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4 (수)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기사검색

미녀와 야수

스펙트럼

얼마 전 미국 워싱턴 D.C.에서 열린 미국소아치과 학회에 다녀왔다. 짧지 않은 하늘 길 오가는 비행기에서 대부분 누구나 그러하듯이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 무심코 영화채널을 돌렸는데 익숙한 제목의 영화를 보게 되었다. 이름하여 ‘미녀와 야수’. 디즈니 애니메이션으로 우리 아이들이 어릴 때 비디오 테이프가 마르고 닳도록 보던 바로 그 이야기가 최근에 컴퓨터 그래픽의 발전으로 만화가 아닌 영화로서 개봉했었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는데 마침 메뉴에 있길래 과연 그림을 어떻게 영화로 바꾸었을까 하는 호기심어린 마음으로 가볍게 보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정작 나를 사로잡은 것은 신기하고도 정교한 컴퓨터그래픽의 화면이 아니라 영화 속에서 주인공도 아닌 어떤 등장인물이 독백식으로 읊조렸던 대사 하나였다.

프랑스의 어느 작은 마을에 홀 아버지와 함께 사는 벨이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그녀와 그의 아버지를 사차원 적으로 특이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그녀를 흠모하는 번듯한 외모와 힘이 있는 개스통이라는 남자, 그의 옆에는 르푸라는 친구이자 조수같은 사내가 있었다. 개스통의 주위에는 사람들이 따랐고 개스통은 벨에게 프로포즈를 하지만, 벨은 개스통의 무식함과 잘난 척에 기겁을 하고 일언지하에 거절해버린다. 그래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벨을 자신의 여자로 만들기 위한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던 개스통, 어느 날  벨의 아버지 모리스가 장사하러 장에 다녀오는 길에 늑대들의 공격을 받아서 피해서 찾아들어간 성에서 무시무시한 야수를 보게된 사실을 마을 사람들에게 알리는 과정에서 개입하여 그런 존재가 마을 주위에 있으면 모두가 위험하다는 논리로 마을사람들을 여론몰이 해서 본인의 존재와 힘을 부각시키기 위해 야수를 죽이러 떠나자고 충동시켜 자신을 따라오도록 한다.

사람들이 야수를 잡으러 무리를 이루어서 가는 도중에 선두에 선 개스통과 그 옆에 있는 조수역할의 루프, 이 때에 루프가 혼잣말로 독백하듯이 노래하는 내용이 있었다. ‘야수는 분명히 있네, 우리는 그 야수를 잡으러 가네. 그런데 그 야수보다 더 무서운 괴물이 여기에 우리들 중에 있네.’라고. 이 영화를 보더라도 아무도 기억하지 않을 이 한 줄의 대사! 이상하게도 영화 전체의 스토리 보다 그 대사에 갑자기 딱 의미부여가 되면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미녀와 야수라는 영화 속의 공간이 매일을 생활하며 진료하는 우리들의 치과라면 영화 속에서 등장하여 역할을 하는 여러 캐릭터들이 치과에서는 원장인 나, 직원들, 그리고 환자들이 될 것이다. 결국 우리들의 치과에서는 하루에도 환자라는 여러 다양한 등장인물들이 바뀌면서 돌아가고 있다. 벨, 야수, 개스통, 루프, 그리고 야수에 해당하는 우리병원안의 등장인물은 누구일까? 환자의 입장에서는 우리 의료진을 영화 속 어떤 캐릭터의 느낌으로 바라보고 있을까? 어떨 때엔 치과안의 분위기가 아무 일도 없는 평화로운 마을 같지만 다른 어떤 때에는 환자가 무시무시한 야수로 돌변한 모습을 우리들은 경험하지 않았던가? 환자의 입장에서는 우리 의료진은 어떨까?

그래서 그럴 때 우리 함께 되돌아보았으면 한다. 만일 환자가 우리를 위협하는 야수라면 그 순간에 우리는 과연 힘없고 선량하기만 한 피해자인가? 아니면 내면은 착하지만 겉으로 야수로 보일 뿐인 가여운 환자를 여론몰이로 죽이려 하는 야수보다 더 괴물인 존재인가? 과연 우리가 환자분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고객의 눈을 바라보고 미소 지으며 진심어린 마음으로 그 분과 그의 의견에 집중을 했는가? 이제껏 보다 더욱 세심한 반응을 보여드릴 때가 아닌가 여겨진다.

오늘도 출근길에 나의 귓전에는 루프의 독백이 메아리친다. ‘야수는 분명히 있네, 우리는 그 야수를 잡으러 가네. 그런데 그 야수보다 더 무서운 괴물이 여기에 우리들 중에 있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