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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조건

스펙트럼

중년에 들어서다 보니 같은 치과의사지만 삶의 모습은 매우 다양한 것 같다. 개원을 하거나 공직에서 전일제로 일을 할 수도 있고 자유계약직으로 일을 할 수도 있다. 아니면 아예 치과 일을 그만두고 자녀교육과 함께 가사 일을 하는 치과의사도 심심치 않게 눈에 띈다. 어떠한 모습이던 우리는 삶의 현장에서 행복하기를 바랄 것이다.

행복이란 무엇일까? 개원해서 크게 성공하거나 공직에서 큰 명예를 얻으면 행복한 것일까? 치과 일을 하지 않으면 불행한 것일까? 아니면 오히려 치과 일을 하는 것보다 하지 않는 것이 행복한 것일까? 10대, 20대 때는 에너지가 충만하고 의욕도 많아서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지 자주 행복감을 느꼈던 것 같다. 그 행복감이라는 것을 이제 와서 반추해 보면 작은 일에도 만족과 기쁨을 느끼는 것이었고 만일 나의 상황을 옆 사람과 비교하기 시작하면 행복감은 사라지고 씁쓸한 기분만이 그 자리를 채우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시절에는 너무 어려서 비교라는 것이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것이며 내가 처한 상황에서 스스로 행복해야 한다는 사실을 몰랐다.

중학교 때부터 시작된 등수로 표현되는 교육, 비교의 습관은 우리 시절 많은 학생들의 마음에 획일적으로 내면화 되었다. 그래서 공부를 잘 하는 학생은 등수가 떨어질까 봐 전전긍긍하며 불행하고, 공부를 못하는 학생은 자기 존재의 의미를 스스로 부인하거나 타인으로부터 부인당하는 말도 안 되는 슬픈 일이 많았다. 즉 행복이라는 것이 외부로부터 조건화되었다. 그래서 카이스트 학생이 자살을 하는 불행한 일도 생겼던 것이 아닐까? 삶의 단계에서 생기게 되는 다양한 외부적 조건들로 계속해서 남들과 비교를 멈추지 않는다면 내가 아무리 좋은 조건에 있어도 불행은 피할 수 없다.

한 15년 전쯤에 이런 일이 있었다. 어느 토요일이었는데 점심 식사로 만둣국을 끓이다가 너무 한심한 생각이 들어 가족에게 내가 지금 이렇게 만둣국이나 끓이려고 10년이나 공부하고 치과의사가 된 게 아니라고 말 한 적이 있다. 환자를 보고 있는 치과의사인 나는 자랑스럽고 가족들의 식사를 위해 만둣국을 끓이고 있는 나는 자존심이 상했던 모양이다. 내가 어떤 일을 하느냐에 따라 나의 가치가 달라진다는 생각이 나를 불행하게 만들었던 것 같다.

이제는 치과의사로 다양하게 살아본 경험이나 가족 구성원의 일부로서 외부 조건의 비교는 백해무익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매일 우리 삶의 현장에 비교할 만한 외부 조건들은 충만하고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그 조건들은 모양을 바꾸어 가며 우리를 시험한다. 만일 비교를 멈추고 오히려 내면의 자존감을 가지고 지금 하고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한다면 그것이 만둣국을 끓이는 일이든 환자를 보는 일이든 상관없이 기쁠 것이다. 즉 행복이 나의 외부 조건이 아니라 내면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정서적으로 안정되어 있으며 자신의 열등한 부분을 편안하게 받아들이고 오히려 유머로 승화시킬수 있다. 그래서 만나는 사람에게 더욱 편안하게 다가갈 수 있고 좋은 평판과 기회를 잡을 수 있다.
 
이런 깨달음을 가지고 지금 고등학생 자녀의 엄마인 나는 딸에게 무엇을 해 줄 수 있을지 곰곰이 생각해 본다. 딸은 지금 상위 몇 %정도 학생들만을 위한 혜택과 정책들로 가득한 인문계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다. 딸은 이렇게 비교를 바탕으로 한 교육환경에서 그리 우위에 서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여전히 가치가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다. 할 수만 있다면 자존감을 선물해 주고 싶다. 그래서 과거에 연연하지 않으며 현재에 충실하고 미래에는 파도처럼 반복해서 평생 다가올 기회들을 기쁘게 거머쥘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이안나  치과의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