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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닥터 엄마와 대표원장 딸의 ‘행복치과’

인터뷰-김은숙 원장과 김수연 원장 ‘김앤김치과’


“치의는 늘 완벽해야 하는 거야”-엄마
“원장님~ 대세에 지장 없습니다!”-딸


“근데 우리 닮았나요?”라고 되묻는 모녀는 사실 판이하게 다른 성격의 치과의사다. 딸은 ‘항상 즐겁게 살자’는 욜로족이고, 엄마는 긴장태세를 풀지 않는 완벽주의자다. 이견이 생기기도 하지만, 갈등은 진료실 문턱을 넘지 못한다. 든든한 내 편이 함께 있다는 사실이 행복하다는 모녀는 서로 부족한 부분을 보충해 주는 보완재적 관계라고 했다.

“교정 장치 인상을 여러 번 뜨면서 맘에 안 들어 머리끝까지 화가 나려고 하는 참에 김수연 원장(딸)이 들어와서 크게 소리치는 거예요. ‘원장님~ 대세에 지장 없습니다!’ 그 말을 듣는데, 정말 빵 터지면서 크게 웃게 되더라고요. 누가 저를 멈춰 주겠어요?”




엄마 치과의사는 늘 완벽을 지향한다. 딸 치과의사는 완벽보다는 즐기자는 주의다. 엄마 치과의사가 가는 선으로 섬세하게 정물을 묘사하는 스타일이라면, 딸 치과의사는 굵은 선으로 슥슥 크로키를 해 가는 스타일이다. 자주 스트레스를 받는 엄마를, 딸은 “대세에 지장 없습니다”란 말로 타이른다. 딸이 말하는 대세는 ‘인생’의 다른 말일 것이다.

치의신보는 여성 치의를 위한 지면을 고민하면서 가장 먼저 엄마와 딸이 함께 진료하고 있는 김앤김치과의원을 찾기로 했다. 엄마는 딸의 미래이자 과거이고, 가족이면서 든든한 동업자, 스승이었다. 지난 7월 21일 다른 듯 너무나 닮은 모녀 치과의사, 김은숙 원장(전 대여치 회장)과 김수연 원장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모녀는 2년간의 개원 분투기에서부터 여성 치의의 사회참여, 젠더의 문제까지 쉼 없이 풀어냈다.

# 긴장하지 않는 딸이 이상했어요

엄마가 치대에 입학했을 때, 여자는 6명이 전부였다. 여자 화장실이 없어서 한산한 해부학교실 화장실을 썼다. 딸은 엄마의 치과를 놀이터 삼아 자랐고, 고등학교 시절 ‘엄마 같은 치과의사’가 되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리고 미국의 명문 Tufts 대학으로 유학을 갔다. 화장실 문제 같은 건 고민해 본 적이 없다. 대신 은사에게 ‘넌 잘 하고 있고, 더 잘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이식 받았다.

“저는 딸이 진료실에서 긴장하지 않는 게 너무 의아한 거예요. 저는 40년 가까이 진료를 했지만 아직도 진료 상황이 긴장될 때가 많아요. 완벽주의 성향 때문에 스스로 스트레스를 받을 때가 많은데, 딸은 항상 밝은 편이죠.”(엄마)

이런 성향의 차이는 진료 현장에서 적절한 분배의 동기가 된다. 대표원장인 딸은 수입, 지출, 재료구매 등 굵직한 경영을 담당하고, 엄마는 환자와의 라포 형성 등 섬세한 작업을 도맡는다. 그래도 충돌이 없진 않다. 술식을 두고 때때로 부딪히지만, 그래도 가족이기 때문에 갈등을 집으로 싸들고 가진 않는다.

“딸과 함께 진료를 하는 최고의 장점은 ‘절대적인 내 편’이 있다는 점이죠.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가면서 심리적으로 안정감을 줄 수 있다는 점. 그게 가족 동업의 큰 장점인 것 같아요. 직원이 없을 때는 서로 어시스트를 해주면서 진료를 보기도 하죠.”(엄마)

“개원 초에는 환자가 어린 저를 보고는 ‘큰원장님(김은숙 원장)한테 치료를 받겠다’고 한사코 우기는 거죠. 그럼 저는 자존심이 상해서 ‘두고 보자’면서 칼을 갈았는데, 이제는 웃으면서 어머니께 보내드리죠. 엄마의 진료를 뛰어넘을 수 있을까하는 점은 늘 저의 화두지만, 이제는 좀 여유가 생겼어요.”(딸)



# 엄마는 힘든 모습을 보이지 않으셨죠

딸은 이제 제법 임상가나 경영자의 태가 나지만 ‘치과 일이 이렇게 힘든 줄은 몰랐었다’고 앓는 소리를 했다. “엄마는 집에서 절대로 힘든 모습을 보이지 않으셨어요. 당연히 치과의사의 삶이 이렇게 고되다는 걸 알 수가 없었죠. 이제 실제로 부딪혀 보니 실감이 나는 것 같아요.”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출산과 육아를 동시에 짊어져야 하는 여성 치의의 삶으로 이어졌다. 딸을 낳고도 일주일 만에 출근했다는 엄마는 치과의원의 원장, 한 가정의 아내이자 엄마, 여성 치과단체의 리더라는 다양한 이름을 살면서도 한 번도 딸의 학교 일에 빠져 본 적이 없었다.

“미국의 힐러리 의원도 인생에서 가장 큰 고민으로 꼽았던 것이 육아에 전념할지, 일에서 성공할 지를 선택하는 일이었다고 해요. 시대가 좋아져서 여성의 출산, 육아 복지가 예전에 비해 많이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개업 치과의사는 선택지가 많지 않아요. 멘토들의 삶에서 배우고, 현명한 조언을 구하는 수밖에 없어요.”(엄마)

그러면서 엄마는 이 시대의 ‘치과의사 딸’들에게 사회적 존재로서의 삶도 적극적으로 향유하라는 조언을 보탰다. “미국 수련 시절 ‘치과의사의 삶은 70%의 practice와 30%의 community service로 이루어져 있다’는 은사님의 말이 인생의 지침이 됐어요. 치과의사는 고도로 숙련된 전문직이므로 사회적 역할에도 게으르면 안 됩니다. 속해 있는 커뮤니티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동료와 협력하는 존재가 돼야 합니다.”

그러다가 엄마는 갑자기 딸에게 되물었다. “그런데 너 결혼은 언제 할 거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