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不 信

시론

문화인류학자인 롤프 브레드니히(Rolf  W. Brednich)는 아래와 같은 글로 조지 버나드 쇼(George B.Shaw)에 버금가는 비판을 한다.

어느 나라 중앙정부에서 외진 벌판에 큰 창고를 건설하기로 결정했다.

한참 건설계획을 세우고 거의 완성된 기획안을 검토하던 관료하나가 ‘창고에 도둑이 들어 약탈을 당할지도 모른다’고 뜬금없는 지적을 하고, 중앙정부는 야간경비직원을 모집하는 공고를 냈다. 공고를 보고 찾아온 사람들 중 적당한 사람을 선발하여 채용하였을 때, 또 어떤 관료하나가 ‘야간경비직의 근무지침이 없으면 어떻게 근무를 하나?’라고 지적하며 ‘야간경비직의 근무지침을 야간경비직 자신이 직접 짤 수는 없는 노릇이니, 야간경비직의 근무지침 문건을 작성하는 사람과, 근무시간 계획표를 짤 사람이 필요하다’고 제안하여, 두 개의 일자리가 마련되었다. 그때 관료하나가 또 입을 열며 ‘야간경비가 정말로 성실하고 양심적으로 일을 수행하는지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라며 야간경비직원을 상시관리하는 부서를 만들어 두 사람을 고용했다. 한 사람에게는 야간경비의 근무를 관리, 필요시 조사, 감독하는 일이 맡겨지고, 다른 한 사람에게는 야간경비와 조사자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하는 일이 주어지며 일자리는 또 만들어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관료하나가 거들기를, ‘이 모든 직원들의 임금과 직무를 체계적으로 관리하려면 회계담당자, 근무관리자, 보조사무원, 법률고문이 반드시 필요하다’며 언급한 새 일자리들을 다 만들었다.

그리고 1년이 지나 창고운영감사를 나온 관료는 이렇게 보고했다.

‘지난 1년 동안 이 창고는 애초에 중앙정부에서 할당한 예산보다 10만8천 달러를 초과하여 지출하였으므로, 부득이하게 비용을 절감해야하는 상황입니다.’

그리고 중앙정부는 위원회를 열어 신중한 고려 끝에 결국 야간경비를 해고하였다.

웃지 않을 수 없는 이 간단한 얘기에서 건강한 철학이 없는 정치와 전문성 없는 관료주의가 개입하여 교육이나 의료가 병드는 pathologic course의 전형을 본다. 필자의 비유가 다소 비약과 억지가 있는 부분도 없지 않으나, 풀뿌리같이 작고 투명한 의원급 의료기관내에서 명찰패용을 요구하고 강행하는 당국의 몰지각함이나, 그 요구에 따라갈 수 밖에 없는 의료계의 무력함은 윗 풍자 속의 관료와 야간경비와 많이 닮아있다. 어떤 성형외과에서 무지격자가 집도하고, 어떤 치과기공사가 의료행위를 하는데 대한 대처라기엔, 좀 더 그 대처방안에 sensitivity와 specificity가 고려되며 전문성이 스며있는, 아울러 선량한 餘集合에 대한 배려가 녹아있는 방안을 ‘현장의 야간경비’에게 묻고 상의했어야 하지 않을까?

그 사회의 역사와 문화에 기반한, 건강한 철학이 있는 정치, 시대에 뒤떨어지지 않은 감각과 전문성이 갖추어진 유능한 행정관료, 이 두 가지는 그 사회의 발전과 구성원들의 행복을 약속한다. 하나라도 없거나, 둘 다 없다면 그 사회는 퇴보중이고 구성원들은 불행하다.

대체 그들은 야간경비를 얼마나 不信하고 있는 걸까?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