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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깟 공놀이

Relay Essay 제2225번째

지난주 저녁식사 자리에서 갑작스럽게 마감 기한과 함께 예상치 못한 원고 작성을 부탁받고 어떤 글을 써야할지 고민에 빠지게 되었다. 공보의 생활에 대해 편하게 수필을 작성하면 된다는 주문이었지만, 맡고 있는 직책상 오히려 공보의 생활에 대해 적어나가다가 너무 진지해질 가능성만 높아지지 않을까 걱정이 앞섰다. 그래서 편하게 써내려갈 주제를 찾기 위해 주위를 둘러보던 중 주변에 굴러다니는 공들이 눈에 들어왔다. 30여년 전 이족보행을 시작한 이래로 하루도 빠짐없이 함께하던 여러 종류의 공들. 이거라면 마음 편히 글을 쭉 써내려갈 수 있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재미를 붙인 종목은 야구였다. 야구를 하기에 다소 어린 나이였지만, 동네 놀이터에서 직접 파울라인과 베이스를 그려가며 하루도 빠짐없이 친구들과 야구를 했다. 그 시절 일기장을 보면 매일같이 그날의 스코어와 기록을 분석해 놓은 것이 가득한 것으로 보아 꽤나 열정적으로 즐겼던 것은 분명한 듯하다. 그 덕분인지 학부 때 야구 동아리에 용병으로 초청되어 나쁘지 않은 타율을 기록한 것으로 보아 조기교육의 중요성이 이런 것이구나 하는 생각도 든다.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농구와 축구로 종목이 변경되었다. 몸이 성장하면서 야구를 할 만큼 넓은 공간을 찾기는 어려웠던 반면, 농구와 축구는 언제든 즐길 수 있는 장소와 친구들이 있었다. 거짓말 하나 안 보태고 학교에서 모든 쉬는 시간과 점심시간을 농구와 축구를 하러 나갔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어디서 그런 체력이 나오는지 신기하기만 할 뿐이다. 심지어는 발목과 손가락에 깁스를 하고서도 슛 연습이라도 하겠다고 기어나갔으니 거의 중독이라고 밖에는 설명하기 어렵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치과대학에 처음 입학했을 때 가장 당황스러운 점 중 하나가 동아리 숫자라는 것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것이다. 한 학번에 100명도 되지 않는 단과대 규모에 동아리 소개식을 따로 해야 될 정도로 수가 많으니 신입생 입장에서는 생각지도 못했을 상황일 것이다. 덕분에 후배 유치를 위해 선배들이 신입생들에게 잘 보이려고 온갖 노력을 하는 진풍경이 펼쳐지는 것도 독특한 문화가 아닌가 싶다. 그리하여 원래부터 농구부에 들어가려고 생각은 했지만 치대 안에 동아리가 따로 있는 줄은 전혀 모르고 있다가 결국 자연스럽게 치대 농구부에 가입하게 되었다.

예전에는 육구제라고 불리다가 전국치과대학축제로 이름을 바꾼 11개 치과대학의 축제는 이 운동 동아리들의 가장 궁극적인 목표라 할 수 있겠다. 보통 5월에 대회가 열리기 때문에 봄 학기가 시작하기가 무섭게 맹훈련에 돌입하게 된다. 딱히 엄청난 상금이나 상품이 주어지는 것도 아닌데 그 바쁜 본과 생활 와중에도 새벽훈련과 심야훈련을 불사해가며 팀워크를 완성해가는 것을 보면 정말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렇게 여섯 시즌을 농구를 하면서 보내게 될 줄로만 알았는데 예상치 못한 공놀이를 새로 접하게 되었으니, 바로 당구였다. 친구들과 호기심에 경험삼아 한 번 치러 간 것이었는데 그렇게 중독성이 강할 줄은 전혀 예상치 못했다. 처음 길을 배운 후에 그대로 공이 3쿠션을 돌아 득점이 되는 순간의 짜릿함은 잊기 어려울 것이다. 당구를 쳐본 사람이라면 경험해보았겠지만, 재미를 한창 붙일 때는 밤에 자려고 눈을 감으면 계속 공이 굴러다녀 잠이 오지 않을 정도로 하루 종일 당구 생각만 가득해진다. 예과 생활의 특성상 수업을 다소 등한시하고 당구에 집중한 결과 빠른 시일 내에 실력 성장을 맛볼 수 있게 되었다.

