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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포크라테스를 알려면 철학을 알아야

고대 그리스에서 의학과 철학-1

이번호부터 그리스 로마 원전을 연구하는 이기백 학당장이 ‘고대 그리스에서 의학과 철학’을 주제로 칼럼을 연재합니다. 매주 목요일마다 진한 ‘고전의 향기’로 독자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사람들이 철학을 하기 시작한 것은 지금이나 최초에나 놀라워함으로 인해서이다”라고 말한다. 그런데 어떤 현상에 대해 놀라워한다고 해서 곧바로 철학이 시작되는 것은 아니다. 신화도 놀라워함으로 말미암아 생겨난 것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화는 놀라운 자연 현상을 초자연적인 신을 도입해 허구적으로 설명하는 이야기에 불과하다. 진정 철학이 시작된 것은 이 같은 신화적·종교적 사고의 틀을 벗어나 자연 현상을 자연적인 요소들로 설명해내는 합리적 사고에 의해서였다. 고대 그리스는 합리적인 사고에 의해 철학을 탄생시켰을 뿐 아니라 합리적인 의학의 전통도 확립하게 된다. 곧 히포크라테스의 코스학파는 질병을 초자연적인 신의 탓으로 돌리지 않고 신체를 이루는 자연적인 요소로 설명해냄으로써, 주술적·종교적인 의술이 아닌 합리적인 의학의 전통을 확립했던 것이다.

그리고 고대 그리스에서는 의학은 철학과 긴밀한 관계에 있었다. 캘수스에 의하면, “애초에 치료의 학은 철학의 일부로 여겨졌다. 그래서 질병의 치료와 사물들의 본질에 대한 고찰이 동일한 사람들에 의해서 시작되었다. […] 그리하여 우리는 많은 철학자가 의학에 밝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들 가운데 가장 유명한 사람들은 피타고라스, 엠페도클레스, 그리고 데모크리토스이다.” 다른 한편으로 고대 그리스에서는 많은 의사가 철학자이기도 했다. 우선 ‘히포크라테 이전 의학의 아버지’라고 불리기도 하는 알크마이온(Alkmaiōn)이 의사이면서 자연철학자였다. 그는 의사로서, 자연철학의 우주론에 기초한 의학, 곧 ‘철학적 의학’에 종사한 첫 번째 인물로 볼 수 있다. 그는 건강이란 온과 냉, 건과 습 등의 균형 잡힌 혼합(symmetros krasis)이라 말한 것으로 널리 알려졌다. 알크마이온 이외에도 ‘철학적 의학’에 종사한 많은 이들이 있었고, 특히 히포크라테스전집의 저술들을 보면 히포크라테스학파, 즉 코스학파의 많은 이들이 그랬던 것을 알 수 있다. 코스학파는 의학과 철학의 경계를 넘나드는 연구 경향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갈레노스는 “우리가 진정으로 히포크라테스의 추종자들이라면 우리는 철학을 해야 한다”고 역설한 바 있다. 이는 히포크라테스가 오늘날 중시되는 학제간 연구나 통합적 연구를 했음을 뜻한다.

의학과 철학의 관계에 대해 버넷은 엠페도클레스 이후로는 “의학사를 계속 염두에 두지 않고서는 철학사를 이해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언급하기까지 한다. 에델슈타인은 버넷의 언급에 이의를 제기하는데, 그것은 버넷이 철학과 의학의 관계를 과장했다고 생각해서가 아니라, 그가 의학이 철학 쪽에 영향을 주었다는 식으로 언급했기 때문이다. 에델슈타인은 고대 그리스에서 철학이 의학에 영향을 주었으되 그 역은 아니라고 본다. 그러나 이처럼 철학과 의학의 관계가 일방적인 관계로만 이루어졌다고 보는 데는 무리가 있다. 이를테면 엠페도클레스의 4원소설은 의학자인 필리스티온(Philistiōn)의 병인론에 영향을 주고, 이것은 다시 플라톤의 병인론뿐 아니라 그의 우주론에 일정 정도 영향을 미쳤다. 이런 경우 철학과 의학의 관계는 단순히 일방적이라 하기보다는 상호적이라고 보는 게 적절할 것이다. 


물론 고대 그리스에서 의학과 철학이 줄곧 우호적인 관계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철학으로부터 의학의 분리를 시도하는 이들도 있었기 때문이다. 히포크라테스 전집 중 특히『전통 의학에 관하여』가 ‘철학적 의학’에 대한 비판적인 견해를 보여주고 있다. 이런 점을 주목해 캘수스는 “히포크라테스가 의학을 철학에서 분리시켰다”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고대에서는 코스학파의 시대뿐 아니라 그 이후에도 의학과 철학이 긴밀한 관계를 갖는 기조는 계속 유지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다음 호에서는 종교적 주술적 의술에서 탈피해 합리적 의학을 개척한 의사들의 선구적 안목을 살펴볼 것이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이기백
정암학당 학당장
성균관대학교 초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