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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소리를 기다리며

오지연의 Dental In-n-Out

야구가 약간 일찍 끝난 일요일 저녁에 이리저리 텔레비전 채널을 돌리다가, 야생의 오소리를 찍으려고 가파른 산기슭에 촬영 팀 두 명이 카메라와 자신들의 몸을 숨길 은신처를 만드는 장면을 보았다. 관목수풀 뒤로 간신히 두 사람 앉을 만큼의 평평한 곳을 만들어 나란히 앉아서는 이따금씩 소곤거린다. 이러고 며칠을 기다려도 오소리가 안 나올 수도 있지요? 초보의 질문에 한동안 머뭇거리던 고참이 말한다. 그런 생각은 안 해. 틀림없이 나온다고 믿어야만 할 수 있는 일이거든. 오소리는 오게 되어있으니 난 기다리다 찍으면 되는 거다… 이런 자세가 아니면 다큐는 못 찍어. 단 5분도 견딜 수가 없어. 정말이야. 아주 큰 병에서 막 회복된 사람처럼 조심스러우면서도 연약하게 반짝이는 생기 같은 것이 잠깐 그의 얼굴을 스치고 지나갔는데, 순간 언젠가 본 적이 있는 표정이라고 생각했다. 주위의 그 누구를 향한 것도 아닌 맑고 투명한 시선으로 자기가 갈 곳만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는 저런 표정.

애들 학부형 모임에서 알게 되어 내게 치료도 받고 가깝게 지내던 분이 하루는 병원으로 찾아왔다. 함께 점심식사를 하는 내내 망설이다 결국 꺼낸 사연은 하긴 딱 이만큼의 사이에서 의논하기 좋을 법한 얘기였다. 나름 유명한 다큐멘터리 촬영감독인 그 분의 남편이 몇 달씩 사막으로 티베트 고원으로 촬영을 다닌다는 건 들어 알고 있었다. 그럴 때면 아내도 번역이나 편집 등의 일들을 열심히 하며 지내고, 남편이 돌아와 한두 달 쉴 때면 같이 쉬고는 했다.

그런데 며칠 전 돌아온 남편이 다음 주에 형의 치료차 같이 외국엘 가겠다고 한다는 거였다. 형의 병은 사실상 낫기 어려운 상태여서 더 이상의 치료는 무의미한 것인데 남편이 목숨을 걸고(!) 벌어온 돈을 그렇게 쓰는 거나 쉬지 못하고 또 먼 곳으로 가는 것 모두 안타깝다는 것이 얘기의 요지였다. 남편 분은 뭐라 하더냐고 물었더니 아내는 거의 울 것 같은 얼굴로 말했다. 형이 나을 수 없을 거란 생각을 하면 남편은 잠시도 견딜 수가 없대요. 치료법이 있다는 곳으로 데리고 가는 게 자기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거라나요. 사막에서 어떤 장면을 기다릴 때도 못 찍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 절대 못 견딘다면서요. 그거랑 이게 같은 거냐고 전 소리쳤지만 다를 게 뭐냐고 하네요 글쎄. 이상하게도 그 촬영감독이 저 얘길 하며 지었을 법한 표정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남에게 설명하긴 힘들지만 자신은 분명히 알고 있는 어떤 장소를 향해 계속 가겠노라는, 담담하긴 해도 여간해선 말릴 수 없을 것 같은 눈빛이었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직접 본 표정은 아니었네요! 맙소사.)

몸속을 순환하는 혈액만큼이나 이미 체화 되어버렸을 삶의 방식으로 볼 때 남들 눈에는 무위로 끝날 치료여행이 됐든 로케이션이 됐든 그를 막기는 어려워 보였다. 정당한(‘객관적’이라 쓰고 ‘타인의 관점’이라고 읽는 차원에서)보상이 따르느냐 아니냐는 애당초 관심사가 아닌 사람에게는 ‘그렇게 해야만 스스로가 삶을 견딜 수 있는 그 방법’이 있을 뿐 일 테니까. 이제 남은 것은 아내의 인지부조화 뿐이었다. 아내는 합리적이지 않아 보이는 일을 막고 싶은 판단력과 사랑하는 사람의 뜻을 꺾고 싶지 않은 情念사이 어디쯤에선가 헤매고 있을 터였다. 남편이 원하는 일이란 점에만 초점을 맞춰 동의해 주는 걸로 하면 어때요? 그 일이 과연 적절했느냐 에 관한 숙고는 좀 나중에 해도 괜찮지 않을까 싶어서요. 뭐 그 사실이 어딘가로 사라져 버리는 것도 아니니까요. 금세 환해지던 그 분의 얼굴을 보며 이런 싱거울 데가 있나 약간 허탈했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하긴 싱겁기로는 피장파장이다. 위안일지 위로랄지 모를 이런 말들을 내가 대체 무슨 수로 할 수 있었겠는가. 나도 별수 없이 합리적인 존재라기 보단 합리화하는 존재일 뿐인 거로구나 탄식하며 분별력의 모퉁이를 힘없이 되돌아 나오던 그 수많은 시간들이 없었다면.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오지연
오지연 치과의원 원장
서울치대 치의학대학원 동창회 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