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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당신의 삶에 개입합니다

Relay Essay 제2222번째

지금의 내 나이보다 젊으셨던 40대 중반에 선친께서는 틀니를 끼기 시작하셨다. 어렸을 때부터 서랍 속에서 뒹구는 헌 틀니는 낯설지 않았다. 비록 함부로 가지고 놀 수는 없지만, 신기한 장난감이었다. 때로는 뜨거운 찌개를 후루룩 드시는 것을 보고 어린 마음에 틀니 끼신 아버지가 부럽기도 했다.

세월이 흘러 치과 대학에 들어가게 되었고, 가끔 틀니를 꺼내 들고 주머니칼로 내면을 조정하시거나 먹지를 입에 물고 교합조정을 하시는 아버지의 모습을 자주 본 나로서는 의치를 전공하게 된 것이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는지도 모르겠다.

레지던트 1년 차, 처음 배정받은 틀니 환자는 나에겐 굴욕이었다. 본 뜨는 인상채득 과정이 과연 잘 된 것인지 알 수 없고 그 결과에 대해 확신할 수 없었던 당시로는, 스텝마다 선배님의 지도를 받아가며 치료를 진행했다. 다행히 결과는 만족스러웠지만, 환자는 수납 창구에서 ‘나를 치료한 의사가 틀니를 처음 하는 게 분명하다. 나는 실습 대상이었기 때문에 치료비를 반만 내겠다’고 소란을 피웠고 나는 과장님께 불려가 꾸중을 듣기도 했다.

시간이 흘러 조금 손놀림이 익숙해질 무렵, 아버지의 틀니를 처음부터 끝까지 내 손으로 해드릴 수 있었다. 대견해 하시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치과의사가 된 보람을 느끼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퇴근 후 저녁상 앞에서 그 날의 치료에 가혹한 평가를 하실 때나 미세한 불편감에 대한 학술적 토론이 시작되면, 치과의사는 될 수 있는 대로 환자와 식사를 함께하지 않아야겠다는 작은 깨달음을 얻기도 했다.

개업 후 다른 치료와 달리 틀니 환자들에 대해서는 각별한 애정이 있었다. 치아 배열과 교합조정을 가급적 내 손으로 하겠다고 결심하고 주말에는 교합기를 집으로 가지고 와서 책상에 펼쳐놓으면 아이들은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곤 했다.

어느 노 목사님의 틀니를 처음 봤을 때는 참 마음이 아팠다. 이미 마모될 대로 마모된 데다가, 여기저기 부러진 곳을 붙인 누더기가 된 틀니로 식사는 물론이고 어떻게 설교를 하셨을지… 서울의 변두리에 위치한 작은 교회로서는 연로하신 목사님의 틀니 치료를 감당할 수 없었던 같다.

정황상 무료로 해드릴 수밖에 없었다. 틀니를 해드린 뒤 그렇게 좋아하시고 매번 성경 말씀을 카드에 적어 보내 주심으로 고마움을 표현하셨다. 식사를 맘껏 하실 수 있다는 것과 소리 높여 찬양을 부를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시며 우리 가정을 위해 기도해주셨다. 적어도 하루 세 번은 어쩔 수 없이 생각나서, 기도하지 않으실 수 없었다고 하셨다. 나중엔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목사님께 전화 드려 기도 부탁을 드리기도 했다. 오히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치료비를 받은 셈이 되었다.

치과의사는 치료를 통해 환자의 삶에 개입한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았지만, 특별히 틀니 치료는 매 순간 환자의 삶 속에 깊이 개입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하루 세 번의 식사 때마다 환자의 원망과 저주의 대상이 될 수도 있고 감사와 축복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어느 치과의사 시인은 그의 시 ‘완전 틀니를 만들며’에서 이렇게 말한다. 틀니 치료는 생각보다 어렵다. 치료를 끝냈다고 끝난 게 아니고 환자가 만족할 때까지 안심할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아랫니 틀니는 더 어렵다. 보철과 농담에 ‘제가 윗니 틀니 전공이니 치료비를 두 배로 받겠습니다. 대신 아래는 공짜로 해드리지요! 그러니 공짜로 하는 아래 틀니에 대해 불평하면 안 됩니다’라고 치료 전에 환자에게 말해 두라는 농담이 있다.

언젠가는 친구가 일껏 틀니를 만들고 끼워드리기 직전에 환자가 돌아가셔서 치료비도 다 받지 못했다고 투덜댄 적이 있다. 나는 농담 삼아 이렇게 말했다. ‘감사해야지! 만약 끼워드리자마자 돌아가셨더라면, 그리고 밤마다 꿈에 나타나 불편하다 하면 어쩔 뻔했어?’ 그러자 그 친구 ‘어휴, 정말 그러네. 다행이군!’ 하고 함께 웃었던 적이 있다.

틀니 치료는 인상과 교합에 대한 지식과 기술적 노하우가 성패를 좌우한다. 그러나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의학은 자연과학이지만 의료는 인문학이라는 말이 있듯이 좋은 치료는 환자의 삶을 잘 이해해야 한다. 틀니 치료는 더욱 그러하다. 더구나 틀니 환자의 상당수는 불안과 우울증을 동반하기 때문에 많이 조심해야 한다.

틀니 치료가 시작되면 나는 틈틈이 삶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한다. 언제 이를 빼셨고, 언제 틀니를 처음 끼셨는지, 그때의 느낌은 어떠셨는지… 그리고 은퇴 전에는 무슨 일을 했는지를 묻는다. 가족과 자녀들에 대해서도 지나가는 말로 툭툭 질문 던지기를 좋아한다. 물론 치료에 필요한 정보들을 포함하여 환자의 심리적 상황을 이해하기 위한 치료의 목적도 있지만, 무엇보다 그 삶의 애환을 공유하고 싶기 때문이다. 처음엔 잘 마음을 열지 않지만 자기 얘기를 듣고 싶어 하는 의사에게 환자는 점차 마음을 열게 된다. 서른두 개 치아를 뽑을 때마다 각기 사연이 있었을 것인데 이러한 이야기를 서로 나누게 되면 우린 환자와 의사가 아닌 친구가 되기도 한다.

이제 노인이 되어 자신의 틀니 비용조차 남겨두지 않고 모두 자녀들에게 쏟아부으시고 딸이나 며느리의 손에 짐짓 이끌려 오시는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틀니는 인생의 훈장이다. 이 훈장을 정성껏 만들어 드리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귀한 직분이고 우리만의 특권이다.

우리는 이렇게 당신의 과거와 미래의 삶 속에 개입한다. 해가 바뀌며, 틀니를 통하여 당신의 삶 속에 개입하도록 허락하셨고 또한 나의 기억 속에 개입하신, 어르신들의 안부가 더욱 궁금해진다.(기독치과의사회 웹진 기고 글 중)


이철규
이철규·이대경치과의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