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西池에서 연꽃구경을 하셨다면

오지연의 Dental In-n-Out

여름에는 저녁을/마당에서 먹는다./초저녁에도/환한 달빛./마당 위에는/멍석/멍석 위에는/환한 달빛./달빛을 깔고/저녁을 먹는다…

시인 오규원이 찬탄했던 계절이 지나가고 있다. 부쩍 선선해진 날씨와 더불어 한번 뭉치자는 ‘번개’ 제안들이 들려온다. 다시 그리움의 시절인건가.

어려서부터 영특했던 소년 정약용은 장원급제 후 정조대왕의 규장각 초계문신이 되었다. 정조대왕은 신하들의 사직상소 초고를 미리 보여 달라고도 하고, 좀처럼 우아한 문장을 못 만들어 내는 신하의 경우엔 아예 대신 써주기 까지 했으며, “경의 생각이라고 하면서 이 인물들에 관해 이조판서와 상의하는 것이 어떠한가?”라는 인사문제의 막후 지시를 비밀 서찰로 내리기도 했던 개혁적이면서도 몹시 깐깐한(소위 에고가 강했던) 왕이었다. 그런 임금이 업무상 실수로 충청도로 유배된 신하를 열흘 만에 다시 불러올릴 만큼 총애했을 정도의 탁월함이란 과연 어떤 경지였을까.

본래 10년 예상으로 시작한 수원화성 공사를 단 34개월에 끝낸 것만 보아도 (유형거니 거중기니 하는 기구들을 직접 만들어 사용한 멋진 점들은 별도로 하더라도!)에너지가 넘치는 사람이었음은 분명하다.

한편으론 마당에 가득한 매화며 금잔화, 살구나무 등이 사람들의 옷깃에 스쳐 상할까봐 둘레에 대나무로 난간(竹欄)을 세워 아끼는 섬세함도 있었다. 늦게 피고, 오래 견디며, 향기롭고, 아름답지만 화려하지 않고 깨끗하지만 차갑지 않다며 국화를 각별히 사랑한 그는 가을밤 국화화분 앞에 촛불을 놓고 벽에 비쳐 너울거리는 그 그림자를 감상하는 것을 좋아했다. 친구들을 자주 집으로 부르던 그는 급기야 모임을 조직하기에 이른다. 서울 인근에 살며 함께 초급관리시절을 보내던 남인계 청년들 열다섯 명을 모아 자신의 집에서 정모를 갖기로 한 이 竹欄詩社의 압권은 뭐니 뭐니 해도 그 모임의 시기이다.

살구꽃이 막 피면 한번 모이고, 복숭아꽃이 피면 한차례 모이고, 한여름에 참외가 익으면 한차례 모이고… 식으로, 로맨틱하기 짝이 없다. 참외가 우물에 둥둥 떠 있는 어느 여름날 오후, 노곤할 퇴청길이건만 뭔가 잔뜩 신이 난 백면서생들이 옆구리에 벼루와 붓, 그리고 집에서 챙겨준(?) 안줏거릴 끼고 정약용의 집 마당 동북쪽 죽란을 스치며 하나 둘 모여드는 광경이라니 상상만으로도 흐뭇해진다. 필시 저녁은 마당에서 먹었겠지. 환한 초저녁 달빛이 내린 멍석을 깔고.

요즘처럼 막 서늘해질 때면 “西池에서 연꽃구경을 하러” 죽란시사 workshop이 있는데, 이쯤 되면 1790년대에 이미 뭔가 완결되어버린 느낌이다. 근래의 가을맞이 번개들은 결국 서지의 연꽃구경 죽란시사의 변형인 셈일까. 혹시 일찌감치 西池 workshop을 끝낸 분들이라도 인제 가을 잔치는 다 끝났다며 실망하지 마시길. “국화가 피면” 또 한 번 모여야 하니까요!

늘 마음을 돌돌 말아 두고 몸을 사리며 일하는 사람들은 이따금씩은 한껏 자기의 외부로 눈을 돌려 벗들과 어울리는 시간이 정말 필요하다. 아무리 고독을 즐기는 이라도 그 고독마저 함께 나누고 싶을 만큼 마음을 빼앗는 사람을 꼭 찾아야 하는 것이다. 200년 전에도, 지금도.

“잘 나갔던” 시절의 청년 정약용이 모임을 만들자 친구 채홍원의 부친이며 당시 재상이었던 채제공이 칭찬과 함께 왕의 은택을 가리는 일이 없도록 지나친 고성과 음주를 금하라는 경계의 말도 보탰다.

함께 즐거운 시간을 가지려는 것뿐이라 해도 어쩐지 그 모임에 너무 힘이 있어 보이면 금세 백안시하는 주변이 생기는 법이니까 분별과 경계는 오늘에 있어서도 명심해야 할 부분이긴 하다. 이래저래 모이기 힘든 한창 바쁠 사람들더러 어렵사리 모여서 즐기라고 해놓고, 또 너무 드러내놓고 모여들 다니지는 말라니 답답한 노릇이 아니냐고 할지도 모르겠다.

어느 소설에선가, 편한 집 놔두고 바닷가 작은 마을로 피서랍시고 와서 좁은 모기장 안에서 여럿이 밀치락달치락 하며 불편하게 자야하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불평하는 조카에게 이모부가 했다는 -상황을 정리해 버렸다는- 한 마디가 혹시 대답이 되려나. “이것도 다 재미인 거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오지연
오지연 치과의원 원장
서울치대 치의학대학원 동창회 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