이 앞섭니다. 하지만 내년에도 마실 시원한 맥주 한 잔을 생각하며 또다시 준비에 들어갑니다.

탱큐, 평화삼천 봉사자들.
탱큐, 녹야회 라인실 선생님.
탱큐, 시카고 이정우 원장님부부와 직원들.
탱큐, 나의 친구 김병정 원장.
탱큐, 나의 동반자 나의 아내 석영.

잘 있으세요 카모테스 주민들이여. 당신들을 잊지 못할 것입니다.

이충규 성심치과의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