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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남부투어를 다녀와서

Relay Essay 제2238번째

7월의 지중해 날씨는 구름 한 점 없이 맑았으며 태양빛은 강렬했으나 습기가 없어 무덥지 않았고 그늘에서 태양빛만 피하면 선선하였다. 로마에서 버스를 타고 출발해 한참을 달려 2천년 전 베수비오 산의 화산 폭발로 땅 밑으로 사라진 비운의 도시 폼페이를 관람 후, 버스는 어느덧 쏘렌토에 다다르고 있었다. 쏘렌토는 고대 그리스 신화 속 매혹적인 노래로 뱃사람들을 홀려 바다에 빠져 죽게 했다는 인어 아가씨 세이렌의 유혹으로 유명한 바다 도시이다. 멀리서 보는 쏘렌토는 생각보다 훨씬 아담한 마을이었다.

에메랄드 빛의 지중해 바다와 절벽 위에 펼쳐진 평지에 파스텔 톤의 낮은 건물들이 아기자기하게 몰려있는 마을을 보니, 세이렌이 아니더라도 배를 타고 바다를 나가고 싶은 충동이 생길 것 같았다.

쏘렌토에서 포지타노로 가는 도로는 가파른 산등성이를 따라 구불구불 이어지는 해안도로로 모퉁이마다 마주 오는 차가 어느 한쪽이 서거나 속도를 줄여야 할 만큼 매우 좁다. 게다가 길  아래로는 바다로 솟구친 까마득한 절벽으로 버스가 허공에 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버스 안에서는 연신 두 가지 소리가 뒤섞여 나왔는데 곡예운전에 따른 긴장 어린 신음소리와 순간 순간 펼쳐지는 해안 절경에 따른 탄성이었다.

버스는 뱀처럼 산자락을 휘감아 도는 모퉁이를 수 없이 지나 포지타노에 도착하였다. 이 포지타노는 세계 7대 비경 중 하나이자 네셔널 지오그래픽이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하는 곳 1위로 선정한 곳이라고 하는 데, 처음 보는 순간 정말 비경이라는 탄성이 절로 나왔다. 거의 90도 경사의 깎아지른 절벽에 담쟁이 덩굴처럼 집들이 차곡차곡 지어져 있으며, 어느 집 하나 앞집에 가려짐이 없이 바다를 향해 있었다. 집집마다 테라스가 있었고 은은한 파스텔 톤으로 칠을 해놓아 한 폭의 예술품처럼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절벽 아래로는 갈색의 해변과 그 앞으로 눈부신 지중해가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포지타노에 처음부터 절벽에 사람이 살았던 것은 아니라고 한다. 로마제국의 멸망 이 후 중세시대 이탈리아 남부에는 사람들을 지켜줄 공권력을 지닌 제대로 된 국가가 없어 북아프리카의 사라센 해적들이 풍요로운 이탈리아로 침략해 와 약탈하고 사람들을 납치해 갔었다. 그래서 해적들을 피해 이곳 절벽에 집을 짓고 살기 시작한 것이 포지타노의 시작이라고 한다. 걸작은 풍요로움과 행복보다 아픔과 고통, 절망 속에서 나온다는 오래된 격언을 떠올리게 했다.

마을 위에서 해변으로 향하는 길은 집들 사이로 난 좁은 계단과 오솔길로 미로처럼 이어져 있다. 길을 따라 내려가면 테라스 마다 꾸며놓은 작은 정원들과 아기자기한 가게들이 생기 넘치는 모습으로 반겨주었다. 그 중 전망이 좋은 레스토랑이 있어 그 곳에서 맥주와 카프레제를 시켰다. 맥주는 레스토랑에서 직접 담근 맥주로 우리나라 맥주에 비해 고소하고 좀 더 풍미가 깊었다. 그리고 카프레제는 얇게 썬 토마토 위에 모짜렐라 치즈가 올려져 있는 요리인데 이 모짜렐라 치즈가 정말 일품이었다. 이 곳 모짜렐라 치즈는 물소의 젖으로 충분히 숙성을 시켜 만든다고 하는데, 정말 탱글탱글하고 한 입 베어물면 우유같은 즙이 나와 일반 치즈와는 다른 식감이었다. 한국에서 먹어 본 모짜렐라 치즈와는 확연히 달랐는데 이러한 모짜렐라 치즈는 현지에서 생산되어 현지에서 모두 소비되기 때문에 수출이 되지 않는다고 한다.

