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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낌적인 느낌

오지연의 Dental In-n-Out

보슬비가 내리던 저녁 분당 인근을 지나다 길가의 한 설렁탕집에 들어갔다. 토요일 8시를 넘긴 시각이니 그럴 듯 해 보이는 곳들은 거의 만원이라 선택의 여지가 없었는데 들어가 보니 나름 분위기가 있는 집이었다.

재즈(!)가 흐르는 홀에는 충분히 간격을 띄운 테이블들이 스무 개 쯤 되고, 입구 쪽으론 원두커피 포트와 컵 등이 줄을 잘 맞춰 놓여 있었다. 누구든 얌전히 컵을 하나만 뽑아 조심조심 커피를 따르고 설탕도 흘려선 안 될 것만 같은 그런 정갈한 커피코너 본 적 있으시죠? 테이블 마다 종이냅킨도 아마 개수를 맞춰 꽂아 놓은 듯 두께가 비슷해 보이고, 배식구 옆의 접시며 물 컵들도 일렬로 줄을 맞춰 쌓여 있었다.

김치 깍두기도 40대의 여사장(으로 보이는)이 직접 썰어다 준다. 손님들이 마구잡이로 꺼내도록 놔 둘 생각은 추호도 없어 보이는 상냥하지만 단정한 인상이었다. 설렁탕집 분위기 치고는 특이했는데 뭐랄까 이 사람들은 무슨 음식점을 하던 결국 이런 스타일로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언제고 성공을 하긴 할 것 같지만 또 어쩌면 성공 따위엔 큰 관심이 없을지도 모르겠다.

하루하루 자기방식 대로 사는 정돈된 일상 같은 것이 굳이 느끼려고 하지 않는데도 느껴져 왔다. 주방은 보나마나 청결하고 효율적일 것이다. 깜짝 놀랄 만한 별미는 아닐지 몰라도 나무랄 데 없는 무난한 맛의 설렁탕과 만두일 거라는 예상도 적중했다. 배고픔과 함께 마음 속 어딘가에서 자그맣게 들려오던 걱정의 북소리도 멎었다. 이런 평화로움이 조그만 내 치과 대기실에서도 느껴지면 좋겠다는 쑥스러운 소망의 북소리와 교차되며.

지난 6월 21일부터 전면 실행되고 있는 설명의무법의 취지는 수술시 의사에게 환자가 알아야 할 최소한의 일반적 내용을 알려주게 하고, 의료계에 횡행했던 대리수술을 방지하겠다는 것이라고 한다. 설명한 내용 이외의 부작용이 발생했을 때의 책임소재를 과도하게 걱정하고, 기본적인 수술 내용을 설명 하는 것인데도 자신들의 권익을 침해받는 것으로 여긴다며 당국과 시민단체(즉 환자를 대변하는)는 의사들을 비난한다. “이 정도면 충분한 설명”이라고 할 만한 구체적 프로토콜이 우선 필요하다는 의사들의 의견에는 동의하면서도, 이유는 모르겠지만 “추후 사례를 모아” 유권해석 및 사례공개를 통해 그 범위를 정해가겠다는 입장이니 그 동안에 생길 분쟁과 갈등에 대해 충분히 고려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내 기억에 대학에서 수술 및 치료 술식을 일반인에게 풀어서 설명하는 법을 배운 적은 없는 것 같다. 순간적인 판단으로 다른 방법으로 전환해서 수술을 진행하는 모든 경우를 열거, 설명하는 법도 마찬가지고. 각각의 설명에 적절한 소요시간까지를 포함한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는 것은 그러므로 결코 의사의 권익보호만을 위해서는 아니다. 어쩌면 의료에 있어서 중요한 한부분임에는 틀림없는데도 여태껏 조명 받지 못했던 “환자에게 설명하기”란 항목이 법적 처벌이라는 위협과 함께 다소 급격히 대두되자 우선 일의 순서를 바로잡자는 의견을 내고 있다는 게 더 적당한 표현이겠다. 누구에게든 무슨 일에든 준비란 꼭 필요한 것이다.

그렇지만 하나에서 열까지 모든 게 불안한데다 만일의 불운까지도 염두에 두고 있는 환자들에게 아직 시작도 안 한 수술의 끝부분까지를 안심시킬 방법이 과연 있을까. 완벽한 가이드라인대로 청산유수 설명을 한들 환자가 충분히 평화로워지긴 어려울 지도 모른다. 열심히 설명하고 있는 의사의 어조와 표정과 전반적인 병원의 분위기 등등을 종합해 볼 때, 신의 손 까지는 아니라도 대체로 무난한 수술이 될 거 같고, 적어도 부주의로 인한 문제가 생길 것 같지는 않다는, 어쩐지 막연하나마 느낌이 좋다 싶은 그런 느낌이 없다면.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