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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디의 보험임플란트 수가 인하 주장을 바라보며

기고

'공공의 딜레마’란 것이 있다.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하지만 막상 이용할 일은 적어야 하는 것을 이야기한다. 경찰, 소방관, 의사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공공을 위해서 꼭 필요하지만 막상 범죄든 화재든 질병이든 발생하지 않을수록 좋은 일이다. 의료계는 아픈 환자를 잘 치료하는 것보다 질병이 발생하지 않도록 예방하고 초기에 진료를 잘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래서 모두가 알다시피 우리나라의 국민들에 필요한 기본적인 치료에 대한 보험정책은 저수가 정책이다. 의료계가 주장하는 적정 진료비는 보험으로 편입될 때마다 항상 더 낮게 책정되곤 한다. 보험수가는 의료계가 양보하는 대신 더 많은 국민들이 혜택을 볼 수 있도록 합의된 것이다. 또한 수가 역시 주먹구구식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연구용역 결과와 가입자 등이 참여하는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서 결정되는 것이다. 자신들의 저가 진료비가 진리인 양 호도하는 것은 오랜 조사를 거쳐 신중히 결정한 국가 기관들을 비하하고 정당한 비용으로 양질의 진료를 수행하는 다른 동료치의들을 모독하는 일이다.

가격만으로 의료를 생각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도 없다. 
환자는 기계가 아니며 의료인은 기술자가 아니다. 모든 환자마다 상태가 다르고 치료가 다르며 생각지 못한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 의사 역시 진료에 대한 생각이 다를 수 있고 진료방법이 다를 수 있고 본인이 생각지 못한 결과를 맞이할 수도 있다. 환자와 의사 모두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국가는 면허를 통해 충분히 자격이 있는 사람만 진료를 하도록 허용하는 것이며 모든 진료는 신중하고 사려깊게 시행되어야 하는 것이다. 더군다나 임플란트는 가벼운 수술이 아니다. 환자의 전신적인 상태나 질환, 습관, 체질뿐만 아니라 구강내 치조골의 상태나 악습관까지 시술의 성패에 영향을 끼친다. 또한 수십종이 넘는 각종 임플란트의 제품별 특성, 의사의 실력과 택하는 수술방법까지 모두 고려한다면 결코 쉬운 수술이 아니란 이야기이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옛말처럼 수술이 많은 필자도 해를 거듭할수록 엄중한 마음으로 접근하게 되며 대가들조차도 늘 초심을 잃지 말라고 가르치는 바이다. 그런 시술을 원가 운운하며 가격만 놓고 흥정하는 듯한 행위는 의료인으로서 스스로의 가치를 깎아내리며 의술의 존엄성을 무너뜨리는 것이라 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묻고 싶다. 본인들은 정말로 보험 임플란트를 시술할 때 그만큼의 진료비만 받았는지 말이다. 정부가 정해준 보험수가는 본인들 주장대로라면 너무 많이 받은 것 아닌가 말이다. 지금이라도 그 차액만큼 모두 국가에 되돌려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또 하나 왜 속칭 말하는 ‘돈이 되는’ 임플란트와 보철 진료에만 주력하는지도 묻고싶다. 정말로 국민들의 건강권을 위해서라면 ‘돈 안 되지만’ 국민 건강에 꼭 필요한 사랑니 발치, 잇몸치료나 보험진료에 더 주력해야 믿음이 가지 않겠는가 말이다. 지금이라도 본인들이 임플란트나 보철 진료보다 돈 안 되지만 국민들에게 필요한 보험진료의 비중이 평균보다 높다는 것을 증명해보이고 보험 임플란트들은 스스로 자진환수한다면 그 진심을 믿어주겠다.

진료는 최저가가 아니라 최선이어야 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젊은날을 다바쳐 고생스럽게 공부하였고 국가가 허락한 면허를 받은 지금도 끊임없이 보수교육을 받고 세미나를 들으며 공부하고 의술을 연마한다.

육체의 병만 치료할 줄 알고 사람을 보지 못하는 의사를 ‘소의’(小醫)라 하고, 육체의 병과 사람까지 볼 수 있으나 사회를 보지 못하는 의사를 보통의사 ‘중의’(中醫)라 하며 질병뿐 아니라 사회나 국가까지 치료하는 의사를 ‘대의’(大醫)라 한다. 우리가 대의는 되지 못해도 중의나 최소한 소의라도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신중해야 할 치료조차 오로지 ‘싸게’를 외치는 행위는 의사가 아니라 장사꾼에 더 가깝다. 소의조차도 되지 못한다.  지금이라도 가슴에 손을 얹고 ‘진료’란 무엇인지 그 의미를 다시 되새겨보길 바란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현종오 현치과의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