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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 김춘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는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개원할 때 치과의 이름을 짓고 간판을 걸면 새로운 생명체처럼 치과가 태어납니다. 적어도 개원한 그 원장에게는 세상에서 둘도 없는 의미있는 꽃이 막 피어난 것입니다. ‘나는 눈이 너무 작아서 먼지가 안 들어가~~’라고 자신의 콤플렉스를 언어로 유희하는 순간 콤플렉스는 뽑아내고 싶은 잡초에서 모두를 행복하게 할 유머의 꽃 봉오리로 변하게 됩니다. 직원의 숨겨진 능력을 원장이 칭찬이라는 마술을 통해서 찾아내면 직원의 잠재력이 만개하는 계기가 됩니다. balancing contact이라는 현상을 발견해서 차팅을 한다면 환자의 숨겨졌던 턱관절 통증의 원인이 음지에서 양지로 올라오게 됩니다. palate를 tongue space라고 불러줄 수 있다면 입천장이 좁을 때 혀가 저위되고 구호흡을 하게 되는 현상을 자연스럽게 예상할 수 있게 됩니다.

누군가에게 antegonial notch는 학부시절 이후로 들어본지 오래된 죽은 단어일 뿐이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성장패턴을 암시해주는 생명력이 응축된 꽃씨같은 언어가 되기도 합니다.

치과의사는 구강과 악안면 주변의 조직, 공간, 기능, 생리 등에 대해서 의미있는 언어를 사용하면서 관찰하고 해석하며 치료하는 직업이라고 정의해 봅니다. 초보 치과의사라면 무심코 지나칠 몸의 언어들을 경청하고 이해하면서 더 나은 치료결과를 도출하고 후배들을 이끌어 주어야 하는 것이 연륜이 쌓여가는 선배 치과의사의 몫입니다. 그럴 때 무의미하게 스쳐 지나갔던 수 많은 신체의 현상들은 생명력을 가지고 진단과 치료라는 정원으로 옮겨질 수 있습니다. 그렇게 정원으로 옮겨진 생명의 언어들은 하나하나 아름다운 꽃이 되어서 머지않아 대한민국 치과계에는 다채로운 꽃들의 향기가 그득해 질 것이라고 상상해 봅니다.

오늘도 저의 클리닉에 찾아온 환자의 마음과 증상이 제 정원속으로 들어와 꽃을 피우고, 저 또한 환자의 마음속에 들어가서 한 송이의 꽃이 되기를 소망하며 새로온 환자의 이름을 오래된 친구처럼 반갑게 불러봅니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옥용주
 내이처럼치과의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