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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라 지르자!” 은발 휘날리며 ‘헬리스키’ 즐기는 상남자

[브라보! 마이세컨라이프] ➌ 이기택 전 협회장
연중 절반은 스키장에서 사는 골수 스키어
3년 전 헬리스키 도전 “하마터면 추락사고”


겨울에 만났어야 했다. 슬로프에서 활강하는 노익장을 카메라로 담았어야 아쉬움이 덜 했을 거다. 스키엔 젬병인 기자를 두고 ‘이게 스키’라며 직접 몸으로 인터뷰 했어야 이야기를 제대로 매조졌을 것이다. 5월에 스키 얘기라니!

겨울만 기다리다가 아예 겨울이 가장 빨리 오는 땅으로 터전을 옮긴 이기택 전 협회장(치협 고문)을 만났다. 그는 2003년 강원도 용평으로 이주했다. 그래도 그는 역시 골수 스키어였고, 입담꾼이었다. 인터뷰 내내 모굴스킹(mogul skiing)처럼 이야기의 둔덕을 커빙하고, 활강하며 스키의 짜릿함을 묘사했다.

“용평에는 내가 좋아하는 게 다 있거든”이라며 껄껄 웃는 이 고문은 대한민국 치과계에서 알아주는 ‘스키 마니아’다. 그는 스키, 골프, 그리고 바다를 사랑한다. 용평에서 강릉은 30~40분 거리다. 지난 5월 28일 용평리조트에서 이 고문의 ‘스키 라이프’를 엿봤다. 그는 1년에 절반은 스키를 탄다고 했다.

“1975년 용평스키장이 개장했을 때 처음으로 스키를 접했어요. 그때부터 스키에 빠져서 겨울에는 매주 용평에 올 정도로 스키를 탔어요. 협회장, 병원 일로 바쁠 때에도 매주 주말마다 천마산, 베어스타운 같은 근교 스키장에서 스키를 탔지요. 지금은 용평스키장이 개장하는 11월에서 3월까지 4개월은 용평, 2~3주는 일본이나 뉴질랜드 등 해외에서 스키를 탑니다.”

이 고문의 ‘스키천착’은 딸에게도 고스란히 대물림됐다. 이 고문의 딸은 전 국가대표 스키 선수인 이은아 씨다. 고사리손을 잡고 스키장을 다녔는데, 재능이 있어 보여 막무가내로 대회에 출전시켰더니 학생 선수들 틈에서 5위를 마크한 것이다. 그 이후 이은아 씨는 국가대표, 데몬스트레이터(대표 스키 지도자) 등을 역임하며 한국 스키계의 간판으로 활약했다. 



# 두려워도 ‘에라 지르자’ 주의자

이기택 고문에게 스키는 단순히 애호를 넘어 삶을 온통 걸어야 할 과제처럼 보였다. 스키 시즌이 되면 그는 매일 병원에 출근하듯 스키장에 나가고, 비시즌에는 눈이 있는 나라에 가거나 올해 스키 계획에 골몰한다.

“스키가 배울 때 좀 힘들어서 그렇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격렬한 운동은 아니에요. 오히려 중력의 매커니즘만 잘 이용해서 길어야 5~10분 내려오면 되니까 게으른 운동이라고 할 수도 있죠. 대신에 매력은 무궁무진해요. 스피드를 즐기는 사람들한테 좋은 건 말할 필요도 없고, 노인은 특히 겨울에 실내에만 있어서 많이 늙는데 스키장에 나와서 스키를 타면 일광욕도 되고, 신선한 공기도 마시게 돼 활력이 생기죠.”

최근에는 준프로급 수준인 level 1, 2 자격증도 취득했다. 1000명이 지원해 약 250여 명이 합격하는 정도인데, 시니어 그룹에서 최고령으로 응시(76세)해 최고점으로 합격했다고 말했다. 모든 스키어들의 숙원인 헬리스키(헬리콥터를 타고 산 정상부로 가 스키로 활강하는 것)도 3년 전부터 매년 도전하고 있다. 지난해 8월에 드디어 숙원을 이뤘는데, 2014년에는 아찔한 경험도 했다. 기상이 계속 좋지 않아 결국 포기했는데, 타기로 했던 헬기가 추락한 소식을 후에 들은 것이다. 이 고문은 “그걸 탔다면 아마 이 세상에 없었겠죠”라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그러면서 이어 갔다.

“그렇게 기상여건 때문에 계속 실패하다가 작년에 뉴질랜드에서 드디어 헬리스키에 성공했어요. 헬기에서 내려 해발 2000미터 정도의 새까만 직벽을 옆에 두고 걸어가는데 ‘무슨 청춘 스키어라고 돈 내고 이 짓을…’하는 후회도 됩디다. 그래도 에라 모르겠다, 뛰어 내렸죠. 아뿔싸! 두 번 턴 하자마자 스키가 걸려 넘어졌으나 경사가 가팔라서 금세 일어나서 활강했죠. 서밋 밑에 스키 자국 하나 없는 눈밭을 내려오는데 겁도 나지만 전율이 몸을 휘감았어요. 다 내려오니 가이드가 ‘당신이 역대 최고령자’라고 축하해 줍디다. 허허허”

여기서 이 고문의 성격이 나온다. 더 살고 싶은 생각(?)에 포기할까 생각도 했다는 이 고문은 천생 ‘지르자’ 주의자였다. “솔직히 직벽 파우더 스키를 견딜 수 있을까 비겁함도 있었지만 옛날 같으면 장수했을 나이니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질렀죠. 짜릿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