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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날엔 슬픈 다리에서

오지연의 Dental In-n-Out

열대우림의 스콜처럼 폭우가 내린 주말 동안 九旬의 원로선배님과 불의의 사고를 당한 선배님이 우리 곁을 떠나셔서 마음 속 하늘에는 며칠 후까지도 비구름이 낮게 떠 있었다. 친밀한 사이는 아니었지만 미소와 음성이 뇌리에 있어선지 가슴 한 구석이 많이 아파왔다. 일상적이지 않은 일들은 알고 보면 실은 거의 일상적이라고 해도 될 만큼 자주 일어나지만, 그 파동은 번번이 새삼스럽고 거센 그 소용돌이에서 빠져 나오기란 수월치 않다. 주위가  낯설어 보이고 자꾸 외로워지는 이런 느낌을 슬픔 말고 다른 어떤 이름으로 불러야 할까.

울적함을 달래려 동작대교로 한강을 건너 퇴근하기로 했다. 蓮步渡河라고 이름까지 붙여놓은 내 작은 의식인데, 항상 효험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비 개인 뒤 석양이 조연일 땐 금상첨화라 시도해 보기로 했다. 다리 북단 쪽에선 미군기지 담벼락을 오른쪽으로 내내 끼고 돌며 한참을 한 줄로 올라가야 하는 아무리 봐도 이상한 진입로인데 차들은 별로 급한 기색이 없다. 급한 사람이야 이태원부근에서 이미 반포대교 쪽으로 내 뺐을 것이다. 지루함에 두리번거려봤자 볼거리도 별로 없는 좁은 길에 가다 서다 소걸음에도 얌전하기만 하다. 이촌동 쪽에서 오던 차들이 끼어들기 시작하면 약간 긴장이 감돌지만, 어느 편이냐 하면 절대 한 번에 한 대 이상은 안 끼워 주겠다는 딱 그 정도의 단호함이다. 끼어들고는 반드시 깜박깜박 인사를 한다. 차든 사람이든 꾸며내기 힘든 게 뒷모습인데 집단적으로 일련의 동작에 열중하고 있는 차들의 후미란 소리 없는 아우성이라고나 할까, 아무튼 장관이다. 40여 미터 동안 조심조심 한 대 씩 끼어들던 차들도 아니다 싶으면 더는 미련 없다는 듯 용산 쪽으로 휭 하니 가버린다. 비집고 들어오지 않고 다른 진입로나 한강대교로 가겠다는 거다.

저 끼어들기의 여유와 초탈을 처음 눈치 챘을 당시엔 미처 몰랐지만  알고 보니 동작대교엔 비운의 역사가 전설처럼 전해 내려오고 있었다. 시청에서부터 용산 미군 기지를 관통하는 도로를 놓고 거기에 다리의 북단을 연결하려던 계획이 무산되어버려  남쪽부분만 있는 영영 미완의 상태로 남다 보니 진입로를 이런 구불구불 골목으로 낼 수밖에 없었으며 통행량은 자연스레 적어져 버린 슬픈 다리였던 것이다. 신기할 정도로 붐비지 않는 다리 위를 확신하기 때문인지 지루한 진입로 정체를 서울의 다른 어느 곳보다 쿨 한 매너로 참아내는 아이 같은 저 순수함 들이 외롭고 쓸쓸한 내 마음을 깃털처럼 어루만져 준다. Always. 그것도 단지 뒷모습만으로. 가보시면 알 수 있습니다. 하긴 그러기엔 좀 시시한 얘기입니다만.

내 멋대로 분석컨대, 반드시 이 다리로 건너야 하는 건 아닌 사람들만이 반드시 이 다리로 건너는 것 같다. 반포대교나 한강대교 쪽이 더 합목적적인데도 슬픈 날의 나처럼 무언가를 찾아 이리로 오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다. 다리 위에는 적당히 식은 따스한 홍차처럼 조용히 교각을 감싸며 흐르는 아름다운 한강과 찻잔을 앞에 놓고 홀로 앉은 듯 호젓한 차로가 거짓말처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석양이 캬라멜 시럽처럼 녹아드는 금빛 물결위로 날개옷을 입고 두둥실 蓮步를 움직이는 선녀인 양 미끄러지듯 차를 달리고 나면 가슴속 슬픔이 조금은 엷어지고,  좀 외로워진들 어떠랴 슬그머니 용기가 나기도 한다.  

Like a bridge over troubled water, I will ease your mind.
이번에도 역시 다리는 날 어느 정도는 격려해 주었다. 스스로도 슬픈 내력이 숱하게 많지만 기꺼이 위안의 공간이 되어 주겠노라고, 이제 일렁이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평온한 일상으로 돌아가는 게 어떻겠냐고, 누군가가 그리워 자신이 오히려 낯설다고 느껴질 만큼 슬픈 날에는 언제라도 이곳으로  다시 찾아오라고 속삭여 주었다. 渡河.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오지연
오지연 치과의원 원장
서울치대 치의학대학원 동창회 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