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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료가 끝난 후

그림으로 배우는 치과의사학- 13


“연극이 끝나고 난 뒤 혼자서 객석에 남아 조명이 꺼진 무대를 본적이 있나요?” 이처럼 노래는 이야기다. 어떤 노랫말은 마치 속삭이는 것처럼 느껴진다. 음악은 사람의 마음을 두드리기도 하고, 사람을 위로도 해준다. 대중가요 ‘연극이 끝난 후’에는 이런 음악의 묘미가 잘 담겨있다. 이 가사가 가슴에 와 닿는 건 배우와 치의가 서로의 맥이 닿아있어서 그런 것 같다. 실제로 진료가 끝나고 난 뒤 혼자서 치과에 남아 환하게 켜진 모니터를 보면서 칼럼을 써 보았다. 글도 잘 써지고 자기성찰의 시간도 가지니 좋다. 배우의 관점으로 써진 노래를 치의로 바꾸어 개사해보니 너무나 딱 맞아 떨어진다. 그래서 치의는 배우다.  

“진료가 끝나고 난 뒤 혼자서 치과에 남아 조명이 꺼진 체어를 본적이 있나요? 치과소리도 분주히 돌아가던 체어도 이젠 다 멈춘 채 치과에는 원장만이 남아있죠 복기만이 실마리 찾죠. 치의는 가운 명찰 차고 설명하고 열진해 불빛은 환자를 따라서 바삐 돌아가지만 끝나면 모두들 떠나버리고 치과에는 후회만이 남아있죠 아쉬움이 생기고 있죠.” 

이번 그림도 영국 화가 Robert Dighton(1752-1814)의 그림을 기초로 하여, 약사이자 인쇄업자인 William Davison(1781-1858)이 18세기 말 영국에서 치아를 치료하는 모습을 담은 세 장의 판화중 하나이다. ‘Hob and Stage Doctor(시골뜨기와 무대의사)’의 공간적 배경은 시골 장터에 세워진 무대이다(그림). 시골 장터에는 즐거움과 정감이 넘쳐흐르지만, 떠돌이 발치사(itinerant tooth drawer), 돌팔이 의사(charlatan), 가짜 의사(quack)에게 장터는 절호의 기회이고 최고의 영업장소이다. 순진하고 남을 잘 믿는 시골 사람들이 그들의 주 타깃층이었다.   

발치사는 정장(frock coat)을 입고 가발을 착용하고 있다. 특이한 점은 삼각 모자를 쓰고 있는데 진한 색 옷과 어우러져 마법사가 연상된다. 마치 요술을 부리듯 발치를 할 태세이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외국 서적에서는 그림의 떠돌이 발치사를 mounterbank(엉터리 약장수)로 서술하고 있고, 영영사전에서는 mounterbank를 ‘a person who sold quack medicines in public places’라고 정의한다.

18세기 영국에서는 치아와 전혀 무관한 직종의 사람들이 작은 부분이지만 치과 치료에 참여하였다. 그 예가 바로 mounterbank이며 이외에도 opportunist(기회주의자)와 casuals(일용직 노동자)도 있었다. 모두 치과의사인 척 연극을 한 사람들이다. 그 연극이 진실인 양 하면서 많은 환자들에게 패악을 저질렀다. 영영사전에 적힌 opportunist와 casuals의 뜻을 곱씹어 보니 현재 치과계의 물을 흐려놓고 있는 ‘이빨꾸라지’의 행태와 너무 똑같다. 하루빨리 이러한 이빨꾸라지의 천적이 나타나기를 학수고대한다.

Opportunist(기회주의자): If you describe someone as opportunist, you are critical of them because they take advantage of any situation in order to gain money or power, without considering whether their actions are right or wrong.) 

Casuals(일용직 노동자): If you are casual, you are, or you pretend to be, relaxed and not very concerned about what is happening or what you are doing.

그림에서 환자는 바닥에 앉은 채 mounterbank(엉터리 약장수)에게 헤드락을 당하면서 하악 전치부 발치를 받고 있다. 광대 복장을 하고 있는 mounterbank의 조수는 담뱃대(clay pipe)를 흔들고 있다. 그의 역할은 치료를 받는 환자보다는 치료를 구경하는 관중에게 향한다. 청중에게 오락을 제공하여 주의를 산만하게 함으로써 치과 치료의 공포감을 상쇄시키는데 있다. 무대 주변에 있는 관객들의 표정은 두 가지다. 환자의 발치 장면을 즐기고 있는 사람들도 있는 반면에 진한 청색 코트를 입은 세 남자는 공포에 휩싸여 겁을 잔뜩 먹고 있다. 환자가 내는 고통의 신음소리와 군중의 웃음소리가 섞어져서 그림 밖으로 들리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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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b and Stage Doctor(시골뜨기와 무대의사)’에 보이는 광대 의상을 보면서 또 다른 가요‘삐에로는 우릴 보고 웃지’가 떠오른다. 치과에서 여러 개의 가면으로 자신을 철저히 숨기고 연극하듯 웃어야 하는 치의의 고달픈 자화상을 보는 것 같아서 가사가 마음에 더 들어오는 것일까? 그래도 치과에서 가장 고통스럽고 마음이 불편한 사람은 환자이다. 어쩌면 이러한 진실을 잊고 살고 있지 않나 반성해본다.


권 훈                                      
조선대학교 치과대학 졸업
미래아동치과의원 원장
대한치과의사학회 정책이사
2540g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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