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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과의사 무엇으로 사는가?

그림으로 배우는 치과의사학- 10


톨스토이(1828-1910)의 작품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는 소설이면서도 인생의 길라잡이가 될 만한 글귀들이 있다. 다른 고전에 비해 읽어나가기가 쉽고 40쪽 분량의 단편이라 부담 없이 단숨에 읽을 수 있다. 하지만 읽고 나니 생각이 참 많아진다. 소설 제목은 <치과의사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물음으로 변경되어, 치과의사로서 25년간의 긴 여정을 걷고 있는 나 자신에게 던져지는 질문이 되었다. 그리고 우리가 끝없이 가지는 고민이기도 하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라는 노랫말처럼 치과의사에게는 ‘무엇’을 찾아 무엇을 남기느냐가 매우 중요하고 의미 있는 숙제이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서 하나님이 천사 미카엘에게 던진 세 가지 질문은 <치과의사 무엇으로 사는가?>를 고민하고 있는 우리들에게도 동일한 물음이다. 이에 대한 답은 우리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것이라 생각된다.

1. 사람의 마음속에는 무엇이 있는가?
2. 사람에게 주어지지 않은 것은 무엇인가?
3.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몇 일전에 졸업 동기가 17년의 개원 생활을 정리하고 6월 말에 동아시아로 치과 의료 선교 활동을 떠나기에 몇 명 친구들과 함께 환송회를 하였다. 그 친구의 깊은 신앙심은 예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까지인 줄은 미처 몰랐다. 개원의로 지내다가 선교사로 험지에서 제2의 인생을 출발한다고 말하는 친구의 모습에 저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아는 것과 행하는 것은 가깝고도 먼 친구 같은 사이인데, 그는 두 친구와 모두 우정을 지켰다. 하나님이 인도하신 삶을 시작하는 친구와 그 가정에 건강과 안전을 기원한다. 오랜만에 만난 동기들과 대화를 나누는 내내 <치과의사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문장이 계속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이번 그림은 Matthew Darly(1741-1792)가 1778년에 제작한 동판화 ‘The Dentist’이다(그림1). 영어 단어 Dentist는 현대 치의학의 아버지로 칭송받는 피에르 포샤르(Pierre Fauchard, 1678-1761)와 연관이 깊다. 1728년 출판된 그의 저서 ‘Le Chirurgien Dentiste(The Surgeon Dentist)'에서 dentist가 처음으로 사용되었다. 또한 그는 실외(장터)에서 발치하던 tooth puller의 지위를 실내(진료실)에서 환자를 치료하는 전문직업인 Dentist로 격상시켰다. 그는 인간의 존엄성을 위하여 반드시 환자는 바닥이 아닌 의자에서 진료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작금의 현실은 치과 밖으로 던져진 치과의 승부수가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키 작고 뚱뚱하고 가발을 쓴 치과의사가 떨리는 손길로 환자를 보고 있다. 그의 왼손에는 약간 구부러진 기구가 있고, 오른손은 환자의 하악 치아를 만지고 있다. 추측하건대 시클 스케일러(sickle scaler)로 핸드 스케일링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가슴이 드러나도록 깊이 파인 드레스, 우뚝 솟은 올림머리에 모자까지 쓴 채로 치료를 받고 있는 가녀린 중년 부인은 곧 닥칠 고통을 예상한 듯 손에 힘을 꽉 쥐고 있다. 그녀의 안모를 미루어 짐작컨대 다수치가 상실된 것으로 보이며 남아있는 치아의 상태도 썩 좋아 보이지 않는다. 따라서 그녀는 잔존치 보존을 위해 통증을 무릎 쓰고 정기적인 스케일링을  받고 있는 것 같다.

진료실 벽에 초상화처럼 걸린 치아 그림은 해석이 난해하다. 불규칙한 치열에 심각하게 파괴된 치아 그림을 보면서 환자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환자에게 경고의 메시지일 수도 있고 그림이 치과의사의 실력에 의심을 품게 할 수 도 있다. 생각과 해석의 차이는 그림을 보는 사람의 관점에 달렸기에 독자에게 맡기며, 그림의 하단에 써져있는 문구가 참고가 되었으면 한다. 마지막 문장에 예방을 위해 노력하는 치과의사의 열정이 사뭇 감동적이다.  

I cures all the disorders of the mouth. I draws teeth in a minute, without pain.
I makes natural or artificial teeth & have invented a substance that answers the purpose of gums.

두 번째 그림 ‘The DENTIST scaling the LADIES TEETH(그림2)'에는 제목 자체에 영어와 치과 이야기가 있다. 이 그림은 1785년 Robert Dighton(1752-1814)이 메조틴트(mezzotint) 기법으로 제작한 동판화다. 그림에 써진 제목을 자세히 보면 'fcaling'처럼 보인다. 알파벳 S와 F가 혼동된다. 초기 현대 영어에서 s와 long s가 혼합되어 사용되었는데, long s는 알파벳 f와 비슷한 모양으로 써져 사용되었다. 'fcaling'처럼 보인 이유는 18세기말에 사용된 long s의 흔적 때문이다. 치과에서 사용되는 단어 스케일링(scaling)의 어원은 이렇다. tooth scraper로 치석(tartar)을 제거할 때 마치 칼로 생선의 비늘(scale)을 벗겨내는 것처럼 치석이 제거되어 scaling이라는 용어가 탄생하였다.

스케일링의 중요성은 스페인 코르도바에서 활동한 이슬람교도 외과의사 알부카시스(Albucasis, 936-1013)에 의해 강조되었다. 그는 치의학에도 많은 공헌을 하였는데 14개의 scaler가 한 세트인 기구를 제작하였고, 치아가 발거될 때 치아가 들어 올려진다고 해서 발치에 사용된 기구를 elevator(발치기자)라고 명명하였다. 그림에서 치과의사는 한 손에는 리트렉션을 위해 설압자(spatula), 다른 한손에는 치석 제거 기구(scaler)를 들고 스케일링을 하고 있다. 여성 환자는 짧은 소매의 블라우스 복장을 입고 있는 것으로 보아 환자의 집에 치과의사가 출장 진료를 온 것으로 보인다. 치과의사의 옆에 놓여있는 모자와 지팡이가 이러한 추측을 더욱 확실하게 해준다.

권 훈                                      
조선대학교 치과대학 졸업
미래아동치과의원 원장
대한치과의사학회 정책이사
2540g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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