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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의 찬 손

오지연의 Dental In-n-Out

달팽이 뿔 위에서 무엇을 다투는가?/부싯돌 불꽃처럼 짧은 순간 살거늘./풍족한 대로 부족한 대로 즐겁게 살자./하하 웃지 않으면 그대는 바보.

白居易의 <술잔을 들며>에 늘 푸치니 오페라 <라보엠>의 로돌포가 떠오르니 신기하다. 유일한 재산인 詩心마저 미미의 두 눈동자에게 도둑맞아 이젠 빈털터리지만 상관없다며, 탁월함이 작은 풍요조차 보장해 주지 못하는 삶의 아이러니쯤엔 아랑곳 않고 그대의 찬 손과 아름다운 눈동자를 칭송하느라 여념이 없는 싱그러운 세레나데. 로맨틱 코미디의 역사를 그 이전과 이후로 나눌 만큼 눈부신 금자탑을 쌓은 라보엠이지만, 대체로 풍만한 타입인 일류 소프라노들이 폐를 앓고 손이 찬 미미 역에 영 어색해 관객의 몰입이 어렵다는 웃지 못 할 얘기들도 꾸준히 있었다. 차가운 손이란 한참 주가를 올리고 있는 사람을 뜻하는 Hot Hand의 상대적인 개념으로 봐야 한다는 비평에 따르면, 보살펴 주고픈 대상의 손을 잡았을 때엔 (실제체온과는 무관하게) 차갑고 또 애처롭다고 느낀다고 한다. 역시 리추얼의 정점엔 감각의 제국이 우뚝 솟아 있군요. (군 통속어라 확인할 길은 없지만) 사수란 단어의 수 자도 후임을 보살피는 손이란 뜻이려니 넘겨짚는다. 설마 선임의 머리란 뜻일까? 뭐, 그럴지도.

엊그제는 포토미아란 대학 사진 동아리 후배들이 병원으로 찾아왔다. 장밋빛이라 하긴 힘든 江湖가 되어버린 이후로는 공허한 선배님 말씀 따위 생략하고 그저 점심이나 함께 하고 헤어지곤 하지만 한 후배가 삼복더위에 심한 코감기에 걸려 있기에 걱정했더니 기숙사의 에어컨 탓에 너무 춥단다. 혹시나 싶어 내 방 라디에이터를 가리키며 이런 거냐고 물었다. 눈이 동그래지며 맞다 길래 그렇다면! 하며 하드커버로 된 책(아틀라스 류)으로 라디에이터 위에 씌워져있는 커버 그릴 일부를 막아 냉기통로를 조절하는 법을 알려주자, 평생 설정온도대로 자동운전 되는 에어컨만 알고 지내왔을 95년생 후배는 약간 감동하는 눈치였다. 뉴욕이나 로마의 오래된 건물들도 이래… 이걸 다 바꾸려면 사람에게서 혈관을 교체하는 격이거든. 효율이 안 좋은 방식이지만 어쩔 수 없이 지내는 이유이고, 유리창을 열어 놓기보다는 냉기통로를 조절하는 쪽이 그나마 에너지 손실을 줄일 수 있다고 봐야지. 이건 뭐 강북 구시가 생활 백서인건가 속으로 실소를 했지만, 문득 어라? 내가 아직은 후배들 손을 약간은 녹여줄 사수일지도 모르겠는데 싶어지더라고 하면 너무 오버일까. 병원을 나서기 전, 습관적으로 옷매무새를 꼼꼼히 거울에 비춰보는 내게 또 다른 후배가 왜 그렇게까지? 라고 묻는 대목에서는 마침내 봉인해제라도 된 듯 얘기를 시작하는 나를 발견했다. 길거리엔 아마 환자도 있을 거고, 환자가 알려줘서 나를 바라보는 사람도 있겠지.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생각보다 여러 관점으로 바라보거든. 얘기들도 할 거고. 뭐가 됐든 치과를 좀 더 좋은 쪽으로 생각하게 됐으면 해. 그게 나 때문이라면 말이야. Agree? 일동 끄덕끄덕. 오늘따라 예상 밖의 좋은 컨디션으로 앞장을 선다. 병아리 떼 종종종/ 봄, 아니 여름 나들이 갑니다.

손을 마주잡은 미미와 로돌포는 서로를 더 잘 알고 싶다고 노래하며 사랑하는 사이가 된다. 세월과 우여곡절은 한 때 두 사람을 멀어지게도 했지만, 마침내 미미는 로돌포의 품에서 눈을 감게 된다. 처음 만나던 순간을 추억하며 밀린 얘기를 하느라 허둥대는 두 사람에게 시간은 매정하기만 하다. 하고픈 말이 바다처럼 많았지만, 모든 바다가 하나로 만나듯 그대를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가 전부였던가 봐요 라며 미미는 눈을 감는다. 긴 시간의 파도 위를 후배들과 나도 멀어졌다 가까워졌다 반복하며 떠 갈 것이고, 차가운 쪽이 내 손일 어떤 날이 올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언제까지나 우리는 하나다. 아마도 서로의 팔에 안겨 눈을 감게 될 달팽이 뿔 위의 부싯돌 불꽃들이여, 우리 처음 손잡던 그 날을 부디 잊지 말길.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오지연
오지연 치과의원 원장
서울치대 치의학대학원 동창회 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