다음으로 접하게 된 종목은 볼링이었다. 원래 재미로 친구들과 몇 번 경험해본 적은 있었지만 똑바로 가운데로만 굴리는데 집중했지 제대로 치는 방법은 모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TV에서 선수들이 공에 스핀을 넣어 스트라이크를 잡는 것이 멋있어 보여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마침 시간이 많은 공보의 1년차였기에 퇴근 후 매일 저녁마다 왕복 60km를 오가며 볼링을 치러 다니게 되었다. 1,3번 핀 사이에 꽂히면서 파워풀하게 넘어가는 스트라이크를 맛보게 되면 여러 구기 종목 중에 스트레스 해소로는 볼링이 제일이 아닌가 싶다. 다른 종목과 비교했을 때 경기장 대비 공의 크기가 가장 크고 목표물도 쉽게 쉽게 넘어가주기 때문에 초심자가 배우기에도 가장 부담 없이 즐길 수 있었던 것 같다.

어느덧 자주는 아니지만 볼링 스코어 앞자리에 가끔 2자가 보이기 시작하면서 만족을 하던차에 기회가 되어 근무지를 옮기게 되었고 그곳에서 본의 아니게 또 새로운 공놀이를 접하게 되었으니, 모든 구기종목의 종착지라고 불리는 골프였다. 새로 옮긴 근무지는 주변에 라운딩 나갈 수 있는 필드만 13곳이 있어 골프 8학군이라고 불리고 있었다. 골프는 언젠가 시작하겠지라는 마음으로 배움을 미루고 있었는데 이곳에 오니 도저히 시작하지 않을 수 없는 어떤 기운이 느껴졌다. 그래서 딱히 재미있어 보이진 않았지만 인맥관리 등의 다른 목적으로 시작이나 해보자 했는데, 막상 시작해보니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골프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지 격하게 공감이 되었다. 이 조그만 공은 선수들이 칠 때는 당연하다는 듯이 바른 방향과 적절한 탄도로 날아가 보기에는 다루기 쉬워 보이지만, 막상 직접 쳐보면 나를 비웃기라도 하듯이 말도 안 되는 방향으로 휘어져 나가버리고 마는 것이다.

한동안 레슨을 받아가며 고생한 끝에 이제야 공을 좀 사람답게 보내기 시작했더니 그제서야 나보다 먼저 골프를 배우기 시작한 사람들이 반겨주기 시작하는데 마치 새로운 세계를 접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이대가 달라 공유되는 주제가 적었던 세대의 어른들과 골프라는 주제로 대화가 통하기 시작하는 것이 참 신기하기도 했고, 특히 부모님과 같이 라운딩을 할 때는 알 수 없는 뿌듯함이 느껴지기도 했다.

이렇게 우리나라에서 다양한 구기 종목을 즐기다보면 떼래야 뗄 수 없는 것이 하나 있으니 바로 내기문화이다. 이러한 내기문화는 재미를 배가시키고 긴장감을 유지시키는데 한 몫 하여 많은 사람들이 내기 없이는 공놀이를 즐기는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하지만 이러한 내기가 과해져서 평정심을 잃고 승부에 너무 집착하게 되면 이는 하지 않는 것만 못한 결과를 낳게 된다. 특히 치과의사 직군의 특성상 과도한 내기를 하려는 때가 종종 있어, 스포츠 본연의 재미를 느끼지 못하고 오히려 기분을 망치게 되는 경우도 있다. 함께 즐기며 더욱 친목을 다져야 할 상황에 되레 반대의 상황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깟 공놀이’가 뭐라고….

여러 스포츠들을 접해보면 그 종목 자체의 재미뿐만 아니라 건강을 유지하고 인간관계를 돈독히 하는 등 다양한 순기능들이 있는 것 같다. 어차피 우리가 프로선수의 길을 걷기로 결정한 것이 아니라면 게임의 승패나 실력이 궁극적인 목표가 되어야 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승부에 너무 집착하지 않고 건전한 스포츠 정신으로 즐길 때 비로소 여러 순기능들이 작동하여 우리 삶에 진정한 의미를 지니게 되는 것 같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의미있게 보낸 시간들이야말로 나중에는 기억도 못할 한 게임 한 게임을 이긴 것보다 훨씬 가치있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뜻깊은 상념에 잠기며 글을 마무리하면서 결국 오늘도 지난주의 패배를 설욕하기 위해 연습장으로 향하는 길을 나선다. ‘그깟 공놀이’ 때문에….

김영준 대한공중보건치과의사협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