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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복더위 대표 보양식 영계백숙

박상대의 푸드 스토리 -영계백숙


삼복더위 한복판을 지나고 있습니다. 1년 중 가장 무더운 삼복더위에 사람들은 보양식을 찾습니다. 그 가운데 가장 많은 사람들이 찾는 보양식이 삼계탕, 닭백숙이죠. 수도권에서 영계백숙 음식점이 가장 많은 남한산성에서 닭백숙을 생각해 봅니다.

닭백숙은 영계백숙, 촌닭백숙, 토종닭백숙, 누룽지백숙 등 여러 이름으로 불립니다. 이중 영계백숙(英鷄白熟)은 아직 달걀을 낳지 않은 중닭을 삶아낸 음식입니다. 꽃이 아직 활짝 피지 않은 봉오리 상태의 꽃을 상징하는 영(英)자를 쓴 이유입니다. 

닭백숙은 닭을 맑은 물에 푹 고아서 그 국물에 찹쌀과 마늘을 듬뿍 넣고 끓인 뒤 살코기를 먼저 먹고 죽을 나중에 먹습니다. 살코기를 먼저 꺼내서 쟁반이나 큰 접시에 올려놓고 다리와 날개와 몸통을 나눠서 살을 발라 먹습니다. 살코기나 껍질은 굵은 소금을 살짝 찍어서 먹어야 소금이 씹히는 소리와 함께 맛이 온몸에 전해집니다. 초고추장을 찍어 먹는 사람들도 있는데 맛이 조금 다릅니다. 순수한 닭고기 맛은 굵은 소금이 제격입니다.

닭죽은 닭을 오래 끓여낸 국물로 만들기 때문에 닭의 영양소가 고스란히 녹아 있어 맛이 좋고 영양가가 많은 음식입니다. 그래서 옛날부터 백년손님인 사위가 오면 씨암탉을 삶아서 백숙을 만들어 먹이곤 했지요.

요즘에는 닭을 삶을 때 엄나무나 옻나무, 황기, 인삼, 밤, 녹두 따위를 넣고 삶아서 한방백숙이란 음식을 만들기도 합니다. 또한 쌀 대신 누룽지를 넣고 끓여서 누룽지백숙이라는 주객이 전도된 음식도 만들어 팝니다. 어쨌든 여름철에 닭백숙은 최고 보양음식으로 사랑받고 있습니다.

남한산성 영계백숙과 인조임금의 닭죽

우리 민족이 닭고기를 먹기 시작한 것은 삼국시대부터랍니다. 닭백숙이나 닭죽은 언제부터 만들어 먹었을까요? 서울에서 가까운 남한산성 안 종로삼거리 일대에 닭백숙을 판매하는 음식점이 20여 곳 있고, 성남시 은행동에도 30여 음식점에서 닭백숙을 판매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했습니다.

도대체 언제부터 남한산성 안에서 닭백숙을 팔기 시작했는지 기억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다만 일제 강점기에도 있었다고 기억하는 사람도 있지만 가정에서 닭죽을 끓여 먹은 것이고, 사람들에게 전문적으로 닭백숙을 만들어 팔기 시작한 것은 70년대 초반이라는 것이 정설입니다. 주변에 2대, 3대째 한식을 만들어 파는 음식점들이 있습니다. 산속에서 음식을 팔아 생계를 유지한 주막집이나 마방집도 있었습니다.



김훈의 소설 <남한산성>에는 “수라간 상궁이 닭다리 두 개를 간장에 졸였다. 닭다리 두 개가 수라상에 오른 뒤 산성에서는 닭울음소리가 들리지 않았다.”(179쪽)는 대목이 나옵니다. 당시 민촌에서 닭을 기르고, 달걀을 내고, 닭요리를 만들어 먹었다는 사실입니다. 이 대목에서 오래 전에 만난 향토사학자는 당시 임금이 마지막 닭다리를 혼자 먹지 못하고, 눈물을 훔치며 닭죽을 만들어 대신들과 나눠 먹었다는 슬픈 전설을 전했습니다.

인조는 광해군을 몰아내고 집권했지만, 백성들을 제대로 먹이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하며 눈물을 자주 흘렸고, 산성에서 군인들에게 쌀죽을 먹이더라도 골고루 나눠 먹이기 위해서 물을 많이 붓고 죽을 쑤게 했답니다. 강종대 선생은 인조가 항복하기로 마음먹고 산성에서 마지막으로 눈물을 흘리며 식사한 게 닭백숙이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호란이 끝나고 환궁한 30여 년 뒤, 1670년에 발간된 조선 첫 한글 조리서인 <음식디미방>에 영계찜과 닭찜 조리법이 나와 있으니, 이 시절에 닭죽도 만들어 먹었다는 추론이 가능합니다.

남한산성에서 백숙을 먹을 때는 피난 당시 상황을 상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당시 남한산성에는 한양을 본떠서 행궁을 짓고, 대신들의 거처를 마련하고, 부처님께 기도할 수 있는 사찰도 짓고, 상인들과 평민들이 살아갈 종로거리를 조성해 놓았습니다. 종로거리에는 대장간이나 상가, 주막도 있었지요. 지금도 산성마을에는 종로삼거리가 있고, 주변에 음식점들이 많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당시 사대부들은 임금이 잠들면 몰래 종로삼거리 민가에 내려가 조껍데기술을 마시고 돌아갔답니다. 이때 마신 술 이름이 남한산성소주이고, 이때 안주로 내놓은 음식이 효종갱입니다.

사대부들이 임금 몰래 술안주로 먹던 국밥 효종갱


효종갱은 남한산성에서 닭죽 못지않게 오랜 역사를 가진 음식입니다. 효종갱은 소고기에다 고사리, 취나물, 무 등을 넣고 끓여서 간을 맞춘 국밥입니다. 피난시절에도 소고기를 사용했는지 닭이나 돼지고기를 사용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산성에서 맛을 본 사대부들이 환도한 후에 종종 피난시절에 몰래 먹었던 그 국밥이 생각난 겁니다. 그럴 때면 하인들을 시켜 산성에서 먹던 국밥을 사오라고 시켰는데, 하인들이 남한산성까지 갔다 오면 새벽녘에 통금해제를 알리는 종이 울릴 때나 도착했답니다. 그래서 새벽 효(曉), 종 종(鐘), 국 갱(羹)자를 써서 효종갱이라 불렀답니다. 지금도 남한산성 안에서는 효종갱을 파는 음식점이 두 집 있답니다.
 


박상대
글·사진 월간 ‘여행스케치’ 발행인
 <보이지 않는 것을 찾아가는 여행>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