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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타고라스: 오래된 발견, 새로운 이해

고대 그리스에서 의학과 철학

피타고라스라는 이름이 우리에게 알려진 가장 유명한 경로는 ‘피타고라스 정리’일 것입니다로 표현되는 피타고라스 정리는 직각 삼각형을 이루는 세 변의 길이가 갖는 비례관계를 나타내는 수식이죠. 직각을 끼고 있는 각 변을 각각 a, b라고 하고, 직각을 마주보는 빗변을 c라고 했을 때, 직관적으로 알 수 있듯이, a와 b의 길이가 달라지면 자연히 c의 길이도 달라집니다. 거꾸로 c의 길이를 고정해 놓고 a의 길이를 늘린다면 b는 길이가 줄 것이고 그 반대로 하면 반대의 결과가 나올 겁니다. 그런데 수메르인들은 피타고라스보다 이미 천년 전에 이 세 변의 길이들 사이에 일정한 비례관계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물론 증명의 형태는 아니었지만, 피타고라스 역시 이것을 증명했는지는 논란거리가 됩니다.

피타고라스가 발견했다고 알려진 것이 또 하나 있습니다. 서양의 온음계가 바로 그것이죠. 피타고라스 정리와 마찬가지로 이것도 피타고라스 당시에 이미 알려져 있던 것이라서 피타고라스의 발견이라 보기는 어렵습니다. 그런데 이것 역시 피타고라스 정리와 마찬가지로 수적 비례관계입니다. 바이올린이나 기타의 줄을 팽팽하게 걸고 그냥 퉁겨서 낸 소리와 그 줄 길이의  2/3가 되는 지점을 눌러 낸 소리는 음계로 도와 솔의 관계가 됩니다. 2/3가 된 줄의 2/3를 다시 잡아서 내면 이 둘의 관계도 역시 도와 솔의 관계가 됩니다. 2/3씩 되는 이 줄들을 한 옥타브가 되는 1/2의 비율 안으로 낮춰서 조정하면 도, 레, 미, 파, 솔, 라, 시의 7음계가 나옵니다.

피타고라스 정리도 음계도 알고 보면 최초의 발견도 증명도 아니었는데, 왜 피타고라스의 이름이 붙었을까요? 한 가지 이유는 그의 학파가 학문집단이자 종교적 공통체이기도 했다는 데서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피타고라스는 사실은 수학자라기보다는 종교적인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윤회설과 정화를 기본교리로 하는 종교를 창설하고, 윤회를 벗어나기 위한 정화의 삶을 살아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정화의 삶의 한 형태로 수학과 같은 순수학문을 통해 영혼을 정화할 수 있다고 하여, 그런 삶을 공동으로 추구한 피타고라스종교에서는 많은 수학적 발견을 이루었고, 그 발견의 영광은 교주인 피타고라스에게 돌아갑니다.

따라서 피타고라스의 이름으로 돌려진 많은 학문적 업적들은 사실은 피타고라스종교라는 집단의 공적이라고 봐야 공정할 것입니다.

다른 이유는 피타고라스가 피타고라스 정리나 음계를 발견한 것은 아닐지라도 수학이나 음악의 분야에 국한되지 않는 공통의 비밀을 드려내고 주제화했기 때문으로 추정해 볼 수 있습니다. 그는 도형의 기본이 되는 직각삼각형의 세 변에 보편적인 비례관계가 있다는 사실과 음의 조화로운 관계에도 역시 비례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우연의 일치로 보지 않고, 그것이 조화로운 세계의 원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그에게 이후의 학자들이 이런저런 발견의 공헌을 돌렸으리라 보는 것도 무리가 아닐 듯합니다.

사실 발견이라는 말은 이미 있는 것을 찾아냈다는 뜻이고 발명은 기존에 없던 것을 만들어냈을 때 쓰는 말일 텐데, 그리스인들은 ‘발명’이나 ‘고안’이라고 할 자리에 ‘발견’이라고 할 때가 많습니다. 아낙시만드로스에 대한 전승 중에 ‘그가 해시계를 발견했다’란 말도 그런 예입니다. 해시계는 태양의 일주운동와 연주운동과 그 운동의 변화가 지상에 만들어내는 그림자간의 관계에 대한 이해를 통해 만들어진 것이죠. 그리스인들이 보기에 이런 관계 역시 존재하는 것이니 발명이 아니라 발견이 맞다고 생각한 듯합니다.

오래된 발견들의 관계들을 읽은 피타고라스의 생각과 철학 역시 그래서 발명이나 고안이 아닌 발견이라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김주일
현재 정암학당 연구원, 성균관대학교 초빙교수 및 가톨릭대학교 철학과 강사
저서 <소크라테스는 악법도 법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럼 누가>,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의 단편선집>(공역), 플라톤의 <알키비아데스 I.II>(공역) 등 번역

저서 <소크라테스는 악법도 법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럼 누가>,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의 단편선집>(공역), 플라톤의 <알키비아데스 I.II>(공역) 등 번역