멋진 풍경과 맛있는 음식과 맥주에 취해 1시간 동안 남편과 진솔한 대화를 나누며 행복한 시간을 보내었다. 20대 초반의 여행은 최대한 많이 다니며 할 수 있는 한 많은 것을 보는 것이 좋은 여행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바쁜 일상 속에서 벗어나 아무 걱정 없이 여유롭게 쉬면서 소중한 사람과 시간을 보내는 것도 여행의 참된 묘미가 아닐까 생각한다.

해안가로 내려와 보니 해변에서 따뜻한 햇살을 맞으며 해수욕을 즐기는 이들이 많았다. 포지타노 주변에는 레몬밭이 많아 레몬으로 만든 특산물이 많은데 곳곳에 레몬으로 만든 독한 술인 레몬첼로와 레몬 슬러시 등을 팔고 있었다. 해변가 카페에서는 레몬 샤벳트를 팔고 있었는데, 큰 레몬 한 통을 완전히 파내고 샤벳트를 꽉 채워 만든 레몬 샤벳트는 이 곳의 명물이었다. 시끔하면서도 상큼한 샤벳트는 해변가까지 마을을 내려오면서 쌓인 피로와 더위를 한순간에 날려 주었다. 해변가에서 샤벳트를 먹으며 잠시 시간을 보내다 포지타노에서 아말피를 거쳐 살레르노까지 가는 유람선을 탔다. 유람선에서 해안가를 보니 포지타노에서 이어지는 해안 절벽을 따라 드문드문 점처럼 여러 마을들이 펼쳐져 있었고 이 마을들을 이어주는 절벽 능선을 굽이굽이 도는 아찔한 해안도로에는 간간이 차들이 오가고 있었다.

주변 자연환경과 어우러져 자연과 인공의 경계를 알 수 없는 이 곳은 서양의 무릉도원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이러한 작은 마을에는 마을 사람 외에 관광객들이 적고 조용해 전 세계의 유명한 작가들이나 예술가들이 휴식기에 이곳에서 집필도 하고 예술혼을 받고 간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소프라노 조수미씨도 이 곳에 별장이 있어 휴식기에 이 곳에 머물다 간다고 하니 그녀의 아름다운 목소리에도 이 곳의 아름다움이 녹아있는 것이 아닐까 한다.

아름다운 바다 풍경을 감상하고 있으니 배는 어느덧 아말피에 도착했다. 아말피는 내려서 돌아다니지는 않고, 잠시 정박해 있는 동안 배 위에서 마을을 감상하였다. 아말피의 모양새는 포지타노와 별반 다르지 않으나 어딘가 모르게 분위기가 다르다. 사람이 많아 조금 더 복잡하고 활기차 보였다. 그리스 신화의 영웅 헤라클레스가 사랑했던 여인이 죽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에 연인을 묻고, 그녀의 무덤을 지키기 위해 만든 마을이 이 곳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그 여인의 이름이 아말피라서 이 도시가 아말피가 되었다고 한다. 아말피는 지금은 조용한 휴양지 이지만 과거에는 강력한 해군력을 지닌 도시국가로 이탈리아 4대 해상강국(베네치아, 피사, 제노바, 아말피) 중 하나로 현재 이탈리아 해군의 문양이 이 네 도시의 문양을 가져와 합쳐 놓은 것이라고 한다.

아말피에 잠시 정박해 있던 유람선은 살레르노까지 항해하며 이탈리아 남부의 아름다운 풍경을 유감없이 모두 보여주었다. 배에서 들려주는 파바로티의 음악을 들으며 눈으로는 아름다운 해안가를, 귀로는 감미로운 음악을 듣고 있으니 왜 이곳이 죽기 전에 한 번은 와 봐야 하는 곳인지 실감할 수 있었다. 살레르노에 도착하여 로마로 가는 버스를 탑승하며 뒤를 돌아보니 어느덧 해는 수평선으로 넘어가며 파도로 넘실대는 바다를 빨갛게 물들이고 있었다. 바다에는 돛단배 한 척이 홀로 떠 있는데 이 모습은 외롭고도 아쉽고도 매혹적인 풍경이었다.

박언정 부산대 치과병원 치주과 전공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