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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롱나무

Relay Essay 제2219번째

모처럼 맞은 휴가다. 어느 곳으로 갈까. 강원도나 경상도는 산이 높아서 계곡이 깊고 기암괴석 어우러진 골짜기의 물소리가 좋다.

충청도나 전라도는 평야가 넓어 시야에 다가서고 지나치는 풍경이 언제나 나의 마음을 포근하게 한다. 넓은 대지와 뜨거운 태양에 익어가는 곡식을 보면 나의 삶의 어느 한 순간을 전원에서 보내고 싶은 충동을 느끼곤 한다.

어쨌든 계곡을 원하는 아내를 설득하여 남도여행을 하기로 했다.
차는 물과 야트막한 산을 지나고 이따금 보이는 갯벌과 흙빛 바닷물 출렁이는 서해안을 끼고 돈다.
충정도 경계를 지나니 붉은 꽃을 피운 키가 나지막한 가로수가 나의 시선을 끈다.

봄철의 가로를 밝히는 꽃이 벚꽃이라면 남도의 여름 가로수는 배롱나무라 할 정도로 많이 심고 가꾸어져 있다. 배롱나무는 자라서 나이를 먹게 되면 나무의 껍질이 벗겨지면서 매끄럽게 되는데 껍질을 벗듯 세속의 때를 벗는다는 의미를 가져서 예전부터 주로 서원이나 절들에 심어졌다고 한다.

요즘은 대량 재배하여 고속도로나 국도의 가로수로 흔하게 볼 수 있다.

붉은 꽃, 흰 꽃, 옅은 분홍을 한 꽃들이 있는데 봄철 단시간에 피어 한꺼번에 지는 벚꽃 보다는 여름 한철 피고 지는 기간이 100일 동안 이어진다고 해서 목백일홍이라고 한다.

어떤 설에는 백일홍의 어원이 변해서 배롱나무로 되었다고 한다.
붉은 꽃들이 푸른 하늘과 녹음 우거진 산을 배경으로 햇빛을 받으며 고은 모습으로 피어있어 좋다.
보통은 5~6미터 정도의 크기로 자라는데 매끈하고 구불구불한 가지가 시골길의 구불구불한 길처럼 여유롭고 어느 신선의 지팡이 모습처럼 풍류가 느껴져서 좋다.

작은 연못의 불빛에 비치는 꽃잎의 붉은 모습과 그 옛날 선비가 글 공부하고 풍류를 즐겼을 정자의 한쪽에 다소곳 피어 있는 자태가 고와서 새색시 옥색 저고리의 붉은 깃과 옷고름을 생각하게 한다.

봄철 벚꽃이 자태는 처녀가 봄바람 춘정을 못 이겨 분 치장하고 잠시 문밖 나들이를 하였다 돌아서는 자태라면, 여름날의 배롱나무의 붉은 꽃은 새색시가 혼삿날 연지곤지를 찍은 다소곳한 모습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 아름다운 꽃의 꽃말은 “떠나간 남을 그리다” “변해가는 우정을 그리다”이니 여름 한철 고운자태를 드리우고 나그네 힘든 고갯길에서 반기는 꽃의 꽃말이 서럽다.

윤양하 한울치과의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