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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7작전

오지연의
Dental In-n-Out

작년 봄, 이세돌 9단이 알파고와 세기의 대국을 벌였던 포시즌스 호텔이 원장실 창 밖 동아일보 사옥과 파이낸스센터 사이로 그 날렵한 옆모습을 뽐내고 있다. 당시는 물론이고 요즘도 바라볼 때 마다 등이 선뜻해 지는 상념이 찾아온다. 그래 봤자 공중에 딥마인드, 빅데이터 클라우드, 딥러닝 소프트웨어 그리고 구글 같은 단어들이 둥둥 떠다니는 느낌이랄까?


그저 막연한 근심걱정 쪽에 가깝지만. 나름 머리를 쓰는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에서인지 인공지능이라면 좀 예민해 진다. 뭐, 이 9단이 듣는다면 껄껄 웃을 얘기일지 몰라도. 그가 알파고의 활약에 실로 눈부신 스파링상대가 되어 준 덕분에 자율주행 자동차나 로봇 수술, 원격 진료 등이 충분히 납득할 만한 일로 여겨지게 되었다.


건강보험공단과 심사평가원이 축적해 놓은 어마어마한 국민의 건강관련 데이터까지 (정치권이나 관료의 은밀한 개입 정도가 변수일 수 있지만)분석, 활용되어 종내 어떤 형태로든 의료산업의 큰 변화는 불가피할 것이다. 체계가 확실히 잡혀있는 분야일수록 그 완전성이 오히려 굴레가 되어 변화로 가는 발목을 잡곤 한다는 대목에서 만큼은 그렇다면 우리 의료는 여전히 매우 불완전한 시스템이니까…라며 짐짓 우기고 싶어질 정도니 생각할수록 이래저래 딱한 처지가 되어 버렸다.
 
데이터라 하면 대뜸 개인 정보 보호를 떠올려 언성을 높이지만, 온라인상에 올라가 있는 사진과 글, 구매내역 등을 통해 구글이나 아마존 등은 이미 우리들에 대한 방대한 빅데이터를 갖고 있다. 그래서 잠깐의 대화만으로도 사용자의 취향과 습관을 파악해 일정관리, 식당예약, 휴가지 결정 등의 개인 비서역할을 해내는 ‘말하는 인공지능 기기’들이 가능한 것이다. 개인의 생활습관 데이터를 기반으로 하는 미래의 정밀의료는 과연 날 어디로 데려갈까. 


오랜 기간 세상을 매료시켜 온 007시리즈의 여러 클리셰 중에 Q와 머니 페니란 역할에 끌리곤 한다. 영화 속 007의 위상은 뭐랄까, 내내 어딘가 정당한 대접을 못 받는 느낌인데 MI6는 거의 언제나 해체될 위기에 놓여있고 유사한 다른 조직이 호시탐탐 최고 정보기관이 되려고 기회를 엿보고 있다. 소위 “책상도 없는” 007은 특수상황이 벌어져서야 M의 호출을 받지만, M의 방에 들어가 보기도 전에 머니 페니의 점호(?)를 받아야 한다.


자신이 맡을 미지의 임무를 짐작이라도 해 보려고 머니 페니의 귀띔을 의외로 간절히 기다리는 제임스지만, 뚱딴지 같은 상상과 기대가 뒤섞인 비서의 머릿속은 복잡하기만 하다. 요컨대, 별 도움이 안 되지만 가끔은 느닷없는 한마디로 007의 얼굴에 차밍한 미소가 떠오르게도 하는 꽤나 미묘한 존재인데, 생각해 보시면 한 두 사람쯤 주변인물 중 누군가가 떠오르실 지도? 뭐, 없어도 그만이지만. M을 만난 후 신무기와 차를 받으러 찾는 Q 역시 007을 돕는 캐릭터인지 조롱하는 캐릭터인지 아리송할 지경이다. 최신 병기의 작동법을 제대로 알려주지 않는 건 물론이고, 제임스의 올드한 취향을 신랄하게 비웃곤 한다.


이젠 더 이상 특수 장비 따위는 없다며 빅데이터 기반의 정보만을 제공하는 최근작들의 시니컬한 젊은 Q까지, 이들은 어쩌면 길잡이가 되어 줄 유일한 창구이건만 친절하기는커녕 여러모로 나를 점점 위축시키며 번번이 앞길을 가로막는 ‘삶을 슬프게 하는 존재’에 대한 레토릭 인걸까. 그렇다면 아마 내 역할은 악조건에도 결국은 해내는 007처럼 꼭 과녁 정중앙의 카메라를 맞춰야만 10점인 건 아니라며 기운을 내는 것 쯤 되겠지? 보드카 마니티 한잔에도 “Shaken, not stirred!”의 취향을 입혀 즐길 겨를을 위하여 부디 지금 이 작전에만 집중하자. 머니 페니나 Q처럼 AI 역시 좀 야릇한(!) 방법일진 몰라도 날 돕는 역할일 거라 믿고. 아무렴, 주연은 007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